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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헤미야 04:01-06/ 비판을 극복하는 믿음 [느헤미야]
  • 조회 수: 474, 2018.04.18 15:42:11
  •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다른 이들에게 비방과 조롱을 받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상대에게 비판을 받는다 라면 그 일은 우리를 낙심과 절망케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성경은 비판에 대하여 두 가지 입장을 취합니다. 하나는 긍정적인 입장인데 이것은 영적인 일을 분별하는 일에 대하여 사용될 때 긍정적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성도들이 영적으로 개인과 공동체를 세우고자 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할 때, 잘못된 것들을 비파하고 분별력 있게 행동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부정적인 비판이 있습니다. 이것은 분별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비판이 사용되어질 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악한 일을 버리기 위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려는 비판은 사탄이 주는 것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비판입니다.



    이런 비판은 하나님이 아닌 사탄에게서 온 것이고, 성경은 이런 비판을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마태7:1-2) 오늘의 본문의 내용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을 본격적으로 시작함에 있어서, 그가 직면해야만 했던 부정적인 비판들에 대해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맡겨주신 사명들을 감당함에 있어서, 원수들이 느헤미야를 비판하며 그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서 원수들은 끊임없이 느헤미야를 비방하며 예루살렘 성벽재건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롱과 비방가운데에서도 느헤미야는 믿음으로 이를 훌륭하게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느헤미야의 모습 속에서 악한 비판에 대응하는 성경적인 방법, 믿음으로 파괴적인 비방과 조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파괴적인 비판에 직면했던 느헤미야는 제일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제건한다라는 소식이 이방민족들에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다라는 소식을 듣자 이방민족의 반응은 크게 두가 였습니다. 하나는 크게 분노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분노한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의 부흥을 시기하고 질투했기 때문이고, 비웃는 이유는 그 일이 이루어 지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변 이방 민족들이 느헤미야를 향해 심한 비판을 가하며 조롱하였습니다. 2절과 3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벽재건은 불가능한 일이며, 손가락만 건드려도,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이러한 비판을 들었을 때 얼마나 화가났겠습니까? 우리는 4절과 5절의 느헤미야의 기도 속에서 그가 당시에 느꼈던 수치와 모멸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4절과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느헤미야는 기도 중에 '자신들이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들이 욕하는 그대로 그들의 머리로 돌아가세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이어지는 5절에서는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고 이들을 용서하지 말아달라고'기도를 합니다. 느헤미야가 얼마나 원수들의 비방과 조롱을 받았으면 이런 기도를 했겠습니까?

    얼마나 억울하게 느꼈으면 그런 기도를 했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가 직접적으로 자신을 공격하는 상대방에게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대신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기로 작정을 합니다. 느헤미야에게 있어서 기도가 비판을 대응하는 첫 번째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불신자들이 성경을 보면서 느헤미야와 같은 이런 저주 기도가 과연 합당한 것인가를 트집 잡기도 합니다. '거룩한 성경에, 믿음의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이런 기도를 드려도 되는가? 저주의 기도가 합당한 것인가?' 영국의 유명한 무신론자였던 C.S루이스 라는 사람도 이러한 트집을 잡으면서 성경과 기독교를 공격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나 시편을 읽어볼 때면, 너무나도 저주의 기도가 많아 그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시편 24편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를 푸른 초원에 누위시며..' 이렇게 아름다운 기도의 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러한 시보다는 원수들에 대한 다윗의 저주들이 기록된 것을 보고 '이것이 어떻게 성경인가?'라는 물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다가 수십 번이나 성경을 던져버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성경의 말씀들을 통해 그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묵상 중에 '적어도 성경은 인간의 본 모습과 감정을 숨김없이 보여준 가장 정직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깊게 나아가 성경의 하나님, 특히 시편의 하나님은 '다윗과 같이 누군가를 저주하고픈 마음까지도 받아주시는 마음이 넓으신 하나님 이시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것이 깨달아지고, 마음이 열린 C.S루이스는 복음과 말씀 앞에 자신을 회개하여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하나님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불평, 어떤 좌절, 어떤 감정을 쏟아 놓아도 넉넉히 들어주시고, 받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께 느헤미야는 자신의 억울한 감정을 쏟아놓고 있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셨습니까? 복수하고 싶은 원수가 생기셨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내가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내가 누군가에게 쏟아놓고 분풀이 하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 앞에 쏟아 놓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다 이해하시는 하나님께 고백하고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말도, 어떠한 기도의 제목들 나무라지 않고 들어주시는 마음이 넓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도우실 것입니다. (마10:36)예수님께서는 재미있게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이니라' 이 말씀대로 때로는 남편이, 때로는 아내가 우리의 원수가 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부모가, 때로는 자녀가 원수일 때도 있습니다. 또한 가장 가까운 형제 자매들이, 또한 나의 친구가 원수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느헤미야의 모범을 배운다라면, 우리는 직접 붙어서 싸우며 반격하는 것이 아니라, 제일 먼저 모든 것들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나와 호소하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억울함을 완벽하게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에게 호소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특히 억울하게 비판당하고 공격 당할 때 성도의 처방 기도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비판을 당할 때 느헤미야는 맡은 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감당했습니다.

