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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헤미야 05:14-19/ 성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목적 [느헤미야]
  • 조회 수: 347, 2018.04.18 15:45:26
  • 우리 민족은 과거 무수한 외세의 침략을 당하며, 어려움을 겪었던 나라였습니다. 무엇보다 근대사에 있어서 일제 식민지의 통치는 우리 민족의 최대의 수치이자 최대의 아픔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불과 반세기 전에는 남과 북이 한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서로를 죽여야만 했던 민족의 비극을 경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무수한 아픔과 고통의 역사 가운데 우리 민족은 반세기가 지나지 않아 빛나는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한 때 나라를 빼앗기고, 한 민족끼리의 전쟁으로 인해 온나가 잿더미의 패허에 있었던 때가 불과 얼마 되지 않은데, 우리는 나라는 이제 주변 국가들의 부러움을 사고 동경의 대상된 나라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아직 가난하게 살고 있는 세계의 많은 나라들등른 우리도 한국 사람들처럼 잘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많은 외국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잘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습니까? 또한 한국의 문화가, 머나먼 이국 땅까지, 심지어 미국과 유럽에까지 퍼지면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즘 선교지에서는 한류의 열풍으로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하면 그렇게 많은 젊은 이들이 교회와 선교지로 몰려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민족은 지금까지 어느 시기 보다도 세계의 인정을 받고, 다른 나라의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비춰지는 때가 없을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여전이 우리 민족과 국민들 안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계속 있지만, 그래도 오늘날 우리 민족적 자신감과 긍지는 과거의 어느 때 보다 높아졌고, 국내외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민족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 됩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경제적 사정이 좋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 사정은 좋지 만은 않습니다. 청소년들은 꿈을 잃었고,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미래를 전망하기 어려운 고실업의 절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장년들과 어른들은 불완전한 직장생활과 돈벌이로,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역시 지나친 파당싸움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나라 안의 부패와 부조리 역시도 적지 않게 만연되어 있습니다.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보릿고개를 경험하고 하루 세끼를 배불리 먹기만 해도 소원이 없다라고 말한 것이 엇그젖게 같은데, 오늘날 눈부신 발전과 성공을 이룬 우리 나라와 민족이, 잘사는 가운데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이러한 위기들이 찾아온 것일까요? 너무 단순한 결론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것을 성공을 잘 관리하지 못한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과 성공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민족이 흔들리고 있고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사람에게 혹은 한 공동체에게 성공을 허락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뜻에서 그러신 것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그러니깐 내가 성공을 했다라면 그 성공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잘 감당하라는 하나님 뜻과 계획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느헤미야는 소위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흔히 우리가 성공이라고 말하는 의미는 직장에서 승진을 하거나, 사회에서 잘 나가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느헤미야는 분명히 성공했다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부터 제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처음 느헤미야는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대통령 비서 실장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런 직책을 버리고 조국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을 쌓는 일에 헌신하기로 했을 때는 나름대로 느헤미야 자신에게는 큰 희생이 따르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마음으로 왕의 보필자의 자리를 내려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이스라엘 땅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왕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땅으로 간 느헤미야를 그 땅의 총독으로 임명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은 그가 일을 잘했고 왕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유대 땅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자리에 서는 성공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느헤미야서 전체를 공부하면서 놀라게 되는 것은 그는 계속 끝까지(12년간) 겸손한 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공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만 사용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낮은 자리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이러한 느헤미야의 모습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공을 청지기적인 자세로 잘 관리하는 모범을 보인 것 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시대의 안타까운 현실은 우리민족이, 그리고 개개인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공을 잘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와 성도들 역시 이러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성공 자체에 목메여 있고, 성공만을 추구하는 이 세상의 세태를 본받고 있는 것입니다.




    성공을 위해 하나님을 믿고, 성공을 자신의 개인적인 명예와 이익을 채우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얼마나 축복해 주셨습니까? 얼마나 큰 부흥을 허락하여 주셨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세상의 지탄을 받고, 영적인 침체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성공이라는 선물을 청지기적인 자세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는 오늘 느헤미야에게서 배워야 할 올바른 성공의 관리 방법, 청지기적인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느헤미야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성공의 관리 방법, 청지기적인 자세로 성공을 관리하는 방법은 과여 무엇일까요?


