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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도행전 16:11-40/ 유럽을 향한 복음의 관문, 빌립보 [행]
  • 조회 수: 735, 2014.10.14 10:33:04
  • 본문은 2차 선교여행으로 이어지는 내용으로 가고 있습니다. 빌립보 지역에서부터 유럽으로 복음이 전해지는 첫 장면입니다. 아시아로 가려고 했던 바울을 하나님이 유럽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바울이 아시아로 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왜 하나님이 유럽으로 가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아시아가 유럽처럼 되고, 유럽이 아시아처럼 됐을텐데... 말입니다. 이 바울의 선교가 아시아와 유럽의 운명을 바꾼 것 아니겠습니까? 복음이 가는 곳에 국가와 민족, 개인의 운명이 바뀝니다. 그래서 제가 아시아에 복음이 먼저 전해졌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0세기에 아시아에 복음이 전해지면서 유럽이 지금 가라앉고 있고, 아시아가 뜨고 있죠. 아무튼 생략하고....


    바울에게 유럽은 미지의 땅이요 두려움의 땅이었죠. 아무것도 모르고 배를 타고 건너와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먼저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하자 그가 받아들이고, 그 집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 집에 머무는 동안에 성을 출입하다가 점하는 여종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사단에 사로잡혀서 점치는 것에서 상당히 잘 맞히는 보통 이상의 여자죠. 신이 내려서 주인에게 많은 돈을 벌게 해 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여종이 바울과 일행을 만나 좇아와서 여러 날을 따라다니면서 바울과 실라를 선전합니다. 귀신도 알아주니까 바울과 실라.... 참 신났을 텐데 왜 괴로워합니까? 


    1. 그 귀신은 자기를 감추고 싶었을 것입니다. 능력의 사람 바울이 왔습니다. 귀신이 이제 죽었다.... 복창하는 게 낫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속여 봐야지. 그래서 제법 거룩한 채 하고, 바울의 일행을 알아보는 능청을 떠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진짜 거룩과 거짓된 거룩을 알아보죠.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맑은 영성을 가진 바울 일행이기 때문에 그 소리가 듣기 좋게 들리지 않습니다. 마치 쇠를 깕아내는 것 같은 소음에 불과하죠. 그러니 괴로운 것입니다.

    2. 그 여종이 불쌍한 것입니다. 귀신에 붙들려 점을 보니까 사람들이 알아주고, 제법 대접을 받으나 바울이 보기에는 그의 깊은 곳에서 짓눌림에 신음하는 여종의 신음소리를 듣는다는 것이죠. 그러니 제법 진리를 이야기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주는 것처럼 하면서 바울 일행을 넘어뜨리려는 귀신의 속임은 통하지 않게 됩니다. 바울이 단숨에 외치죠. 바울이 심히 괴로워 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귀신을 좇아내는 명령을 함으로써 복음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귀신이 능력이 있어도 예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능력 아래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적도 떼지 못한다. 두려워서 그렇다. 사단의 쫄개 귀신을 이래서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귀신은 바울과 같은 강자에겐 아부를 하면서 속인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자들에겐 겁을 준다. 귀신이 하는 말이 진짜인 줄 알고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가야성안교회 윤장운 목사님이 군목을 마치고, 부목사로 물금교회에 있을 때입니다. 담임 목사님과 함께 성도 집에 귀신을 잡으러 갔습니다. 담임 목사님, 또 권사님, 구역 권찰... 이렇게 가서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귀신을 쫓아내느라 애를 씁니다. 그런데 잘 안 나가요. 목사님이 지쳐서 잠깐 밖에 나간 사이에 윤장운 목사님이 귀신들린 사람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그 귀신이 이 놈은 시원찮아, 시원찮아.... 가짜야, 가짜.... 귀신이 이러니까 얼굴이 시뻘개져서 도망갔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그 때 좀 확신이 있었더라면 ‘이 귀신이 어디 감히 하나님의 종을 가짜라고 속이느냐....’ 이러면서 콱 눌렀을텐데.... 하면서 아쉬워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귀신은 이와 같이 사람을 보고 속이죠.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겁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더럽고, 악한 귀신아 물러가라, 쫓겨 가라...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귀신들린 여종이 구원 받아 빌립보의 두 번째 신자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제 사탄은 바울 일행을 물리적인 압박을 가하는 도전을 하게 됩니다. 그 여종이 귀신에게서 놓임을 받아 신통력이 사라지자 그 주인들이 바울 일행을 고발하는데 이상한 풍속을 전파한다고 고발하죠. 그 신통한 귀신도 쫓겨나는 것을 보았으면 복음에 굴복해야 하는데 재물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붙잡혀가 매를 많이 맞았습니다.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매를 맞지 않을 수도 있는데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뭐 말을 할 기회를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복음을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빌 1:27-28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립보에서 복음의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은 고난 없이 승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고난을 기꺼이 당한 했죠.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합니다. 옥중에서 간수를 만나기 위해서죠. 빌립보의 당국자들은 이들을 감옥에 넣음으로써 종결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옥안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기도와 찬양을 하는 장면을 보라!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나갈 기회가 있는데도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은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런 대접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막막하고 고난 받으면 내 인생에서 몇 번 되지 않는 기회라고 생각하여 영광과 특권으로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찬양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은 영광인 것입니다.


