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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헤미야 10:28-39/ 하나님 백성들의 서약 [느헤미야]
  • 조회 수: 396, 2018.04.18 15:54:49
  • 지난 시간 느헤미야 8장에서 예루살렘 수 문앞 광장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라가 선포하는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새롭게 되는 변화의 역사를 경험했음을 배웠습니다. 또한 9장에서는 말씀의 부흥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라는 아름다운 신앙의 결심을 하게 된 것 모습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9장 마지막에는 이러한 자신들의 결심을 문서로 작성하기로 하고, 그것에 자신들의 이름을 서명자라는 운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0절은 이러한 결심을 한 후, 민족의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대표하여 문서에 자신들의 이름을 서명하고, 앞으로 자신들이 지켜야할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기록하는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이제는 지난날의 잘못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라는 단호한 결심을 문서화하여 기록으로 남기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의 지도자 84인이 이 문서에 서명을 하기에 이릅니다. 제일 먼저 서명한 지도자는 느헤미야와 시드기야 였습니다. 나라의 제일 높은 지도자 위치에 있던 느헤미야가 솔선수범에서 제일 먼저 서명을 하고, 그 다음 그의 충복인 시드기야가 따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절에서 8절까지는 영적인 지도자인 21명의 제사장들이 서명합니다. 그리고 9절에서 13절까지는 17명의 레위지파 대표들이 서명을 합니다. 다시 14절부터 27절까지는 일반 백성의 지도자들 44명이 서명을 합니다. 이 문서는 에스라에 의해 작성되고 느헤미야와 백성의 지도자들이 모든 백성을 대표해서 서명을 한 것입니다.

    이 문서는 부흥을 체험한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라고 결심한 내용을 기록하고, 맹세의 각서를 쓴 것입니다. 10장의 앞부분은 이 문서에 서명한 대표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뒷부분에는 이 문서의 주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느헤미야를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서로 작성할 만큼 결의를 다지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흥을 사모하고, 새롭게 변화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는 모습들을 속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믿음의 모범은 무엇이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서에 기록한 구체적인 결단의 내용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겠다는 결단을 문서로 기록했습니다.



    10장 29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여’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 말씀을 지키며 살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그러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왜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처럼 지키기로 결심한 것을 문서로 작성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기준이자 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죄는 이 법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죄의 본래의 뜻이 표적에서 벗어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에서 벗어난 것, 그것이 죄인 것입니다. 말씀의 부흥이 일어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이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받은 징계와 형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불순종했기 때문에 발생했음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을 순종치 않고, 거역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등 뒤에 둔 것을 회개함으로 말씀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것을 서약하고 문서화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가르쳐 우리는 포스트모던의 시대라 일컫습니다.



    포스트모던이라는 뜻은 절대적 진리가 없고,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즉 너도 진리이고, 나도 진리가 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기독교도 진리이고, 불교도 진리이고, 힌두교도 진리이다. 상황에 따라서 모두가 다 진리가 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진리가 아니라, 우리 자신도 진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도 나도, 진리가 될 수 있다면, 굳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절대적인 진리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바로 오늘날인 것입니다. 이제 현대인들은 성경의 진리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주관대로 살려고 합니다. 내 본능과 느낌대로 사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겁 잡을 수 없을 만큼 큰 갈등과 혼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삶이 무너지고, 가정이 파괴되고, 공동체가 갈등과 혼란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각자가 진리이고, 각자의 삶이 정답인데, 오늘날 왜 이리도 많은 갈등과 혼란, 사회적 문제가 많아졌는지 모릅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하나님의 법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법이 우리 삶의 기준이고 진리의 표준인데, 그것을 무시했기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이 혼란과 아픔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복음가운데 변화가 되면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설 수 있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씀의 부흥을 체험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겠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 말씀이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순종하며 살겠다고 선포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를, 이런 부흥을 우리도 사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다시 말씀 앞에 서서. 그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느헤미야와 백성들처럼 하나님 앞에 그 결심과 결단을 우리의 마음과 영혼 판에 새겨서 기록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세상의 영향을 따라 살지 않겠다라는 결단을 기록했습니다.

     

    10장 29절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살겠다고 고백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어지는 30절과 31절에서 두 가지를 안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우선 30절에서는 자기 자녀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하지 않게 하겠다라고 결단을 하고 31절에서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겠다라고 결심합니다. 이방사람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속에는 믿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여 믿는 자녀들이 믿음에서 벗어나는 일들이 경계하겠다 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자녀들이 믿지 않는 자녀들과 결혼하면 불신앙적인 가치와 비 성경적인 삶의 영향을 받을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믿는 자녀들이 믿지 않은 배우자를 전도하는 경우도 물론 많이 있지만, 대부분 그러지 못하고 있던 믿음도 까먹는 경우가 더 많이 있음을 우리는 주변에서 목격할 수 있습니다.

    지혜의 왕이라고 불리우던 솔로몬 왕이 무너져 간 원인도 이방여인들과 결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어떻게 세상적인 영향에서 보호되며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치는 경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불신자들과 아예 관계를 끊고, 그들과 접촉하지 않으면서 인생을 살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죄 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웃들과는 분명한 경계선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다른 모습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책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거룩히 잘 지키겠다라고 말하는데, 이말 역시도 하나님의 백성답게 세상과 구별되어 살겠다라는 결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주일을 모두 자신들의 날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들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안식일 뿐만 아니라 모든 날이 하나님의 날임을 선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즉 안식일 하루만 하나님의 날이 안니라 모든 날이 하나님의 날이고, 모든 날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겠다라는 신앙고백이 안식일을 지키겠다는 결심 속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들과의 결혼과 안식일의 결단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세상의 유혹과 세상의 영향력에 현혹되어 살지 않겠다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믿음가운데 살겠다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세상에 속해 있지만 세상에서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힘써 지원하겠다는 결심을 문서로 기록 합니다.

