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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헤미야 02:01-06/ 기도와 함께 해야 할 일 [느헤미야]
  • 조회 수: 716, 2018.04.18 15:32:29
  • 문화적 선진국 사람들과 후진국 사람들이 구별되는 차이중 하나는 내일을 대하는 태도라고 합니다. 문화적 후진국에 속하는 사람들일수록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런 근심이 없다라는 뜻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과 소망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진국 사람일수록 저축하는 습관이 없고, 그냥 오늘을 즐기면 된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미국에서 흑인들이 노예로부터 해방이 될 때, 흑인 지도자들이 동료 흑인들에게 가장 힘들여 가르치고자 했던 것 중 하나가 저축의 중요성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물론 훨씬 나아지기는 했지만 빈곤층 흑인들의 경우는 아직도 저축생활을 몸에 익히는 것을 그렇게 어려워한다고 합니다.



    돈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원인은 내일에 대한 혹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조국과 조국의 백성들에게 안정되고 가치있는 내일의 미래를 선물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가정 먼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가 기도를 시작했다고 해서 당장 그의 조국에 어떤 변화가 나타났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조국의 미래의 소망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의 기도의 모습 속에서 미래의 소망을 품을 때 가져야할 믿음의 사람들의 자세에 대해서 배울 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를 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미래의 소망을 위해,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기도와 함께 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느헤미야는 기도하며 인내로 기다렸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희망을 품고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희망을 버린다면 더 이상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조국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여 마침내 조국에 돌아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계획을 시작하기 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아십니까? 본문 1절에 보면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이라고 되어 있는데 오늘날로 보면 4월 달입니다. 느헤미야 1장 1절에 보면 느헤미야가 기도한 때가 '아닥사스다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이었습니다. 기슬르월은 오늘날 11월 달입니다. 그러니깐 적어도 4개월 이상 기도하였고, 오늘 본문에서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자신의 친척이 예루살렘에 갔다가 와서 조국의 어려운 현실을 느헤미야에게 알렸습니다.



    성벽이 불에 타서 무너지고, 자신의 동족들이 도둑과 약탈자의 손에 괴롭힘을 당한다라는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4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느헤미야는 어느날 왕 앞에서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4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느헤미야는 충분히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충분히 기다린 것입니다. 인내의 기도 가운데 느헤미야 안에서는 자신의 민족을 향한 아름다운 소망이 잉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 나라 사람들과 성도들은 이러한 느헤미야의 인내와 기다림의 기도를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인가부터 빨리빨리 문화로 물들어 버린 우리 한국 사람들은 기다림과 인내의 미학을 실천하기 힘들어 합니다.



    외국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우는 한국말이 "빨리 빨리”라고 합니다. 이런 습관은 우리의 신앙생활과 기도생활에도 영향을 끼쳐서 우리는 무엇이든 빨리빨리 이루려고 합니다. 신앙의 성숙도 빨리, 기도의 응답도 빨리, 당장 무엇인가가 빨리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소위 인스턴트 문화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신앙과 기도조차 인스턴트식으로 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성경은 신앙생활을 비롯해 기도란 시간과 함께 열매를 맺는 영적인 장입니다. 영적인 성숙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기도란 사실 무엇인가를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가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믿음과 신앙이 자라가고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기도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들이 다 응답받게끔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내 신앙의 성숙에 따라서, 내 믿음 생활의 진전에 따라서 천천히 응답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 가르쳐주시면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 지속적으로 간구하는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것을" 알려주십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기도하고 믿음으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장의 응답보다 기다림의 과정을 거치게 하시는 이유는 기도의 응답 그 자체보다 기도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를 더 중시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지혜로운 왕이 자신의 아들에게 나라와 왕국을 물려주려고 하는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들은 하루빨리 왕의 자리에 앉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나라와 왕국을 다스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아버지 왕은 아버지의 왕국과 나라를 빨리 물려받는 것보다, 아들이 이 모든 것들을 상속받기에 합당한 자질을 갖추는 것을 먼저 바랄 것입니다. 아들이 지혜롭고 인격적으로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다림의 시간이야말로 아들에게 있어서 미래의 소망을 잉태하고 준비하는 시간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의 소망을 잉태하려면, 기도하고 믿음으로 기꺼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 느헤미야는 기도하며 지혜롭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하며 기다리면서 또 한가지 한일이 있었다면 내일을 계획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자신이 모시고 있었던 아닥사스 왕에게 질문을 받습니다. '느헤미야아 너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차 있구나? 무슨 문제가 있느냐? 내가 도와 줄것이 없느냐?' 왕이 느헤미야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는 마음속에 품고 기도하던 제목을 내어놓게 됩니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지금 느헤미야는 "왕이사여, 저의 고향, 저의 조국이 지금 황폐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근심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왕이시여 저에게 저의 민족을 도울 기회를 주시옵소서."라고 왕에게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이 느헤미야의 소원을 듣고 '어떻게 내가 도워주면 되겠느냐?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느냐?"라고 다시 묻습니다. 6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느헤미야가“기한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계획이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 것인지,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에 대해서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왕의 물음에 즉각적으로 대답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7절과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7절과 8절에 보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왕에게 아뢰는 모습이 나옵니다. 왕에게 하루 이틀있다가 이러한 계획을 말한 것이 아니라 왕이 묻는 즉시 느헤미야는 이렇게 상세하고도 구체적인 계획을 말했던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예루살렘을 지역을 관할하는 총독들에게 왕의 명령을 내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까지 도착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하고 왕의 관리들이 성전재건에 필요한 모든 물질과 재료들을 제공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왕에게 아뢰는 것이었습니다. 7절과 8절에서 느헤미야가 왕에게 아뢰는 모습을 보면 느헤미야가 4개월이라는 기간동안 기도와 더불어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계획에 대하여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은 기도하면 되었지 계획이 무슨 필요하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분들의 입장을 극단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계획하면 되었지 기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고를 역시 극단적인 이성 주의자, 인본주의적인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하며 계획합니다. 기도에서 소망과 계획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꿈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꿈이 실현되느냐 못 되느냐를 결정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계획을 갖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두 아들 모두 개를 기르는 것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한아들은 꿈만 꾸고 '개 한 마리를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만 합니다. 그런데 한 아들은 개꿈을 꾸며 개집을 설계하고 짓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아버지이고 한 아들에게만 개를 사주어야 한다면 어떤 아들에게 개를 사주시겠습니까? 꿈만 꾸는 아들입니까? 아니면 소원을 품고 계획하는 아들입니까? 복된 내일의 소망을 품고, 그것을 잉태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라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와 간구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소망을 따라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아는 기도하며 기회를 잘 붙잡았습니다.

