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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상황 가운데 성벽이 완성되자 대적자들은 당황하고 놀랍니다. 그러나 대적자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단은 전쟁에서 패배한 것처럼 보여도 결코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단의 마지막 전술은 ‘승자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승리자를 희생자로 삼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공을 눈 앞에 둔 바로 그때 대적자들이 그를 공격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입니다. 대적들은 공격의 양상을 달리했습니다. 4장과 5장에서 대적들은 총체적으로 공격합니다. 전면전이었습니다. 그런데 6장에 들어오면서 대적들은 공격의 방향을 바꿉니다. 바로 느헤미야 개인을 공격한다는 사실입니다. 대적들이 어떻게 느헤미야를 공격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대적자들이 느헤미야를 만나자고 합니다. 피곤하고 지친 느헤미야에게 이런 대화와 타협의 제의는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긴장을 늦추고 승리의 상상에 사로잡혀 오노 평지로 갔다면 십중팔구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음모에 의해 아무도 모르는 외진 곳에서 살해당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벽 재건 사업은 그대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오노 평지에서 만나자는 그들의 제의를 거절합니다. 느헤미야는 행동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했습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시기, 적합한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인 것입니다. 바로 이 분별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분별력의 중요성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0절은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함께 할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구분할 줄 아는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함께 할 자와 함께 해서는 안 될 자들을 잘 구분해야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를 청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유린하고 착취했던 사람들입니다. 단지 경제적으로만 착취한 것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린했던 사람들입니다. 우상과 간음의 문화로 이스라엘을 온통 더럽혔던 대적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그런 대적자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고후 6:14, 15)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선민들을 세우고 거룩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느헤미야를 이끌어 나가는 힘은 하나님을 향한 집중력이었습니다. 우리 일상의 삶에서 우리를 이끌어나가는 힘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에게 거룩한 사명을 맡기셨다는 그 소명입니다. 저는 우리가 성령에 사로잡혀서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비전을 이루어 나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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