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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가복음 04:35-41/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주님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506, 2013.02.15 20:41:45
  • 오늘 본문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들어 있어서 다 다룰 수는 없고 풍랑을 잠잠케 하신 사건만 집어내어 간단하게 묵상하고자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여정에 풍랑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는 불신자나 차이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36~37절 말씀을 보면 그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분명한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운행하고 있었는데 광풍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는 언제나 광풍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풍랑을 만났고, 사도행전 27장에서는 선장이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면서 항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식의 반란을 통한 풍랑을 만나기도 했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믿음을 지키다가 칠 배나 더 뜨겁게 한 풀무에 들어가야 하는 환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날 때에는 영적인 119를 불러야 합니다. 일상생활의 위기를 만날 때 요즈음은 남녀노소 무론 하고 119에 전화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위기에서는 어디에 긴급전화를 하는 것입니까? 즉 영적 119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의 상황처럼 개인과 교회에 불어닥친 광풍의 재난 시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영적으로 재난을 당할 때 긴급하게 호출해야 할 영적 119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5: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시편 50:15절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편 18:2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59:16절입니다.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그렇습니다. 환난 날에는 주님을 불러야 살아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38절입니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다시 말씀드리면 환난을 당할 때 주님을 깨우는 것이 살 길임을 나타낸 생명의 메시지입니다. 주님을 깨울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39절입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주 잔잔하여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제 풍랑이 있었느냐는 듯 완전한 평화의 상태가 이루어짐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다양한 풍랑이 일어날 때 바로 이 말씀을 깊이 깨달아 주님이 평안케 하는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각양각색 자기주장을 내세우면서 마치 자기가 환난을 평안케 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된 듯 말이 많고 주장이 강하면 반드시 더욱 환난의 물결이 높아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오직 주님만이 모든 것을 평화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고 주님을 깨우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평안은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아주 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는 이와 같은 말씀에서 분명하게 정리할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의 살고 죽는 문제, 나아가 삶의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마음의 평안에서 시작되며 그 마음의 평안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곧 주님을 믿는 믿음의 마음에서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40절에서 믿음에 관한 권고를 하셨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즉 믿음이 있으면 두려움도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어떤 환난도 풍랑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의 깊게 새겨 볼 말씀은 “어찌 믿음이 없느냐”인데 마가복음의 여러 사본 가운데 권위 있는 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등에는 ‘아직까지’(οὔπω, 우포)가 첨가해 있는데 공동번역에서는 이에 대하여 ‘아직도’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용어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그렇게 입었으면서도, 모태신앙이라 하면서, 귀한 직분을 맡은 지도자로서 ‘아직도’ 믿음 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풍랑을 만납니다. 그리할 때 누구나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도움을 받아 평안하게 되기도 하고 잘못되어 파선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이 풍랑을 만날 때 우리가 도움을 구할 영적 119는 주님이십니다. 곧 주님을 깨우는 믿음 있는 삶의 태도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환난 날에 주님을 부르면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주님이 우리의 삶을 평안케 하십니다. 이 은혜가 성도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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