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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라 08:24-36/ 믿음의 원리를 배우자 [에스라]
  • 조회 수: 335, 2018.04.15 13:04:14

  • 이제 에스라는 바사제국을 떠나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많은 어려움과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레위 사람들이 없어 겪게 되는 일꾼 부족의 문제, 대적과 원수들의 매복과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는 걱정과 너무나도 많은 물질을 가지고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혹여나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대어 죄를 지을 수 있는 문제 등, 에스라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놓고 많은 어려움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의 순간순간마다 그 어려움을 해결하고 극복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들을 열어주셨고, 때에 따라 돕는 은혜를 단비를 내려주셔서 모든 시련의 순간들을 지나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 모든 문제와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적인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인간의 편에서 볼 때, 에스라의 입장에서 볼 때, 에스라 역시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 가운데 최선을 다했다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붙잡아 주시고, 에스라를 보호하여 주셨지만, 에스라 역시 가만히 앉아 두손 놓고 있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길을 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기억해야할 것은 하나님 편에서 하실 일이 있고, 우리 인간의 편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감당해야할 책임들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문제들을 믿음으로 대처하고, 지혜롭고 분별력 있게 행동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에스라가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들의 상황을 직면할 때 마다 과연 어떻게 그 문제와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원리에 대해서 배워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는 에스라의 모습을 통해서 물질 관리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에스라와 귀환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갖고 가는 예물은 오늘날 시가로 2000억 원이 넘는 큰 액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예물을 노리는 사람은 대부분 강도나 이스라엘의 원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에만 위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도 위험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예물에 손을 댈 수 있는 위험이었습니다. 여호수아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아이성을 공격하는 이야기가 성경에 나옵니다. 가나안 땅의 크나큰 성 여리고 성을 무너Em리고 승승장구 했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성이라는 작은 성을 공격했다가 크나큰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크나큰 여리고 성을 이길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 작고 작은 아이성을 이기지 못하게 하시는지’ 기도하며 물어봅니다.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무리중에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댄 자가 있다’라고 말씀하셨고, 결국 아간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사실일 발견됩니다. 아간 한사람 때문에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한 것입니다. 아마 에스라는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이러한 말씀들을 배우고 알았을 것입니다. 과거 아간 한 사람이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대어 2백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해를 입었던 것처럼, 오늘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자유를 얻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데, 혹여나 아간과 같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면 큰일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에스라와 귀환자 무리들 전부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알은 에스라는 처음부터 이러한 죄의 싹이 자라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을 세웁니다. 특히 아간처럼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물질 부분에 대한 그의 관리는 아주 철저하였습니다. 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내가 제사장의 우두머리들 중 열두 명 곧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의 형제 열 명을 따로 세우고” 24절부터 30절까지 보면 에스라가 다리오 왕이 하나님께 드린 예물을 정확하게 구별하고 예물과 기물들의 양과 무게를 수치로 기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정확하고 객관적인 회계장부를 만든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물건을 구별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만든 것입니다.

     

