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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가복음 10:17-34/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신앙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945, 2013.03.08 22:11:06
  • 오늘 청년이 주님께 던진 질문 그 자체는 영생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안으로 들여다보면 이 질문은 매우 그릇된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전제를 갖고 있습니다. 17절을 다시 보면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질문에서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한다' 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행해야만, 굉장히 커다란 업적을 세워야만 하나님이 아마도 나에게 영생을 주실 것이다. 그렇게 영생을 얻는 방법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생 즉 구원 얻는 길에 있어서 가지고 있는 매우 보편적이고 잘못된 오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청년과의 지속적인 대화 가운데서 구원의 근거로써 행함을 가정하고 있는 그 청년의 잘못된 가정이나 근거를 파괴시키기 위한 질문을 계속 하십니다. 18절에서는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 선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너가 아무리 선하다 해도 너의 선을 들고 하나님 앞에 설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 정도로 네가 선하다고 생각하느냐?' 라고 심령을 찌르는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얘기... 19절에서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이대로 하고 있느냐?" 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20절에 보시면 이 청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저는 이 청년이 도덕적으로 상당히 자신이 있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도덕적인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던, 꽤 괜찮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 아니면 이 정도의 대답이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 청년의 이런 대답의 밑바탕에 아직도 그가 자신의 정체와 자기의 진실한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을 안타까와하시며 그 다음 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즉 불쌍히 여기사 이렇게 묻습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청년은 자신은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흠이 없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대해 예수님은 그의 마음 아픈 곳을 찔렀습니다. 이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도덕적 프라이드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숨기고 있었던 자기 내면의 갈등, 즉 그를 지배하고 있었던 가장 강력한 삶의 동기중의 하나는 재물에 대한 탐심이었습니다. 이 한 가지의 죄를 통해서 그가 스스로 죄인 됨을 예수님은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기 위해서는 많은 계명을 파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야고보서 2장 10절에서 이런 말씀을 보신 일이 있습니까?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단 하나의 계명의 파기, 단 하나의 거짓말로도 충분히 하나님 앞에 우리는 죄인이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청년이 이 사실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선하게 살아 왔지만 내속에 탐심이라는 죄가 있었구나! 그러므로 내가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지켜 왔다 할지라도 나는 결국 율법을 범한 자요 나의 의로운 행위로는 영생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구나! 이것을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습니까? 영생이나 구원은 인간의 행함의 성취를 통해서 결과적으로 얻는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이 조건 없고 자격 없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아 마땅한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구원의 도인 것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원 즉 영생은 우리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예수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청년이 예수님을 등지고 떠나간 또 하나의 진짜 이유는 바로 인생의 우선순위를 오해한 것입니다.  우선순위란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좀 더 중요한가 하는 순서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우선순위를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불행이란 무엇일까요? 우선순위의 혼란에서부터 인생의 불행이 생긴다고 저는 믿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이 청년은 우선순위를 혼돈했습니다. 이 사람은 영생을 얻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 관심보다도 이 청년을 지배하고 있었던 더 중요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재물에 대한 탐심이었습니다. 예수가 안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생 얻는 것이 안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을 지배하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관심은 재물에 대한 탐심이었습니다. 자기 재산을 늘리고 재물을 축적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 넘버원이었습니다. 결국 우선순위에서 예수는 밀려났고, 우선순위에 있어서 영생의 문제는 밀려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예수님을 등지고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슬픈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 신앙생활하고 교회에 출입하면서도 교회를 다녀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선 순위의 혼란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청년이 예수도, 영생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재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예수를 택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재물을 택했습니다. 그러니 결국은 예수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실을 성도들이 알아야 합니다. 신앙이 중요하지만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을 돈, 출세, 성공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신앙에서 실패하고 예수님을 떠나게 됩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천국, 구원.... 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대학 들어가는 것이고, 취직시험에 합격하는 것이고.... 그러니 이런 것을 다 이룬 후에 신앙도 열심히 해야 한다.... 이럽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을 하나님이 복 주시겠습니까? 그럭저럭 먹고는 살겠지만 70이 넘으면 슬슬 후회하고, 죽어서 주님 앞에 서면 땅을 치고 후회합니다. 이 청년처럼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이 있는 척 하면서 고상한 질문이나 던지지 말고, 실제로 주님을 내 인생에 1등으로 세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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