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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5. 솔로몬의 대적들(왕상 11:14, 23, 26)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61, 2018.02.16 19:58:35

  • 솔로몬의 나라가 부강해지자 그는 많은 첩들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백제 의자왕의 3천 궁녀가 부럽지 않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고대왕국의 특성상 힘이 쎈 나라의 왕에게 앞을 다투어 딸을 바침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던 정략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이런 첩들을 궁에 들이고 그들의 신앙도 자유롭게 섬기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는 솔로몬 그 자신도 거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우상숭배에는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의식들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거기다가 솔로몬은 화려하고 힘 쎈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 성을 쌓고 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여 백성들의 원성을 삽니다.   

    이렇게 되자 하나님의 은혜가 솔로몬을 떠나고 하나님은 서서히 이스라엘 주변에 그의 대적들을 일으켜서 솔로몬을 대적하게 합니다. 14절에는 에돔 사람 하닷, 그리고 소바 사람 르손, 그리고 여로보암입니다.  

    특별히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때 한낮 성전건축 현장의 일꾼에 불과했던 평민중의 한 사람 입니다. 그런 중에 솔로몬에 발탁되어 성전건축의 총 책임을 맏게 되는 행운을 얻었고 솔로몬의 신임을 얻게 되면서 수많은 세월을 솔로몬 가까이에 보좌 하면서 솔로몬에게 직 간접적인 간언도 불사하지 않는 위대한 장군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로보암은 목숨을 걸고 솔로몬에게 직언을 여러 번 간언해 보지만 여로보암의 민심 보고에도 솔로몬이 귀를 기울이지를 않자 결국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이런 시점에 여로보암의 지지도가 높은 것을 인지한 솔로몬은 여로보암을 죽이려 명을 내리게 되고 이에 여로보암은 솔로몬을 피하여 이집트로 망명생활을 합니다. 후에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즉위하자 여로보암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백성들의 리더가 되어 죽음을 무릅쓰고 새로운 왕이 된 르호보암에게 백성들의 막중한 세금을 면제하여 주기를 간구하지만 르호보암은 그의 의견을 무시해 버립니다. 그리고 이에 반기를 든 여로보암은 남쪽의 유다와 베냐민을 제외한 북쪽의 10 지파가 남 왕국으로부터 분리하여 새로운 독립국가를 형성하게 되며 여로보암은 북쪽의 10 지파의 부족들로부터 왕으로 추대를 받게 됩니다. 이때부터 북쪽은"이스라엘"이라는 명칭으로.. 남쪽은 "유다"라는 명칭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원전 922년 남북 왕조가 달리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로보암 역시 왕위에 오르자 과거 솔로몬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됩니다. 솔로몬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던 여로보암은 백성들의 불만 요소들을 해소하기 위하여 북왕국에 새로운 국가성소로서 단과 베델에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놓고 “이것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하나님”이라 선포합니다. 

    솔로몬과 여로보암의 인생 여정을 돌이켜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 하면서 최선을 다하였다고 스스로 자부할 때 이처럼 다른 생각의 지배를 받게 되며 그 지배된 오만한 생각이 다시 자기를 파멸의 길로 인도 한다는 것을..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의 빛도 오만한 자신이 스스로 가리우게 된다는 것을..  사실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세속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던 그 다음 대에는 나라와 왕조가 심히 찌그러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는 다 하나님의 복을 잘 관리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이를 우리도 보면서 ‘선줄로 생각하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사두바울의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할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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