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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가복음 09:30-37/ 주님의 수난예고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425, 2013.03.05 14:00:54
  • 마가복음을 보면 다른 복음서에 비해 예수님의 흔적을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으나 참 논리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자라갈 즈음에 주님에 대해 은근슬쩍 자신에 대해 물어 바른 신앙 고백을 받으시고 그 후에 고난을 예고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이 고난을 예고하면 혼란을 일으키겠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비밀이 없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소돔 고모라의 멸망의 비밀을 말해 주었고, 노아에게는 세상을 멸망시킬 계획을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이 땅에 오신 그 비밀 중에 가장 지고의 비밀인 수난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오히려 영광을 취하려고 아귀다툼이나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고충을 알만합니다. 그 어느 때나 지도자의 고민은 두 갈래죠. 한편은 명예를 섭렵하려는 건달들이 혈맹도 등을 돌리고 눈이 어두어져 가는 부분이고 한편은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는 위기를 모르고 덤벙대니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들에게 십자가의 비밀을 이야기하려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제자들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제 곧 십자가를 져야 하는데 지금 제자들은 누가 크니, 작으니 하면서 헛된 영광을 구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이들을 보고 실망치 않으시고 조용히 집에 들어가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첫째가 되려는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첫째가 되려는 목표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위대한 학자가 나오고 정치가도 나오고 사상가도 나오는 법입니다. 그 어느 분야에서도 선의의 경쟁이 없으면 향상의 결실을 보지 못합니다. 누가 크냐는 문제는 모든 사람의 마음입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에서도 높고 낮음이 있습니다. 다만 그 표준이 세상의 표준과 다를 뿐이고 높아지고 첫째 되려는 과정과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세상 나라는 다른 사람을 딛고 내가 올라서는 이치인데 반해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것과 다르죠. 충성에 첫째가 되어야 하고, 봉사에 첫째가 되어야 하고, 헌신에 첫째가 되어야 하고, 희생에 첫째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의 끝이 되어야 첫째가 됩니다. 끝의 자리는 역사의 자리입니다. 첫째 될 수 있는 사람이 끝을 잡으니 겸손이며, 상석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 말석을 차지하니 위대한 평등이며, 승리한 사람이 패배자의 자리로 내려가니 크나 큰 동일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회는 이러한 양식이 아쉽습니다.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올라가기만을 꿈을 꾸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지체가 높을수록 걸침이 남루하면 더욱 높아 보이고, 직위가 높을수록 소박하면 머리가 숙여지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날카로워 휘어지는 나무 끝까지 오르기를 경주하니 떨어지지 않을리가 있겠습니까? 사자는 새끼 적에도 사자이지 고양이가 아닙니다. 첫째는 첫째인척 하지 않아도 첫째요, 높은 자는 낮아져 있어도 높은 자입니다. 지금보다 더 높아 보이는 길은 낮은 데로 내려감이요, 더 앞서고 싶으면 끝으로 가는 것이 도리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사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였습니다. 십자가는 주님의 낮아지심의 표본이며 자신을 죽이면서도 내려가심의 상징입니다. 오늘날도 올라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바로 부활승리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인 것입니다.

     서로 높아지려고 아귀다툼하는 세상, 가장 높은 자리가 가장 위험한 자리인데, 거기서 떨어지면 치명적인데, 정말로 높아지는 길을 알지 못하니 주여, 주님을 바라보고 배워 깨닫게 하소서. 주님의 고난을 생각합시다. 깊이 새깁시다.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사 친히 자신을 주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본을 보여 주신 그 큰 사랑을 희생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따라 삽시다. 그러면 주님의 나라는 점차 넓어져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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