    또한 제사장 들 중에서 믿을 만한 사람들을 열두명을 따로 세워 하나님의 예물 앞에 사람들이 얼씬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 것을 철저하게 구별하고, 계획을 세워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고 정확하게 관리하는 것은 이 재물이, “이미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고, 이 받쳐진 하나님의 것에 욕심을 두고, 마음을 두어 죄를 짓지 말아라” 라는 의미도 담겨져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특별히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 중 일부를 드리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흔히 이것을 헌금 혹은 예물이라고 합니다. 십일조, 감사, 구제, 선교, 건축등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받치기 위해서 일정량의 물질을 따로 떼어놓습니다. 특히 십일조와 같은 것은 우리의 수입의 십분의 일을 따로 때어놓아 적게는 일 주일 전부터, 많게는 한달 전에 떼어 놓아 주일날 대 예배 시간에 드리지 않습니까? 작정헌금, 절기 헌금도 그렇습니다. 내가 가진 것 중 하나님께 드려야할 물질을 정확히 계산하여 헌금 봉투에 넣어 둡니다. 헌금 봉투에 넣어 두지는 않더라도, 내가 얼마를 드려야지 결정하여 따로 예물을 떼어놓고, 돌아오는 주일날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주일 전날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돈을 써야 하는데, 내 주머니에 돈이 없습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헌금봉투에 들어있는 돈이 아닙니까? 헌금하려고 따로 떼어 놓은 예물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헌금 시간에 예물을 드릴 때 하나님께 받쳐진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예물을 받으시는 때는 이미 우리가 집에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따로 떼어 놓오 구별해 놓을 때, 마음가운데 생각하고 준비할 때, 이미 받쳐진 것이고,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헌금시간에 예물을 드리는 것은 내가 이미 받쳐진 예물을 다시 한번 하나님께 올려드린다는 가시적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모른체, ‘내가 아직 예배시간에, 헌금시간에 받쳐져야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로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전에 이미 우리의 마음과 예물을 받고 있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집에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야할 것들을 개인사정으로 인해 내가 써버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일부 성도들은 나중에 다시 값는다고, 나중에 다시 채운다고 말하면서, 일단 자신의 필요를 위해 먼저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갔다 쓰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다시 값거나 채우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가져간 대로 다 나가버리고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받쳐진 하나님의 것을 쓰면, 그 것은 다 날라가 버립니다.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잠깐 쓰고 다시 채우려고 해도 하나님은 이미 그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의 마음의 우선순위와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신앙의 선배들이 십일조를 안내면, 안낸 십일조 만큼 사고나 다른 일로 통해서 쓸데없이 나가버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십일조 뿐만 아니라 절기 헌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등 각종 예물들을 다음 주일날 드릴 려고 준비해놨다가, 급한 일이 있어 쓸때. 이상하게 그만큼 다시 헛반대로 나가버립니다. 이러한 것들을 경험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개인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또한 공적인 영역의 물질 관리의 원리도 배웁니다. 하나님의 것을 잘 구분하여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드려진 것을 거룩하게 잘 관리하는 것도 매우 소중한 일입니다. 공적으로 하나님의 예물들을 관리할 때는 믿을 만한 사람들을 세워야 합니다.

     

    많은 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울 때, 믿음과 인격을 보지 않고 세상에서 맡고 있는 직업적인 특성을 보고 직분자를 뽑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 얼마 나오지도 않았고, 믿음과 인격이 증명되지 않았는데, 학교 교사이거나 교장인 사람에게 주일학교나 학생부 교사, 부장을 맡기기도 합니다. 변호사나 의사, 공직자나 높은 사람들,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교회의 중요 직분을 맡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믿음이 없지만 사회적인 지위와 영향력이 있어서 교회에 유익을 준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거나 적은 사람이 교회의 직분을 맡고, 무엇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일을 맡은 다면 인간적으로 도움을 얻을 수는 있지만 영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또한 교회에서 돈 많은 사람을 장로로 뽑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교회 신앙생활한지 얼마 되지도 않고, 구원의 확신도 없고, 예수님을 영접한지 안했는지 구별이 되지 않은 성도를 장로로 임명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돈이 많으니 일시적으로 물질적으로 교회에 많은 도움은 주지만, 결국적으로 영적으로 교회가 중요한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항상 이 장로님이 오히려 방해를 하며 많은 장애를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영적인 일은 세상의 일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일은 대부분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어리석은 일들이 많습니다. 인간저인 계산이나 합리적인 방법으로 이해가 되지 않은 일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의 직분을 맡고 중요한 제직을 맡은다면, 이러한 순간 큰 걸림돌이 됩니다.

