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페이지
  • 구약 창세기 12:01-05/ 바라보라 [수요]
  • 조회 수: 354, 2018.06.05 17:49:44
  •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통해 보기를 원하십니다. 어느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너의 아비, 친척, 본토를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끝내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인본주의적으로 살아왔던 불신앙의 삶을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 바탕에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쌓을 수는 없습니다. 떠나야 합니다. 끝내야 합니다. 적당하게 과거의 불신앙의 삶에다 신앙의 삶을 뒤섞어서 혼합주의적으로 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됩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여주실 땅으로 출발했습니다. 보여준 땅도 아니고 보여주실 땅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오늘날 물건을 사는데 보지 않고 물건을 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신문에 광고가 났는데 강원도 어디에 전원주택지 5백평을 평당 7만원에 분양합니다 라는 광고가 났다고 합시다. 무슨 고속도로에서 5분 거리, 또 몇 차선 도로가 집 앞을 지나가고, 몇 분 거리에 골프장이 있고, 몇 분 거리에 대형마트가 3개나 있고.... 이렇게 광고를 한다고 해서 거길 가 보지도 않고 덜컥 샀다가는 사기당하는 겁니다. 어떻게 안 보고 살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보지도 않고, 보여주실 땅으로 옮기기 위해 짐을 싸고 그동안 정든 아비집, 형제, 친척들이 사는 정든 고향땅을 떠납니다. 아이고.... 이건 믿어도 너무 믿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러한 아브라함을 보시고 저를 의롭다고 칭하셨습니다. 이렇게 나를 신뢰하는구나.... 보지도 않고 믿는구나....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실 땅은 어디입니까? 바로 갈보리 십자가를 통한 하늘라라입니다. 이 십자가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죄악된 삶에서 떠나야 합니다.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아갈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책임지신 것처럼 우리도 다 책임져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아갈 때 모든 원수된 것이 끊어지고, 용서와 치료, 건강과 회복, 부활과 새로운 소망.... 영원한 천국의 복락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한계를 뛰어넘어 보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사람 아닙니까? 이런 복의 사람과 함께 있으니 그의 조카 롯도 엄청난 복을 받습니다. 복을 받으면 복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그런데 롯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 복을 잘 관리하고 다스리지 못해 결국은 잘못 되었습니다. 복이 차고 넘쳐 주체를 하지 못하니까 위, 아래도 모르고 그냥 큰 아버지네와 다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아직까지는 주인끼리 싸우지는 않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머슴 싸움이 결국 주인 싸움으로 바뀌게 될 게 뻔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 선택권을 줄테니 이제 집을 나누자.... 이렇게 제안합니다. 그러니 롯이 넙죽 그걸 받아서 그냥 소알평지에 펼쳐진 소돔땅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좋은 땅도 잃고, 아들 같은 조카도 잃고.... 그 조카는 무자식인 아브라함에겐 아들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 롯이 지 재산 챙겨서 떠나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섭섭고, 허전합니다. 이대로 가면 아브라함의 재산이 다 자기 것이 될텐데 그 마음을 모르고 자기 것 챙겨서 내 뺀 것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아브라함의 마음이 좋지 못합니다. 이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위로해주십니다. 밖으로 나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보는 모든 땅을 다 아브라함에게 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 땅을 향해 종으로, 횡으로 걸어라.... 네가 밟는 모든 땅을 다 너에게 줄 것이다.... 이건 무슨 말이냐.... 눈에 보이는 좋은 땅 잃어버렸다고 너무 섭섭해하지 말라.... 내가 너에게 줄 땅은 무한하다.... 이런 뜻입니다. 사람이 눈에 보이는 이익에 급급하여 미래를 망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걸 뛰어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눈에 갇혀서 지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습니다. 학력에 갇혀서 지내기도 합니다. 연약한 육체, 자기 능력의 한계에 갇혀서 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런 한계를 뛰어넘어야 우리가 믿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도 큰 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는 우리가 그들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롬 4:17절에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큰 꿈을 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 넘어 큰 목표를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세계를 통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85세가 되도록 자식이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넘쳐흐르는데 이것을 받을 후사가 없으니 하나님이 아무리 복을 주셔도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푸념합니다. ‘자식은 무슨 자식요.... 내 충직한 종 엘리에셀이나 제 후사가 되겠지요...’ 이렇게 하나님 앞에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합니다. ‘그렇지 않다. 네게서 나오는 아들이 후사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아브라함을 깜깜한 밖으로 이끌어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하늘에 별을 보느냐? 네 후사가 앞으로 저렇게 많을 것이다. 나의 약속을 믿으라.’ 그래서 그 후부터 15년 동안 아브라함은 밤 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하나님이 그에게 하신 약속을 떠올렸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홍수 위에 좌정하십니다. 하나님은 큰 물 위에 좌정하십니다. 대 자연을 보면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어떻에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어진 피조세계를 바라보면서 우연을 생각하십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피조세계를 바라보며 이를 다스리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에서 주저앉아서는 안될 줄 믿습니다. 피조세계를 바라보면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누리고, 다스리라고 주셨는데 이런 것들에 메이고, 갇히고, 질질 끌려다녀서야 하나님의 나녀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그동안 아무 의미 없이 바라보던 자연들.... 이제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하는 기회로 삼고 그동안의 실망, 절망, 낙담이 희망, 소망으로 바뀌고 의심이 확신으로, 포기가 다시 일어섬으로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번호  분류  제목  조회
notice 공지사항 94665
1293 새벽 430
1292 새벽 1
1291 주일낮 554
수요 354
1289 주일낮 151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