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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가복음 01:16-28/ 제자들을 부르심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494, 2013.02.06 10:57:14
  • 예수님이 공생애를 보내시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신 일은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3년 동안 훈련 양육하신 일입니다. 3년 동안의 공생애에서 가장 주력하신 일이 바로 제자를 부르시고 훈련하신 일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공생애가 끝난 후에도 남은 것은 이 몇 사람의 제자들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제자운동이 예수님의 선교 원리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는 태어나는 것이지만, 제자는 훈련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선택하셔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우리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예수님과 함께 두고두고 생각하고, 알아야 할 인물들입니다. 우리는 사도들,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사도들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교회의 터를 닦아주신 분들입니다. 우리는 사도들이 전해주신 말씀, 교리, 제도를 가지고 교회를 세웠고, 우리의 신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의 갈릴리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유대나라에는 남쪽에 유대, 중앙부에 사마리아, 북쪽에 갈릴리로 되어 있습니다. 중앙부의 사마리아는 혼혈로 인하여 이방인으로 간주되어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북쪽 갈릴리는 어떠하였습니까? 법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차별 받을 하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쪽 유대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갈릴리는 힘없는 서민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하였고, 억압과 수탈을 당하였고, 정치적으로도 소외당하였고, 문화의 혜택도 덜 받는 곳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수도권에서 최고로 멀리 떨어진 경상도 어느 시골 마을 정도가 되는 셈입니다. 이렇다 한 인물도 나지 않은 곳이어서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하는 아주 무시하는 말이 생겼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나시기만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지, 자라나고 활동하신 곳은 갈릴리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11명이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4장 15-16절에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었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었지만, 우리 주님이 오시므로 저들에게 큰 빛을 보였고, 그 빛이 비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갈릴리로 몰려와서 예수님이 다니셨던 그 길을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소외당하고, 멸시와 천대를 받는다고 하여도 우리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영광스럽습니다. 우리 항도교회가 위치한 지역은 옛날에는 좋은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구도시의 주변지역으로 전락했습니다. 지금은 신도시들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항도교회 주변이 갈릴리와 같은 지역이 아닐런지요. 이렇게 묵상해나가다 보니 갈릴리 출신 어부들이 주님의 제자가 되어 그들로 말미암아 세계가 바뀌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대단한 격려가 될 수 있습니다.   

     

    왜 우리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고를 때 랍비의 문하생이나, 공부 잘한 사람 중에서 고르지 않고 갈릴리 어부 중에서 선택하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운동에는 공부 잘하고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머리에 든 것이 많은 사람들은 생각이 복잡해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하여 일을 잘 추진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오히려 우리 주님은 생활의 현장에서 자기의 직업에 혼을 불어놓고 있던 어부들을 찾아내었습니다. 어부들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자연에 충실하고,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면 자기의 능력이나 지식을 가지고는 꼼짝도 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부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잘 믿으며 인내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때로 고기를 잡느라고 온 밤을 새우는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거칠기는 하지만 그 안에 믿음이 들어가면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오게 됩니다. 베드로 같은 사람이지요. 비록 초기에는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옴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였지만 결국은 초대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이들의 특징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이 그들을 불렀고, 그들은 그 순간에 배와 그물을 던져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직업, 가족... 이런 것 생각하지 않고 주님의 뒤를 따라 나셨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실 때 생각해 보겠다, 못 하겠다 그렇게 거절한 사람이 없었고 부르시기가 무섭게 "예"하고 순종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즉시로 "예", "아멘"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생각하는 형이 아니었고, 행동형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주님을 따라 나선 처음 이 네 제자들처럼 우리도 우리의 남은 생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헌신하여야겠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던 베드로나, X형 십자가에 달려 죽은 안드레, 헤롯왕에게 목 베임을 받아서 제자로서는 가장 먼저 순교하신 야고보, 마지막 천수를 누리면서 순교적인 신앙을 견지하였던 사도 요한... 이들은 초기에 평범한 갈릴리 촌부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만 하더라도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훈련이 점차로 그들을 변화시켰고, 후에 성령충만을 받자 스스로 감당하기 불가능한 위대한 사도의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하여 그 영광스러운 이름을 초대교회 역사에 새겨놓았습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그 첫째는 사도라고 했습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교회와 더불어 영광스러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주님에게 부름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영광스럽게, 감격스럽게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이들은 박사도 아니요, 천재도 아닙니다. 이들은 부자도 아니요, 별스러운 특징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주님의 제자훈련에 참가하여 이렇게 변했습니다. 뭐든지 한꺼번에 변화되는 법은 없습니다. 제자훈련을 받고, 거기에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도 이들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줄 믿습니다. 이 새벽에 우리가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말씀을 통하여 그들이 어떻게 주님의 제자들이 되었는지를 보았으니 사도들의 좋은 면모를 우리의 것으로 받아 훌륭한 제자의 도를 이어받고 간직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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