    10장 32절에서부터 마지막 39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과 성전을 위해서 자신들이 해야할 책임을 다하겠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일에 등한시 하였습니다. 특히나 하나님의 성전을 관리하고 하나님의 종들을 부양할 책임을 등한시하였습니다. 그래서 32절부터 39절까지 내용을 보면 백성들이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었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그들이 하나님의 전을 버려둔 가장 대표적인 행동이 각종 헌물과 십일조를 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종을 돌볼 책임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사실 각종 제사나 헌물들은, 하나님이 직접 가져가서 하늘나라에 쌓아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과 일꾼들을 관리하고 부양할 수 있는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 받치는 것은 사실 하나님을 위해 받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성전과 종들을 위해서 받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전과 종들에게 받치는 것은 결국, 하나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고, 복을 빌며, 말씀으로 백성들을 양육하는 일에 사용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결국 적으로 하나님 좋으라고 받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 본인 좋으라고 받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후, 성전을 지었지만 생활이 어렵다는 구실로 십일조를 비롯해 그들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32절에 보니깐 성전을 보수하고 유지하기 위한 성전세를 모으자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33절에서는 제사때 드려지는 제물을 잘 드리자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34절에는 성전에서 사용할 나무를 서로 분담하여 공급하자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깐 지금까지는 이러한 일을 제대로 하지 안했다는 것입니다. 성전을 보수하지 못해 성전이 조금씩 무너져가고 쇄락해져가고 있었습니다. 제사 때 받칠 제물이 없어 제사를 제때 드리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제사 때 사용될 나무조차도 부족하여 불을 지필 수가 없었습니다.

    제사때 불 피울 나무도 제때 공급하지 못한 백성들이 다른 것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어지는 35절부터 마지막 까지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던 모습을 회개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성전이 버림받고 있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신들의 잘못을 깨덛고 지금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않고,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오늘날 역시도 하나님의 성전이 버림받는 일이 발생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유지되고 돌아가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는 성도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내가 안해도 다른 누군가가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교회의 일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어떠한 문제가 생기면 ‘콩나와라 매주나와라’ 잘잘못을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3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곧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그릇들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오늘날 우리는 십일조나 각종 헌금을 돈으로 드리지만,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추수하고 수확한 물건으로 십일조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양을 기르는 사람은 양을 드렸고, 농사를 짓는 사람은 농산물을 십일조로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 안에는 여러개의 골방이 있었는데, 그곳에 종류별로 차곡차곡 보관하여 놓았습니다.

    성전의 골방의 용도는 이처럼 성전의 십일조와 각종 헌물을 보관하는 보관소로 쓰였고, 또한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휴식처와 거할 처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제사장이 쓰는 골방, 문지기들이 쓰는 골방, 노래하는 자들이 쓰는 골방들이 따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오늘날 목회자들이라고 보면 되고, 문지기들은 교회 행정관리 직원들, 노래하는 자들은 찬양사역자들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직업을 가지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만 전심을 다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돈을 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오는 것으로 가정을 꾸리고 생활을 유지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져와 골방에 보관하는 헌물을 통해 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헌물을 가지고 와서 골방 보관소에 넣어두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생활을 할 수 가 없습니다. 출애굽을 비롯하여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등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성막을 만들라고 지시하시면서, 성막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책임지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꾼들의 생활을 책임져 주지 않으면, 그들이 전심으로 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고, 생활하기가 힘든데, 어찌 주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자,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의 성전과 일꾼들에 대한 책임을 망각했습니다.



    십일조도 안 바치고, 헌물도 안 받쳤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예배자체를 드리지 않았다는 말도 되며, 또한 이로 인해, 성전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먹고 살 길이 끊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생활고에 견디지 못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성전에서 나와 돈을 벌로 나가는 일까지 발생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이런 일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대형교회는 돈이 넘쳐나 예배당을 신축하고, 새로운 건물들을 새로 짓습니다. 개 교회와 성도들의 복지에 힘을 씁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 교회의 절반이 넘는 작은 교회들과 사역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일과 예배가 있는 날에는 교회를 섬기고, 평일날이나 밤 늦은 시간 가정을 책임지고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고 합니다.




    대리기사 중 적지 않는 분들이 사역자들이라고 합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개교회 중심이 되고, 대형화 되면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게 힘들게 사역하는 사역자들이 많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개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지난날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면서, 이제는 그러한 부분들을 고치고 바로 잡겠다라고 서약을 합니다. 일종의 맹세를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답게 살지 못했던 그들이,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전에 소홀히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 계기는 말씀의 부흥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백성들이 부흥을 체험하자 그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변화되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려고 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하나님의 전을 위해 헌신하려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러한 부흥, 이러한 변화를 사모해야 하지 않겠습니다. 부흥은 예배 때만 은혜받고, 뜨거워 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이 변화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세상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주의 일에 힘쓰기로, 주를 위해 살기로 삶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부흥이 해서, 우리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그리고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 이 부흥을 통해 우리 민족이 다시 살아나고, 한국교회에 부흥의 물결이 다시 시작되고, 저와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기 있기를 여러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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