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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6. 에스더 01:01-04/ 왕후 와스디를 폐함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12, 2018.03.14 15:23:36
  • 이제까지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기 전까지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드린다면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주전 722년에 므낫세 왕 때에 앗수르 제국에 의해서, 남쪽 유다왕국은 시드기야 왕인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이렇게 멸망당하고 난 후 비참한 식민지 삶이 시작되는데 다니엘서의 말씀, 오늘 우리가 읽은 에스더의 말씀은 다 식민지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그 중에서 에스더서에 나타난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역사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몇 가지 내용을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에스더의 말씀은 바사, 즉 페르시아에 정착한 유대인들의 이야기입니다.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유다 백성들은 200-300만 명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러나 얼마 후 바벨론은 다시 페르시아에 멸망하고, 마침내 포로로 끌려온지 70년이 지난, 기원전 536년에 1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집니다. 이 때에 약 5만 명의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으로 귀환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정착해서 남게 됩니다. 에스더의 내용은 바로 1차 포로귀환 이후, 페르시아 땅에 남아있던 유대인들에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당시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투철한 신앙심으로 무장해서, 예루살렘과 유대의 회복을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페르시아에 남아있는 자들에 대해서 정죄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에스더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물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고국을 재건하고,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유대로 돌아오지 못한 대다수의 유대인들도 사랑하십니다. 에스더의 말씀은 바로 이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디에 있든지 그들을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에스더의 가장 핵심 된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입니다. 이방 땅에서도 하나님은 섭리로 다스리신다는 주권와 능력을 말해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등장하는데, 아하수에로는 그 아버지 다리오 왕과 더불어 수 많은 나라들을 굴복시킨 뛰어난 왕입니다. 일반 세계역사에서는 그 이름을 '크세르크세스' 라고 하였습니다. 아하수에로는 끊임없는 정복전쟁을 실시해서 그 나라는 인도에서 구스 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까지 미치는 대제국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업적과 통치를 자랑하기 위해서 잔치를 벌입니다. 그것이 2-4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아하수에로는 무려 180일 동안 잔치를 벌입니다. 127개 지방의 귀족과 관리들을 차례로 불러 잔치를 벌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대한 잔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드디어 사건이 하나 벌어집니다. 10-11절에 보면, 잔치가 한창 무르익자, 기분이 좋아진 아하수에로 왕은 왕비 와스디를 부릅니다. 왕비 와스디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지라, 왕비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아마도 와스디는 평소 왕의 총애를 받은지라, 평소 왕이 너무 잘해주어서 그랬는지, 왕의 명령을 가볍게 여긴 것 같습니다. 왕비는 왕의 명을 거절한 것입니다. 아무리 왕비일지라도 고대 사회에서 왕의 명령을 거절하는 것은 곧 반역으로 간주됩니다. 게다가 많은 신하들과 백성들 앞에서 왕의 체면이 이만저만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화가 난 왕은 왕비인 와스디를 폐위하고 맙니다.


    이렇게 에스더 1장은 페르시아 왕궁에서 벌어진 하나의 사건을 말해줍니다. 그리 큰 사건도 아닌, 왕비의 실수로 인한 왕의 노여움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의 배후에서 역사와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가장 높은 권좌에 앉아있는 페르시아 왕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이 에스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을 보면 아주 사소한 일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보아야 합니다. 아내를 자랑하고 싶은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 그리고 사려깊게 행동하지 못한 와스디의 행동이 발단이 되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면 거창한 사건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에스더를 통한 구원의 역사는 아주 사소한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의 사소한 일상들, 밥 먹고, 잠자고,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이러한 사소한 일들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는 진행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엘리야를 통해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큰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 가운데 계시지 않고, 들릴 듯 말 듯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나십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지극히 작은 일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10:31).  먹고 마시는 일! 그 삶의 소소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 에스더의 말씀을 통해서,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온 역사를 주관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오늘 내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고, 하나님을 뜻을 찾고 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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