    기회를 붙잡는다라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며 계획한 바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결정적인 때를 찾고 그 때가 오면 이를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회란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기 어려운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색과 근심의 표정이 있는 것을 보고 왕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4절에서 왕이 다시 묻습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이 느헤미야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묻자 느헤미야는 잠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아마 이것은 순간적으로 드리는 마음의 기도였을 것입니다. "하나님 저에게 기회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기회를 잘 잡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감사의 기도와 함께 이제 결정적인 기회를 잘 붙잡을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느헤미야는 감사 기도와 지혜를 구한 기도를 올린후 드디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왕에게 말합니다.

    '저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는 마침내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기다린다는 것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회를 찾는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한 것은 바로 그 기회를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1장 11절에 보면 느헤미야는 '왕 앞에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고, 이 기도가 응답으로 구체적인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 목사님은 '우리가 막연히 기도하면 주께서도 막연히 응답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구체적이라면 주님의 응답도 구체적일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기회를 위하여 기도했고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그 기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활동하던 시기 (1961년) 존 케네디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케네디 당선자의 집에 초청을 받아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케네디는 빌리 그래함 목사님에게 신앙이야기를 하였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습니까?”그러자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물론입니다.' 라고 말했고 케네디 당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초림과 재림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주면서 "예수님의 초림은 인간의 죄 문제의 해결과 새로운 삶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구주로서의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위해서오신 것이며, 예수님의 재림은 인류의 심판과 천국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다시 오시는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케네디는 나중에 시간이 나면 더 자세히 듣고 싶다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몇 년이 지난후,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다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백악관에 초청되어 기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빌리 목사님은 감기에 걸려 있었는데 기도회가 끝난후 케네디가 대통령이 "목사님, 잠시저와 이야기좀 해주시겠습니까? 잠시 목사님께 묻고 싶은 말씀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빌리 목사님은 심한 감기에 걸려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제가 심한 감기가 들어서 대통령님께 감기를 옮겨드릴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감기가 나으면 꼭 한번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나중에 다시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케네디 대통령은 아쉬운 표정으로 '그렇게 하시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소식을 듣게 됩니다. 대통령 암살 소식을 듣자 마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케네디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자신의 감기로 인해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룬 것이었다고 합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마음속으로 매우 아파하면서 슬퍼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다음 기회는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때에 민감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때로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셨고,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대속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의 때가 가까이 오자, '내 때가 이르렀다'라고 하시면서 고난의 잔을 마시며 그분의 때를 붙잡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신한 그의 죽으심과 부활로 저와 여러분은 구원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저와 여러분,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고 영접한 우리들은 인생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께로 나아와 기도하며 그분이 주신 소망과 약속들을 붙잡는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느헤미야 처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하며 인내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며 믿음으로 계획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회를 붙잡을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통해, 그리고 믿음의 인내와 소망을 통해, 기도의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아름답고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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