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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라 08:15-31/ 형통과 시련 뒤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 [에스라]
  • 조회 수: 535, 2018.04.15 13:03:03
  • 이스라엘 민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대규모로 돌아온 횟수는 크게 3차례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학개서와 에스라서 1장부터6장까지의 내용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룹바벨이라는 지도자의 지휘 아래 제일 먼저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무리입니다. 그리고 몇 십년 후 두 번째로 돌아온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에스라라는 지도자의 지휘 아래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배우시겠지만, 세 번째로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무리들은 느헤미야라는 사람의 지휘 아래 돌아오게 됩니다. 스룹바벨의 지도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보통 1차 귀환자들이라고 부르고, 에스라의 지도하에 돌아온 사람들을 2차 귀환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돌아온 사람들을 3차 귀환자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라의 지도하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2차 귀환자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저번시간 에스라 7장을 통해서 에스라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로 인하여 바사 왕에게 큰 신망을 얻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제 하나님의 도우심과 바사왕의 큰 신망을 얻어 예루살렘으로의 돌아올 준비를 하는 에스라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라는 자신과 함께 가고자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았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떠나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가운데 에스라는 뜻하지 않는 어려움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7장에서 경험한 형통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8장에 들어와서는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들과 문제들의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어찌보면 에스라의 모습은 오늘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우리의 삶가운데는 영원한 형통이 없고, 반대로 영원하 고난과 시련도 없습니다. 이 두가지가 서로 교차되면서 어느때는 형통을 경험하다가 반대로 어느때는 고난과 시련의 때를 경험합니다. 우리는 에스라가 경험한 형통과 시련이라는 두가지 상반된 상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이 두가지를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항상 형통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 1차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스룹바벨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당시 왕이었던 고레스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를 허락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지원해 주고,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물질적인 후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통은 잠시 뿐이었고, 성전재건을 시작하자마자, 사마리아 사람들과 이방 사람들에게 방해와 핍박을 받게 됩니다. 2차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에스와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룹바벨이 겪었던 어려움 역시 에스라도 겪었다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강하신 도우심과 섭리가운데 왕의 도움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왕이 많은 후원과 지원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통은 잠시이고, 곧바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에스라를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3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31절에 보니깐 그 대표적인 어려움이 에스라를 대적하는 적들이 2차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백성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길에 매복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사제국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의 거리가 워낙 멀어서 걸어서 걸린 시간이 3개월 있었습니다. 3개월 동안 먼 길을 걸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지치고 피곤했겠습니까?

     

     

    이러한 피곤을 틈타 길에 숨어있는 적들이 에스라와 백성들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으려고 계획을 했습니다. 우리는 한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고, 몇 번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했다고 그것으로 내 인생이 항상 형통한 일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신다.”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물론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준다는 것에는 ‘우리가 당할 시련과 어려움을 제외하신다’는 의미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주권과 섭리가운데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시겠지만, 그 가운데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환란을 경험합니다.

     

    어쩌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받는 다는 것은 고난과 시련의 길로 들어가는 첫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 뒤에, 항상 그것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악한 세력들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대적인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떨어뜨리려고, 받은 도우심을 헛되게 만들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방해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길, 신앙의 길은, 끊임없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인 전쟁은 우리가 하늘나라 가는 그 날까지 계속되는 전쟁이고, 우리는 이길에서 결코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두 번째, 항상 형통한 일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항상 시련의 일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시련의 상황가운데 그분의 주권과 섭리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항상 형통하지만 않다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1차 귀환자였던 스룹바벨도 그랬고, 2차귀환자인 에스라 역시도 그랬습니다. 7장은 에스라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다리와 왕에게 큰 도움을 얻고, 존귀함을 얻게 되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8장에서는 상황이 바뀝니다. 7장 에서 처럼 에스라에게 큰 형통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기나긴 여행을 떠남에 있어서 여러 가지 준비할 것도 많고 부족한 것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러한 어려움의 환경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때에 따라 돕는 손길을 더하셨습니다. 시련의 환경가운데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라는 표현을 본문 18절과 23절 31절에서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우선 18절에서 보면 에스라는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어려움의 상황에거 기도했던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고 응답하셨다라는 것입니다. 23절에서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었다라고’ 나와 있고 31절에서는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셨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여러 가지 시련과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때 그때 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우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때에 따른 은혜로 도우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우리가 고난의 환경, 시련의 상황,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경험할 때 마다 너무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고 그분을 의지하고 간구할 때 마다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마다 그 상황을 이겨내고 극복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여러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함으로, 때에 따라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각종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그때그때 마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도움의 손길을 여러분 경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형통함과 시련을 함께 허락하신 이유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형통과 시련속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에스라에게는 형통함과 시련이 함께 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 8장에서는 여러 가지 시련과 어려움의 문제들이 먼저 찾아오고, 하나님이 그 때 그때 그 시련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에스라가 경험한 첫 번째 어려움은 일꾼들이 부족했던 점입니다.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이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했습니다.

