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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헤미야 07:01-04/ 하나님의 일꾼을 세우자 [느헤미야]
  • 조회 수: 417, 2018.04.18 15:49:07
  • 오늘 본문 느헤미야 7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서 1장부터 6장까지는 성벽재건이라는 목표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방해들이 있었지만,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모두 힘을 합쳐 성벽 재건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성벽만 잘 지어놓으면, 예루살렘이 저절로 부흥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 사역을 통해서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가 되는 일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성벽을 세운 후, 성벽처럼 또 다른 것을 튼튼하게 세워야 하는데, 그 일은 바로 사람을 세우는 작업입니다.



    잘 지어진 교회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일꾼들이 세워지지 않는다라면, 그 교회는 하나님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히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일꾼을 세우는 일에 힘을 씁니다. 느헤미야가 가장 먼저 세운 제일 먼저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사람들을 세웠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문지기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주야로 항상 지키는 자들이었고, 노래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을 제일 먼저 세움으로써, 성전이 온전히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성전이 바로 세워져야, 다른 일들도, 바로 세워집니다. 느헤미야는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성전의 일을 제일 우선시 했던 것입니다. 교회 역시 제일 먼저 감당해야 할 일은 일꾼을 가르치고 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사람,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중 하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관심을 가지고 초점을 맞추어야할 일은 교회의 건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건강은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앙적으로 건강하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을 하십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인 것입니다. (이엠 바운즈)



    그래서 교회는 사람을 세우고, 일꾼을 만드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된 사람들과 일꾼들만 세워져 있으면, 언제든지 무너지고 황폐한 곳을 다시 보수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일꾼을 제일 먼저 세우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일꾼들을 세우는 원리가 있었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일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분별력과 원리를 적용하여 느헤미야가 일꾼을 세웠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느헤미야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꾼을 세우는 올바른 원리에 대해서 살펴봄으로 저와 여러분의 삶과, 또한 우리 교회에 적용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일꾼으로 세워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레위인들과 노래하는 자들을 세움으로써, 제일 먼저 성전 봉사자들을 세웠습니다. 성전이 바로 세워져야 다른 일들이 바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일꾼을 세우는 일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성전의 일꾼들을 세운 느헤미야는 그 다음으로 예루살렘을 다스릴 사람을 세웠습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사람 두명을 선택합니다.

    한명은 느헤미야의 동생 하나니라는 사람이었고, 또 한 명은 하나냐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니는 동생이라 그런지 특별한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한명 하나냐에 대해서는 '충성되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고 소개하며 크게 칭찬 하고 있습니다. 충성되다는 말의 의미에는 진실하다는 뜻이 함께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외하다라는 말에는 두려워하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이는 사랑과 존경을 전제로 이루진 두려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51:6) 즉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진실한 사람은 근본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 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바로 살려고 하고 그렇기 때문에 진실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냐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중에 뛰어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무엇으로 뛰어나기를 원하십니까? 세상의 명예나 권세나 재물로 뛰어 나는 사람이 아니라, 부디 하나냐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뛰어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뛰어나다라는 인정을 받으음으로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귀하게 사용되어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주신 꿈과 소망을 가진 사람을 일꾼으로 세워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을 마쳤을 때, 예루살렘에는 아주 적은 무리의 사람들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크게 지었습니다.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쉽게 말해, 느헤미야가 재건한 성벽이, 지금 예루살렘성 안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의 숫자에 비해서 너무 컸다라는 것입니다. 사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건물만 큰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이렇게 성벽을 크게 건축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흥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맨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후, 그들이 한 일은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성전건축의 일이 원수들과 대적들로 인해서 방해를 받게 되고,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얼마동안 성전건축을 중단하기까지 이릅니다. 이때 하나님은 학개와 스가랴 라는 선지자를 보내셔서, 다시 성전건축을 시작하라고 용기와 격려를 해주게 됩니다. 이 때 스가랴 선지자가 한 예언의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이 예루살렘성안에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될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슥8장) 이 예언은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와 예루살렘성벽을 재건하기 전 약 70여 년 전에 있었던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이 약속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 하나님의 약속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성벽을 크게 건설했던 것입니다. 현실만 보지 않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미래의 소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신뢰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직까지 예루살렘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느헤미야는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약속의 성취를 위해 믿음으로 일을 했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의무적으로 예루살렘에 살도록 합니다.(느11:1-2)

