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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4. 내가 무엇이관대(사무엘하 7:18∼22)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450, 2018.01.15 17:34:00
  • 본문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 약속을 들은 다윗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 은혜에 집중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18절)로 시작해 ‘그런즉 주 여호와여 이러므로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22절)로 이어집니다. 온통 찬양과 감사로 가득합니다. 


    18절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가’란 말 속에는 다윗의 과거와 현재가 다 들어 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다윗은 자신과 자신의 문중이 보잘 것 없는 존재인 것을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자신은 여덟 아들 가운데 막내이며 목동이었고 자신의 집(가문)은 이스라엘에서 숫자에 들지도 못할 정도로 작은 곳(베들레헴)에 있었습니다. 그가 왕이 된 것과 그에게 주어진 약속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유다 지파가 사는 영역 중에서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미 5:2). 그곳은 여호수아가 유다 성읍을 100여 개로 구분할 때(수 15:21∼62)와 느헤미야 시절의 행정구역(11:25∼36)에 빠져있습니다. 앗시리아의 침략에 대비하는 주요 방어거점 목록에도 없었습니다(미 1:10∼15). 하나님은 이처럼 작은 것에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는 데는 인간적, 세상적으로 작은 것이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19절에는 주어진 은혜에 크게 감격하는 다윗의 모습이 나옵니다. 다윗은 이미 받은 은혜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편에서 이미 주신 것으로 족하게 여기지 않고 영원한 미래의 약속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니 그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요. 공동번역에 따르면 다윗은 자신을 개에 비유했습니다(21절). 일찍이 다윗은 자신이 개라고 자처한 적이 있었습니다(삼상 24:14). 이스라엘에서는 하찮은 존재를 가리킬 때 개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삼상 17:43, 삼하 3:8).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이렇게 낮추는 사람은 어떻게 살까요? 그는 자존심이나 체면을 지킨다거나 앞길이 캄캄해 보인다고 해서 세상을 등지지 않습니다. 자신을 가장 밑바닥까지 낮추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어느 때에도 무(zero)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적이고도 철저한 절망 상태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꿈꿉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는 말씀을 온전히 실감하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인생에 베풀어주신 선한 능력을 요약했습니다. 그리고 감개무량한 마음을 구구절절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미 주어진 은혜를 소홀히 하면서 아직 주어지지 않은 은혜에 매달리지는 않는지요. 혹시 작은 일 하나, 혹은 스치듯 지나가는 다른 사람의 말 한 마디를 하나님 은혜보다 더 크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크고 우리가 감격할만한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기도 : 에벤에셀의 하나님, 오늘 여기까지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합니다. 풍파 많은 세상에 살면서도 제가 그리고 저희가 오늘 여기까지 이르렀음을 감사하고 감격하며 살게 도와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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