     

    거기에는 일반 백성들도 있었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라가 삼일동안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백성들을 살펴봤는데 레위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레위 사람은 본래 제사장을 도와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구약에서는 레위지파 사람들은 일평생 제사장을 도와 하나님의 성전을 돌보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니깐 오늘날로 말하면 평신도 사역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레위 사람들이 에스라가 속한 무리에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제사장을 도와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들이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으로 자원하여 돌아갈 레위사람들을 구해오는 것입니다. 16절과 17절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보면 에스라가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들을 뽑아 근처 마을로 가서 레위사람을 구해오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그리고 다행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원해서 온 레위 사람들을 구하게 됩니다.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의 형제와 그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느디님 사람 중 성전 일꾼은 이백이십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명 받은 이들이었더라”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레위 사람들을 찾을 수 있게 하셨고, 이뿐만 아니라 레위사람들을 돕는 종들을 까지도 에스라에게 붙여주십니다. 하나님을 섬길 일꾼이 부족한 어려움의 문제를 경험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나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은혜와 도우심 뒤에 또다른 시련과 위기가 찾아옵니다.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이제 레위사람들도 구하고, 함께 일할 일꾼들도 채워졌습니다. 이제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길을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머나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자신들의 안위와 안전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21절에 보니깐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어린 아이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이 가진 재물도 많이 있어 강도의 위험을 겪을 수 있다라고 걱정을 합니다.

    바사 제국에서부터 이스라엘 땅가지의 거리는 엄청나게 멀고도 긴 거리입니다. 3개월 이상 걸어야만 갈 수 있는 그러한 길입니다. 거기다가 길 역시 험하고, 날씨 또한 좋지 않은 날이 많기 때문에 과거에 많은 여행자들은 여행도중 건강이 나빠지고 자칫 잘못하면 병을 얻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무엇보다 에스라처럼 기나긴 여행을 하는 사람들만 노리는 강도 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사의 아닥사스다가 왕에게 많은 선물과 물품을 받아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저번시간 배웠듯이 아닥사스다가 왕이 은 백 만달란트를 주었고, 기타 하나님의 성전에서 쓰일 금, 은, 보석들의 기물들도 선물로 보냈습니다. 25절과 26절, 27절에 보면 아닥사스다가 왕이 에스라에게 준 선물의 내용들이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서 보면 왕이 준 은 일백달란트 외에도, 왕이 하나님의 성전에 받친 물건들이 많이 나오는데, 은이 육백오십 달란트요 은 그릇이 백 달란트요 금이 백 달란트가 되고, 기따 금과 은과 놋 그릇들이 더 있었습니다. 총 합치면 은만 7백 5십 달란트, 금이 백달란트나 되었습니다.

     

    아닥사스다가 왕이 은 백달란트로 주었습니다. 은 백달라트가 시가 150억 정도 되니깐 은 칠백오십 달란트는 1100억 원 정도, 금 백달란트(금1달란트 12억) 는 1200억 원 정도 됩니다. 여기에다 각종 금과 은 기물들을 포함한다면 최소한 잡아도 오늘날의 돈으로 2300억원이 넘는 돈이 됩니다. 이 많은 돈을 아닥사스다가 왕에게 받아서,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에스라와 귀환자들을 노리는 강도들도 이었을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기하는 대적들도 에스라와 귀환자들을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강도나 대적자들이 공격을 가한다라면 하나님께 드릴 값비싼 예물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사람의 목숨까지도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위기와 시련 앞에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금식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자신들을 보호하고 지켜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게 하나님은 이러한 에스라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31절에 보면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셨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에스라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기 위해 매복을 했던 무리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도우셔서,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끝이 아닙니다. 일꾼의 문제, 대적의 문제 뒤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것은 물질의 문제였습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드리기 위하여 귀중한 예물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예물은 오늘날 시가 2000억이 넘는 것들이었습니다. 이 예물을노리는 사람은 강도나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의 위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그 돈에 손을 댈 수 있다라고 에스라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하나님께 받쳐질 돈과 기물들의 양과 무게를 수치로 기록하여 철저하게 하나님의 물건을 구별하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내가 제사장의 우두머리들 중 열두 명 곧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의 형제 열 명을 따로 세우고” 24절부터 30절까지 보면 에스라가 아닥사스다가 왕에게 받은 예물과 선물들을 구별하는 모습들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들 중에서 믿을 만한 사람들을 열두 명을 따로 세워 하나님의 물건과 예물을 철저하게 관리하게 합니다. 외부의 위험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스스로 유혹에 빠져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대어 죄를 짓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조심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에스라의 철저한 준비를 받으셔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도우심과 어려움, 하나님의 은혜와 악한 세력들의 방해, 이러한 일은 계속반복 됩니다. 영원한 형통도 없고, 영원한 고난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형통가운데, 앞으로 다가올 믿음의 시련을 준비하고, 겸손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의 시련을 당할 때는 낙심하지 말고, 곧 있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믿음의 시련을 극복해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뀌면 안 됩니다. 형통 중에 교만하고, 고난 중에 낙심하면 안됩니다. 성경은 형통과 시련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처럼 형통과 함께 시련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바로 형통할 때는 교만하지 않았고, 겸손히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시련과 고난중에 낙심하지 않고,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미래, 우리의 인생,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라는 것을 항상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라면, 형통할 때 교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닌 하나님이 이 형통함을 허락하여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련중에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 이 교훈을 여러분 기억하시면서 형통과 시련이라는 경험을 통해서‘우리의 희의 미래가,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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