    그리고 제비를 뽑아서 백성들 중 십분의 일을 예루살렘에 살도록 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스스로 자원해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반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스스로 자원하는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앞에서 하나님의 일꾼들을 세우는 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사역이 우선이 아니라 일꾼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충분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저 앉아 있다면 그것 역시도 잘못된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을 충분히 경험하고, 하나님 앞에 봉사와 헌신을 하기에 무리가 없는 사람이, 여전히 구경꾼의 자리에 서있으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성도들을 잘 발견하여, 억지로라도 사명의 잘에 서도록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알고, 그분의 경외하는 자리에 서도록 하는 것, 이것이 제일 우선순위이지만, 또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의 일을 미루는 사람을 잘 지도하는 것도 교회의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양자의 균형을 잘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이러한 무리 중에, '스스로 자원하여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라는 것입니다.'(느11:2) 느헤미야는 이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원하는 사람들을 기쁘시게 받으시며, 그들을 특별하게 생각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시다면, 하나님의 사역의 자리에 스스로 자원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오기로 스스로 자원한 사람들은 아마 느헤미야와 같은 꿈과 소망을 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들 역시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꿈과 소망을 가지는 사람들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열 두명의 정탐꾼중 열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신뢰하지 못하고 현실만 보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약속을 성취를 지켜보지 못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주신다라는 약속을 붙잡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꿈과 소망을 가졌고, 결국 약속을 성취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길을 갈 때, 때로는 어렵고 힘든 일들이 우리들 앞에 많이 놓여 있음을 경험합니다. 때론 낙심과 좌절을 하기도 하고,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들을 신뢰함으로, 꿈과 소망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일꾼을 세우는 일의 중요성과 하나님 일꾼의 조건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무엇보다 교회의 우선순위를 바로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사람을 기르고 세우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느헤미야는 1절과 2절에서 먼저 사람을 세웁니다. 사람을 세운 다음, 비로소 3절에서는 각 사람이 감당해야할 사역을 알려줍니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우리는 이 순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사람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다음 감당해야할 사역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순서가 바뀌고 말았습니다. 성도가 일꾼으로서 세워지기 전 먼저 일부터 시키는 곳이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봉사와 헌신을 하면서, 직분을 맡으면 보다 더 믿음이 성숙해 질 것이라는 좋은 의도가 그 안에는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봉사와 헌신을 통해 많은 성도들이 신앙을 성숙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먼저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 한 사람이 하나님을 먼저 알고, 그 하나님을 체험하고, 성도로서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배워야 올바른 사역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이 점에서 실패했습니다. 나중에 해야할 것은 먼저 해야할 것으로 순서를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연약한 상태에서 사역을 하다가, 시험에 빠지고, 낙심에 빠지고 맙니다. 내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내가 경험한 하나님, 내가 만난 하나님을 의지할 방법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갈등과 잡음이 끊이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일이 제일 먼저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성도는 먼저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직 사역의 자리에 놓아서는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어떤 것보다 우선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사역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재능이 많아서, 경제적인 능력이 많아서, 교회에 직분을 맡고, 부서의 사역을 맡고, 봉사와 헌신의 자리를 맡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이 먼저 걸쳐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동안에 하신 일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은 비중을 두고 하신 일은 열 두명의 제자들을 세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으로 교회도 사람을 가르치고 세우는 일을 감당 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과거 눈에 보이는 건물로서의 교회를 세우는데 많은 것을 투자했지만 정작 더 중요한 사람 세우는 일을 위해서는 별로 공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오늘날 한국교회의 영적인 침체와 갈등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무엇이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중직을 맡았습니다.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거듭남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에 중한 직분을 맡은 겨우도 많이 있습니다. 일반 성도들 뿐만 아니라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심의 체험이 없고, 거듭남의 체험이 없고, 하나님이 진정 어떠한 분이신가에 대한 지식과 체험이 없는 데도 사역자의 일을 한다고 뛰어듭니다. 이처럼 오늘날 한국 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세우는 일을 등한시 했습니다. 교회를 짓고, 세우면 저절로 그렇게 될지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산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느 사람들을 세우면, 저절로 교회가 부흥되고 세워지는데, 우선순위가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러한 면에서 우리가 참으로 본받아야할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을 일꾼들을 세우는 일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우리 섬기의 교회 역시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일꾼을 세우는 일에 힘쓰고 애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 나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꿈과 소망을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현실은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나를 통해 일하실 하나님, 우리 교회를 통해서 일하실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들을 붙잡고, 꿈과 소망을 가짐으로, 주님의 일을 신실하게 감당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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