     

     

    무엇보다 교회가 영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위기를 경험할 대,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에 가장 압장 서는 사람들이 믿음이 없이 직분과 제직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제정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약한 사람, 하나님 보시기에 인정받지 못한 사람,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에게 직분과 제직은 물론 재정을 맡기면 안 됩니다. 어찌 보면 재정을 맡은 직분자는 더 큰 기준을 성경은 요구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제사장들 중에서도 우두머리들을 하나님의 제정을 맡아보는 사람들로 정합니다. 제사장이면 당시 최고로 높은 종교 지도자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제사장들도 이일을 맡기지 않고 제사장들 중에서도 더 높은 우두머리 제사장들 12명에게 제정을 맡게 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제정을 맡는 사람은 믿음이 그냥 좋은 정도를 뛰어넘어 아주 좋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한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맡아 보았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교회 제정은 한명이 아니라 여러명이 함께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선배들은 교회에서 가장 믿음이 좋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일꾼이 최소 3명이 되어야 제정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혼자면 시험에 들수 있고 두명도 혹여나 시험에 들수 있고, 세명이 되어야 서로 영적으로 기도하며 인간적인 연약함에서 오는 잘못과 실수를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에스라가 하나님의 예물들을 관리하는 모습가운데서 하나님께 드릴 예물은 철저하게 구별되어 관리해야 함하는 개인적 물질 물질 관리 원리와 교회 재정의 공적인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우리는 에스라의 모습 속에서 기도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21절과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21절에서 에스라는 자신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도중 강도를 비롯하여 많은 대적자들이 자신들을 공격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모든 백성들이 금식을 하며 평탄한 길을 허락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에스라가 이러한 위험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바사 왕에게 자신들을 보호해줄 군대를 요청하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당시 왕의 전적인 총애를 받은 에스라가 왕에게 부탁했으면, 분명 당시 최강의 군대였던 바사제국의 정예병들을호위 부대로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에스라는 자신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서 왕에게 자주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아마 에스라의 대화중에 당시 아닥사스다가 왕은 하나님을 완전하게 믿지는 않더라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지식 정도는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라의 말에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믿어도 보고 헌신도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2000억이 넘는 예물을 에스라에게 맡기고,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받치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아닥사스다가 왕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증거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반드시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이다라고 고백까지 했던 에스라가, 아닥사스다가 왕에게 자신들을 보호하고 지켜줄 군대를 요구한다라면, 너무나 모순된 말처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에스라는 만약 왕에게 군대를 요청하면 왕은 거절은 하지 않겠지만 속으로 ‘에스라야 너는 분명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을 보호하고 지키신다고 했는데 나에게 너희 백성들 지켜줄 군대를 보낸다고 한다면.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능력이 적은 신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왕에게 군대를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과 신앙으로 여행길에 올랐는데, 막상 여행을 시작하자니 많은 걱정과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고 마침내 응답해 주셨습니다. 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여기서 에스라에게 배울 수 있는 기도의 원리, 그것은 인간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실 에스라가 대적들의 손에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에스라의 무리는 적은 무리입니다. 적들의 군대가 엄습해 오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에스라의 능력이나 지혜를 벗어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인간의 손을 벗어난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문제라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일에 대해서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강한 원수들의 손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란 나는 한계가 있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항상 깨닫고, 하나님이 주권적과 능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수단입니다. 하나님의 간섭가운데 이루어져야할 일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그 일을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에스라에게 배울 수 있는 기도의 원리입니다.

    우리오늘 에스라를 통해서 물질 관리의 원리와 기도의 원리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에스라처럼 우리는 인생가운데 무수한 위기와 어려움들을 만납니다. 그때그때 마다 우리 인간의 지혜대로, 인간의 생각과 세상의 원리대로 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이 위기와 어려움들을 무사히 극복해 나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의 능력으로는, 우리의 생각과 방법으로는 인생의 위기를 헤쳐 나갈 수 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에스라가 보여준 믿음의 원리들은 우리에게 매우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철저히 구별하고 준비했던 에스라의 모습, 인간의 연약성과 한계성을 깨닫고,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했던 에스라의 모습 속에서 에스라의 믿음의 원리를 배우고 적용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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