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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 느헤미야 04:01-03/ 산발랏의 공격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9, 2018.04.29 19:43:58

  •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과 주변 나라들은 성이 훼파되어 스스로 안전을 지킬 수 없는 유대인들을 적당하게 이용하면서 풍족한 삶을 영위해 왔습니다. 그런데 만약 성벽이 재건된다면 주권과 자치권이 인정되어 자신들이 그동안 적당히 약탈하고 이용했던 노동력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론사람 산발랏, 암몬 사람 도비야 같은 이방 지도자들은 느헤미야와 유대민족이 하는 일을 경계하고 근심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산발랏이 다섯 가지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가지 비난은 사단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이 땅의 사람들을 공격하는 내용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발랏의 뒤에는 사단의 세력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다섯 가지 비난은 엄밀히 말하면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약점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사단은 근거 없는 이야기로 어설프게 공격하지 않습니다. 한 번 공격해 약점을 물고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산발랏이 공격한 것은 2절에 나옵니다. 사단이 처음 공격한 영역은 그들의 ‘열등감’이었습니다.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사실 이들은 미약했습니다. 성벽도 없고 유린당하고 착취 당하고 어린아이들은 거리에서 잠을 잤습니다. 패배의 역사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들보다 약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자포자기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스스로 견고케 하려는가?’ 그들의 능력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느헤미야가 오기 십 여년 전에도 성벽을 세우려다 실패했습니다. 백년 전부터 시작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이 미약한 힘을 모아 성을 재건하려 할 때 ‘너희들은 너희의 처지를 알아라. 너희가 그것을 하겠느냐?’ 라고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들에게는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이들은 육체와, 느헤미야가 가져온 재료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있을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세 번째로 산발랏과 사단이 공격하는 내용은 가장 정수리인 제사와 믿음입니다. ‘너희들이 이 성을 다 짓고 나서 감사의 제사를 드리려는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 봐라. 그가 진정 살아있다면 너희가 왜 이 모양 이 꼴을 당하고 있는 것이냐? 그 하나님이 진정한 하나님이라면 왜 아직까지 이 일을 못하고 있느냐?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너희를 버린 것은 아니냐?’ 동일한 공격을 우리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갈 때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단은 우리의 믿음을 공격해 들어옵니다. 우리로 하여금 의심하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불신하도록 사단은 계속해서 우리를 미혹합니다.


    네 번째, 느헤미야와 유대인의 계획을 공격합니다. ‘하루에 필역하려는가?’ 2마일 가량 되는 성벽을 유대인이 힘을 모아 한 쪽에서부터 시작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3장에서 본 것처럼 가족 단위, 사람 단위로 일을 줬습니다. 그리고 ‘자 우리가 함께 일어나서 이 성을 재건하자’고 합니다. 이 느헤미야의 계획을 비웃고 유대인의 열심을 비웃는 비판인 것입니다. 계획을 하기는 어렵지만 약점을 잡아 비난하기는 쉽습니다. 사단은 그렇게 우리의 약점을 노리고 공격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산발랏은 현 실정의 상황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소화된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이들의 말처럼 성벽이 소화되고 무너져 내려 있습니다. 재료가 부족합니다. 변변치 않은 자재로 성벽을 재건해봐야 그 성벽이 얼마나 가겠냐는 것입니다. 이 말에 동의하듯 도비야는 ‘너희들이 재건하는 성벽은 여우 한 마리가 올라가도 무너질 약한 성벽이 될 것이다’ 그렇게 조롱하고 비난합니다. 격려를 들어도 힘든 때에 적들의 비난과 백성들의 소문을 들으면서 느헤미야와 일꾼들의 마음은 참담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산발랏이 집요하게 비난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의 힘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을 듣느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한 마디 말 때문에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격려의 말을 들으면 힘이 나지만 비난의 말을 들으면 자기 자신이 할 수 있어도 ‘정말 가능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한 번쯤 의심하게 됩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격려의 말은 사람을 살립니다. 그러나 비난의 말은 폭력입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어떻게 이 공격을 극복했는지는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리는 말의 힘이 가지는 능력을 이 새벽에 다시 한 번 실감하고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상대방을 죽이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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