    첫 번째, 성공의 자리는 출세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책임감의 자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전체를 읽어가며 느헤미야라는 사람에 대하여 느낄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느헤미야가 매우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총독이 되었다고 해서 그에게서 어떤 유형의 교만감을 가졌다라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자신의 조국과 백성들에 대한 책임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솔선수범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14절에 보면 느헤미야는 자신이 총독으로 녹을 먹지 않는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총독의 녹은 오늘날로 말하면 월급입니다. 어찌보면 느헤미야는 높은 고위 공무원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월급 역시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느헤미야는 왕의 신임을 받아 이스라엘 땅의 총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제 이 땅에서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 총독의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지 않았고, 자신이 당연히 받아 누려야 할 권리도 챙기지 않았습니다. 나라와 백성들이 어렵다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월급받기를 거절합니다. 이어지는 15절과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보다 먼저 있었던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그들에게서 빼앗았고 또한 그들의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이 성벽 공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내 모든 종자들도 모여서 일을 하였으며” 14절에서 느헤미야는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다"라고 말하고 15절에서는 이전 총독들처럼 백성을 압제하지 않았다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16절에서는 "성의 역사에 힘을 다해 도왔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에게 총독의 자리는 벼슬이 아닌 책임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출세나 성공을 책임의 의미보다는 벼슬의 의미, 혹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인식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흔히 우리 가족이나 가문 중에서 의사. 판사. 검사가 나오고, 장관이 나오면, 그것을 자랑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 자리에 있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한 것은 자랑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자체는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것, 영향력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그 만큼 주어진 책임도 많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귀한 재능과 은사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와 영역에 진출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그리스도인들도 출세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아니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그대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서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공을 갈망하는 사람이 있다라면, 성공의 자리에서 무엇을 누릴 까라는 생각보다는, 그 자리에 가기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이 자리에서 책임져야할 것들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직장에서, 사업에서, 삶의 자리에서 성공하는 삶을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라면 책임감 있게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겠다라는 의지도 함께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단순한 출세와 신분 상승의 기회가 아닌 하나님의 뜻과 게획을 이루는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았다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성공의 기회를 책임으로 수용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성공의 자리는 다스림의 자리가 아니라 섬김의 자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을 잘 살펴보면 느느헤미야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그전 총독들이 백성들을 압제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또한 18절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백성의 부역이 중하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직시하고 있었던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지금 많은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이 때 나 역시도 그들과 함께 고통을 분담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7절에서도 보면 느헤미야가 식사를 할 때 그의 식탁에 손님만 150여명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식사비용을 백성들에게 부과하지 않고 자신의 사비로 모두 충당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총독의 자리에 서면서 제일 먼저 결심한 것은 이전 총독들처럼 백성들을 착취하는 일은 결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결심을 실천합니다. 15절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그는 이런 실천이 가능했던 이유를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그의 섬김의 결심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이 백성을 섬기도록 부르셨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진지한 섬김으로 이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대다 수의 세상 사람들은 성공을 섬김으로의 부르심보다는 자신들의 사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만은 달라야합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가 아닙니까? 이 말을 하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면, 그분을 믿고 따르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섬김의 삶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입니다. 섬김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느헤미야의 모범에 따라서 성공의 기회를 섬김으로 응답하고 실천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느헤미야가 성공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감 있게, 백성들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16절에 보면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했다고 했습니다.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또한 그는 땅을 사서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 개인의 안위를 위하여 성공의 자리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를 보좌했던 모든 사람들도 심정으로 하나님의 소명에 최선을 다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느헤미야 역시 사람인데, 욕심이 없었겠습니까?


    자신이 명색히 총독의 자리에 있는데 편안한 인생을 누리고 싶은 유혹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매 순간 순간 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무슨 내용입니까? 내가 백성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으니 내 나머지 인생은 주께서 은혜로 책임져 달라는 기도 아닙니까? 우리는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성공자세를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느헤미야처럼 여러분 성공은 나의 이익을 위해, 나의 출세와 안위를 위한 수단으로 삼지 마시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통로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공자체에 너무 목메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뒤편에 서서, 우리의 삶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시선과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먼 훗날 이 땅에서 우리의 인생을 끝마치고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신 분, 우리의 창조자요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주님,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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