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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 느헤미야 05:01-05/ 내부의 위기를 극복하자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97, 2018.05.01 15:58:42
  •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일을 이루는 데는 끊임없는 시험거리가 밀려옵니다. 이스라엘의 적들이 조롱하고, 비웃으며 그들의 열등감을 자극하고, 이게 통하지 않으니까 이젠 아예 무력으로 위협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한 손에는 방어를 위해 칼을 잡고, 한 손으로는 연장을 들고 성벽재건을 해야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내부적인 문제가 터집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먹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흉년이 들어 양식이 떨어지는데 적들이 노리고 있어서 밖에 나가 양식을 구할 수도 없습니다. 유다 백성의 가장들은 굶주리고 있는 아내와 자식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통이 똑같으면 그나마 위로가 되는데 부자들은 양식이 철철 넘칩니다. 이들에게 양식을 빌려보지만 부유한 사람들은 양식을 그냥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자를 받습니다. 밭과 토지를 전당 잡습니다. 또한 세금을 착취당합니다.  


    이런 굶주림과 가난의 문제는 성벽 재건 때문에 일어난 문제는 아닙니다. 그 전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흉년이 되고 일이 시작되자 더 심각하게 대두된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방인에게 착취당할 뿐 아니라 우리의 동포들에게도 착취당하고 있는가? 진정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이들은 상대적 빈곤함을 참지 못하고 느헤미야를 찾아가 울부짖습니다.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느헤미야는 이것이 큰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내부의 문제로 일어난 위기를 세가지 방법을 통해 극복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그는 화를 내었습니다. 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느헤미야가 민족의 지도자들, 부유한 자들에게 노하고 있습니다. 사실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것입니다. 잠언에는 ‘노하기를 쉽게 하는 자는 어리석음을 행한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킨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노할 때가 있습니다. 느헤미야와 같은 때 우리는 분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화를 내신 일이 있습니다. 형제가 형제의 연약함을 이용해 착취할 때 우리는 느헤미야 처럼 분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느헤미야는 분노를 가졌지만 그는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절제합니다. 분노를 가지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귀인과 민장을 찾아갑니다. 좋은 일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책망하기 위해 찾아갑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총독이 자신의 임지에서 첫번째 해야 하는 일은 그 지역을 다스리는 유지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그들과 정면대결을 선언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성벽 재건 같은 외형적인 것 보다도 ‘진정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했던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공인으로서, 지도자로서 잘못을 지적합니다. 만약 여기서 느헤미야의 행동이 끝났다면 느헤미야가 옳은 말을 했고 지도자들이 그 말을 받아들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느헤미야와 이스라엘의 패배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형제가 싸울 때 한 쪽만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내적인 문제로 싸웠을 때 한 편이 이겼다는 것은 다른 편의 패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패배를 의미합니다.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 위해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멈춥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을 모으고 집회를 갖습니다. 느헤미야의 원래 목표는 대적들이 공격하기 전에 신속히 성벽 쌓기를 마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성벽 안에서 서로를 착취하는 백성들이 있다면 성벽을 쌓는다고 해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잘못한 지도자들을 깨우쳐서 이르고 백성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지도자들은 그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의 능력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도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책망해서는 안 됩니다. 책망은 아무리 합리적인 이유와 지적일지라도 상대방에서 반감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지도자라고 다 같은 지도자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지도자만이 이런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느헤미야는 지도자들보다, 백성들보다 먼저 자신을 화해의 제물로 내어놓습니다. 그는 이전 총독들이 행했던 악한 습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세금을 걷고, 땅을 사고, 부를 축적하는 것을 스스로 끊겠다고 백성들 앞에서 결심하고 실천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포기합니다. 총독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세금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왕이 왕궁으로부터 주는 돈으로만 살기로 결심합니다. 이렇게 지도자의 그룹에서 모범을 보임으로 어떤 사람도 느헤미야를 비난할 수 없게 합니다. 이러한 느헤미야의 지도에 온 회중이 다 ‘아멘’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느헤미야의 모습에서 참된 지도자의 전형을 보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과 감정을 함께 나눌 줄 아는 지도자이지만 한편으로 그 감정을 깊은 생각과 기도, 그리고 용기 있는 결단력으로 승화시킵니다. 그는 자신이 이기기 위해 논쟁하고, 지적하고 책망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공동체 모두가 이긴 결과를 가져오는 영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이는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먼저 본을 보이는 지도자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그는 무난하게 내부의 문제를 극복하고 성벽재건의 목표를 이루아갑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대한민국에도 이런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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