    느헤미야를 공격했던 원수들의 작전 중 하나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일꾼들이 초반부터 기운이 빠지도록 하려는 김빼기 작전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건축할 의욕을 좌절시키고, 일을 포기하도록 만드는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이때 느헤미야가 만일 실망하여 성벽 건축을 포기했더라면 적들은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이것이 바로 사단의 작전인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그의 사역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사역이 진전되지 못하게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다행한 것은 당시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작전에 말려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맡은 바 일에 여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당한 비판 혹은 억울한 비방과 조롱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에 더욱 집중하고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하나님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비판과 방해가 있더라도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가지 감당해야 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지 않는 다라면, 우리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야는 비판가운데 하나님을 기억하였습니다.



    아무리 사명감을 가지고 소명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도 비판이 지나치면 그리고 비판이 계속되면 우리는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너무나도 크고 심한 비판과 조롱이 계속될 때,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몰라 마음 가운데 낙심과 절망이 밀려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는일입니다. 이 일을 시작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느헤미야가 한일이었습니다. 7절과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느헤미야의 지도아래 예루살렘 성벽이 점점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성벽재건이 이제 절반이 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조롱과 비방의 말만 하던 그들이 힘과 무력으로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협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들의 군대를 동원하여 성벽을 재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한다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사람들 안에는 두려움과 패배감이 사로잡히기 시작합니다.

    10절과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손에 돌과 흙을 들고 성벽을 건축하고 있을 때, 적들이 뒤에서 급습을 하면 모두가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졌고, 성벽 재건의 사역은 위기에 빠집니다. 이 위기의 순간에 느헤미야가 전한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두려움에 빠져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느헤미야는 외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하나님을 바라보라. 사람을 두려워 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러워 하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낙심보다 더 큰 재앙이 있다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만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다시 일어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누구보다도 짧은 세상길을 걸어가며 가장 비판을 많이 받았던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이 받으셨던 비판의 죄목들을 기억하십니까?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백성들을 미혹케 하는자, 율법 파괴자, 신을 모독하는 참람한 자, 자칭 그리스도, 유대인의 왕, 이런 비판들에 대하여 예수님이 취한 태도는 두 가지 였습니다.

    하나는 침묵이셨습니다. 또 하나는 기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독과 고통의 순간 모든 것을 아시는 아버지를 기억하시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이었습니다. 아버지를 기억함이 그분의 승리이셨습니다. 우리의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아버지 하나님 또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기억함이 저와 여러분의 승리가 아니겠습니까?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유롭게 밖으로 돌아다닐 수도 없었고, 감옥에 갇히거나 사형장에 끌려가는 큰 고난을 당했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카타콤이라는 동굴에 숨어 들어가, 간신히 신앙과 생명을 유지한체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자유를 잃어버리고, 언제 생명을 잃어버릴 지 모르는 상황가운데 그들이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할수 있었던 일은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이 한마디를 마음속에 새기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조차도 힘들어졌을 때 그들은 서로를 만났을 때 물고기 표시로 인사를 대신 했습니다. “(이크투스) 물고기 표시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예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자고 서로를 격려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 없는 예수님도, 이 땅에서 비판과 조롱을 받으셨으나 마침내 승리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아버지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이 그분에게 주신 사명을 기억하심으로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분의 승리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욕을 받으시되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2:23-24) 그분의 욕 받으심과 고난 받으심, 그분의 피 흘리심과 죽으심으로 저와 여러분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하심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이제는 우리가 그분의 제자로 그분의 모범을 따라 살 때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행여나 억울하게 비판이나 조롱을 받고 계십니까? 그렇다라면 하나님을 찾고, 그분 앞에 모든 것들을 기도로 아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억하심으로 모든 파괴적 비판에을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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