    바울과 신라는 죽도록 매를 맞고 사경 직전에 옥에 갇혔는데 이런 억울하고 기가 막힌 고난 속에서도 상황을 비관하거나 자기를 쳐서 감옥에 가둔 자들을 저주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악조건 가운데서도 심령의 안정을 찾았고 하늘의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 입에서 찬양이 흘러 나왔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걸어가노라면 본문에서처럼 캄캄한 밤중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사방이 어둡고 몰려오는 고독과 불안과 공포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치는 나날들이야 말로 인생에게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만 할 힘겨운 도전인 것입니다. 구약의 인물가운데 요셉은 그 일생이 시련과 극복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생애와 그의 믿음을 보고 많은 용기와 위로를 받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 형들의 시기 때문에 멀고 긴 애굽 땅으로 팔려 갔을 때의 일과, 바로의 궁중신하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깊은 감옥에 갇혔을 때를 생각하면 희망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의지하고 그 시기를 넘기게 됩니다. 그는 자기를 시기하고 모함한 자들을 저주하고 복수의 칼을 갈지 않았으며 미움과 좌절의 늪에서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이렇게 낙망적인 생각만 하였더라면 그는 한평생 캄캄한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이러한 혹독한 시련을 만날 때마다 먼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호소하고 기도하며 위로를 받고 어떤 악조건 가운데서도 인생을 왜곡되게 보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갔습니다.


      찬양하는 바울과 신라의 눈앞에서 옥터가 움직이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진동으로 함께 하셔서 결국 전 유럽의 터를 흔들어놓는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앞으로의 전조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옥토가 진동하며 죄수들의 착고가 풀리며, 감옥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을 본 간수장은 이제 죽었다... 하고 칼을 빼어 자살하려고 하는데 바울과 실라는 우리가 여기 있으니 걱정마라고 해서 겨우 자살을 막았습니다. 이에 간수장은 감동을 받아 온 집안사람이 세례를 받고 복음을 받아드리죠. 이렇게 해서 빌립보의 세 번째 교인이 만들어졌다.


    자,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바울과 실라에게 감옥에 갇힌 밤은 어떤 밤입니까? 결과적으로 기도의 역사가 일어났고, 복음의 역사가 일어난 은혜스러운 밤이었습니다만.... 실상 그날 밤은, 너무나 억울한 밤이었습니다. 앞뒤가 콱 막혀 완전 난감하고 막막한 밤이었습니다. 원망과 탄식, 실망과 좌절의 신음으로 온 밤을 하얗게 새울 수밖에 없는 그런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억울해 하는 대신 기도했습니다. 막막해 하는 대신 찬송했습니다. 탄식하다 절망하는 대신 주의 이름을 찬미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옥 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며, 손과 발에 채워놓았던 쇠고랑이 다 벗겨지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로 옥문을 열었습니다. 기도로 수갑을 풀었습니다. 그 날 밤, 바울과 실라는, 기도의 응답 속에 주님 주시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던 겁니다. 그랬습니다. 그 날 밤은 기도에 응답을 받은 밤이었습니다. 바울 생애 최고의 은혜를 체험한 밤이었습니다. 낮에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 밤으로 바울은 주님의 은혜를 체험했던 거지요. 그 날 밤은 은혜 받은 밤이었습니다.


    혹시 고난과 고통 속에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십니까? 혹시 너무 간절한 기도 제목으로 인해 온 밤을 하얗게 새우며 지내십니까? 그 때 기도하고 찬미하며, 그 상황에서 만나게 해 주시는 분에게 주의 복음을 증거 하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증거 하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역사를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16장을 통해서 보게 될 때 최초의 교회의 멤버는 누구입니까? 자주장사와 그 집안사람들, 간수와 그 집안사람들 그리고 고침 받은 여종.... 이 사람과 이것으로 인해서 전 유럽이 복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유럽이 복음화 되는 첫 스타트가 되었죠. 이 멤버들이 누구입니까? 통치자와 학자들이나 문벌 좋은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들과 악한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을 확장시킵니다. 이들로 세워진 교회가 유럽의 첫 열매이고 지금의 유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놀랍죠. 귀신들린 여종, 간수, 여자를 통해서 시작하셨는데 유럽이 전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유럽을 영적으로 부흥케 하는 첫 시작이 되었는데 인간적으론 보잘 것 없었습니다. 우리 항도교회 보다도 훨씬 못한 가운데서 출발한 것이죠. 힘을 냅시다. 복음을 전합시다. 비록 매 맞고, 거절당하고, 놀림 당한다고 해도 복음을 전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귀신이 쫓겨가고요, 지옥문이 열리고요, 발마다 채워진 착고들이 풀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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