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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도행전 08:01-08/ 예루살렘 교회에 일어난 핍박 [행]
  • 조회 수: 172, 2014.10.14 11:18:53
  • 오늘은 예루살렘 교회가 스데반의 죽음을 기점으로 집중적으로 핍박을 받아 견디지 못하여 사방으로 흩어지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악은 원래 가속도가 붙어서 한 번 불이 붙으면 온 집을 붙애울 듯 엄습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그랬어요. 그동안 사도들이 잘 견뎠는데 스데반이 순교함으로 피맛을 본 무리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폭력은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폭력을 피해야 합니다. 19세기 프랑스 혁명 때에 폭력이 일어났습니다. 왕을 죽이고, 귀족들을 죽이고.... 이런 분위기였는데 이 때는 모두가 잔인해졌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닭 한 마리 잡지 못하여 놀림을 받던 푸줏간 아들이 이 혁명 때에는 푸줏간의 칼로 무려 20여명의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지금 8장에 나타나는 분위기는 바로 폭력의 분위기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견뎌낼 수가 있습니까? 다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지요. 이제 우리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타난 몇 가지 특징을 통해 믿음의 삶을 배우고자 합니다.  


    1사울의 등장입니다.


    시울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예수 믿는 그 신앙이 얼마나 미웁기에 이렇게 스테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도 자신의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는 생각보다는 죽임을 마땅히 여기더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귀하면 남의 생명도 귀한 것으로 알아야 하는데 외 이렇게 마음이 이렇게 악할까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신앙이 잘못되면 이렇게 잔인해 질 수 있다. 사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통 유대주의에 바리세인으로서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최선을 다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드린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충성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그는 로마서 10장에서 잘못된 열심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의 핍박을 통하여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안주하여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더 이상 세계를 복음화시키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예수 믿지 않고 살수 없다는 사람들을 세계로 흩으신 것입니다. 사울의 악심을 사용하시어 더 큰 하나님의 나라확장을 위하여 사용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보는 것같이 우리 성도가 어려움이 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환난이 있다고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어려움이나 환난 고통을 통하여 더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사울의 교회 잔멸의 계획은 더 많은 교회를 세우게 되고 복음이 세계를 향하여 전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시작이 된 것입니다. 한 곤충학자가 번데기에서 나방으로 변하여 알을 까고 나오는 과정을 자세히 살피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고 합니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어 고치 알을 뚫고 나오는데 나오는 구멍은 너무 작고 나비는 퍼덕이면서 그 구멍에서 나오는데 가만히 놔두면 날개가 다 찢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나비가 알을 다 찢고 나오는데 도움이 되도록 그 알을 조금 찢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비가 쉽게 나오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나비가 알을 빠져 나왔기는 했으나 그 신천지를 향해 날개를 활짝 펴고 날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합니다. 스스로가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알의 구멍을 뚫고 나와야 비로소 신천지를 날 수 있다는 이 생명의 신비를 이 곤충학자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냥 불쌍해서 도와준다고 하는 것이 그만 생명을 죽게 한 것이라는 자책감만 느끼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2.흩어진 성도들


    유대교의 전면적인 핍박이 가해지자 그들은 견딜 수 없고 설령 숨어서 신앙을 지킨다고 해도 언제 잡힐지 모르는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어서 기독교인 전체가 쫓기는 몸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를 믿다가 이제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각자 가지고 있는 신앙과 예수를 믿는 믿음 그 하나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들이 소문으로 듣던 곳이든지 아니면 연고를 따르든지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그들의 신앙을 지키며 자신들이 가진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가는 곳곳에 회당을 세우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초대교회의 이방 전도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산헤드린 공회에서 그들을 인정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남아서 그대로 복음을 전하며 예수살렘교회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에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여기서 경건한 사람은 학자들의 해석은 복음에 호의적인 유대인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특이한 것은 형벌로 죽은 자를 위하여 우는 것을 금하는 산헤드린 공회의 판결을 무시하거나 불복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사실은 스테반의 죽음 앞에 또 다른 복음의 씨앗이 싹트고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신앙이 내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어 자녀 손이 예수 믿고 믿음의 가정되도록 열심을 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한쪽에서는 또 다른 복음의 씨앗이 싹트고 있는데 사울의 행동은 점점 더 강퍅해 갑니다.


    3. 신앙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


    핍박을 하면 배교하면 되는데 예수를 믿는 믿음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정든 고향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 만 마음대로 믿는 다면 어떤 어려움이라고 감수하겠다는 각오로 떠나는 것입니다. 과거에 믿음의 선배들은 핍박받아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피하지, 배교 따위는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그랬죠? 이런 사람들의 후손들 다 보세요. 얼마나 잘 되었습니까? 우리가 지금 잘 사는 것은 50년대부터 80년대 신앙의 선배들이 열심히 하나님 찾으며 산 결과가 우리에게 온 줄로 알아야 합니다. 그분들은 못 먹고, 못 입고, 못 누리고 살아도 그렇게 기도하고 하나님 구하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복을 우리가 누리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때요? 후손들 손가락이나 빨게 할거예요? 설마 그럴리가..... 이러죠? 그러나 물질세계.... 금방 지나갑니다. 필리핀, 아르헨티나..... 이 나라들은 불과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선진국이었다 하데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어려워요. 이렇게 신세가 금방 바뀔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앞날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선배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복 주기 위해 하나님 구하며 살았는데 우리는 그것들 누린다고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타락 방종하며..... 이렇게 하다가는 후세대가 어떻게 되겠어요.


    오늘날 교인들이 단계적으로 주님을 떠나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첫째는 모이기를 등한히 합니다. 옛날에는 주일 낮 예배, 밤 예배, 수요예배, 구역 예배... 다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주일 낮 예배, 오후예배.... 이거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입니다. 그러다가 뭐 특별한 일이 있으면 주일예배도 빠지지요. 이게 서서히 우리가 주님에게서 멀어져 가는 단계입니다. 뭐 그리 바쁜지..... 사실 조건으로만 따진다면 예수 믿기는 옛날이 더 힘들지 않았습니까? 차도 없고, 기관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또 얼마나 덮고, 추웠습니까? 교회에 장작 난로, 석탄 난로, 석유 곤로..... 이게 부실하고, 여름 되면 덥기는 얼마나 더운지..... 창문 열어 놔도 더웠어요. 그러고 창문 제다 열어 놓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그러면 옆 집에서 난리가 납니다. 시끄럽다고..... 나방도 불 따라 날라다니고....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은혜를 받았지요. 또 재미도 있었어요. 


    여러분.... 초대 예루살렘 교인들은 핍박을 받을 때 배교하며 터 잡은 자리에서 안락한 삶을 살기보다는 신앙을 찾아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던 복음을 세계화시키게 된 시발점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치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쓰십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고난을 이용하여 그들을 더 나은 신앙의 세계로 도약시킨 것처럼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면 번데기 고치 속에서 퍼덕이는 날개짓을 통해 더 강한 나비로 만들 듯 우리를 믿음의 신천지로 우리를 인도하실 줄로 믿습니다.


    제가 오전에 큰 아들 이야기를 했는데 이 추운 겨울에 군에서 일주일 동안 혹한기 훈련을 통해 저는 우리 아들이 얼마나 더 강하고 성숙해서 이번에 휴가를 나올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집에 오면 그거 자랑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의 고난은 장차 우리가 받은 축복의 간증이 되어 아름다운 노래로 들려질 줄 믿습니다.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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