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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가복음 11:12-22/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842, 2013.03.12 16:52:14
  • 주님께서 아침 일찍이 베다니에서 나오셔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던 중 무화과나무를 찾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시장하셨기 때문입니다. 시장기를 무화과 열매로 해소하시려고 가까이 가셔서 무화과 잎사귀를 헤쳐 보셨지만 열매가 보이지 않자 , 주님께서는 아주 이례적으로 그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단 한번 찾아 볼 수 있는 이 파괴적인 기적 사건을 통하여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소중한 메세지를 바로 찾아 은혜의 기회로 삼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본문 13절에서 무화과의 열매를 찾지 못한 주님은 14절에서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셨고, 무심코 듣고 지나쳤던 제자들이 성에서 나오다가 뿌리째 말라버린 그 무화과 나무를 보고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자처하던 철학자 '버틀란트 러셀' 조차 "어떻게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주님께서 이렇게 하실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정도였습니다. 


    왜 이토록 주님께서 마음이 상하셨을까? 13절의 "지금은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는 말씀을 생각하면 더욱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주님이 실수하셨나? 지금은 때도 아닌데 열매를 찾으시다니.......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감람산과 그 주변의 환경적, 지리적 여건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곳은 언제나 무성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이스라엘에서 몇 안되는 축복받은 장소였습니다. 따뜻한 기후와 감람산 계곡의 기혼샘에서 흐르는 풍부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곳은 다른 곳보다 적어도 한달 이상은 무화과 열매가 일찍 맺혀지는 곳이어서, 일반적으로는 무화과 열매를 얻기에 이른 때였지만 주님이 지금 찾고 계신 그 나무에서는 충분히 열매를 낼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환경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지금 이곳은 어느 곳보다도 열매를 맺기에 좋은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대하신 열매는 보이지 않고 잎만 무성한것이 문제였습니다. 무화과나무란 이름 그대로 꽃이 피지 않고 열매부터 맺는 나무이고, 더구나 잎보다 열매가 먼저 맺는 것이 상식인거으로 보면, 주님의 기대는 무리한 것이 아니었음을 잘알 수 있습니다. 축복된 환경과 조건들을 가지고 열매를 맺는 일에 전념했어야 했는데 , 오히려 무성한 잎사귀를 만드는데만 써버렸다는 얘기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이 주는 말씀 가운데 큰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지역의 나무들보다 더 좋은 환경과, 더 좋은 기후, 더 풍부한 수분을 공급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화과나무"는 열매보다 잎사귀를 내는 데에만 열심이었고, 결국 주님은 "그 무화과 나무"를 책망하셨습니다. 


    사사기 9장에 보면,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자기 형제 70인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을 때에 겨우 목숨을 건진 말째 아들 요담이 세겜 사람들을 향하여 한 비유를 이야기 합니다. 나무들이 모여 왕을 뽑는 일을 의논하던 중, 감람나무에게 네가 왕이 되라고 하자 감람나무가 말하기를 "나의 기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 이를 두고 어찌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면서 사양하였고, 무화과 나무에게 네가 왕이 되라고 하자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버리고 어찌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며 거절하였고, 포도나무에게 찾아가 네가 왕이 되라고 하자 "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술을 버리고 어찌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며 사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이 세 종류의 나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 곧 열매를 맺는 일에 충실했다는 것이데, 오늘 이 무화과 나무는 그 부분에서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 책망을 들은 이 무화과 나무는 좋은 조건과 유리한 환경들을 가지고 잎사귀를 윤기나게 만들고, 멋있게 가지를 뽐내는 일에만 다 써버렸어요. 하지만 정작 주님께서 기대하신 열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라고 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들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였습니다. 화려한 경력과 모습속에 정작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있는 삶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잎만 무성한 무화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 예배도 있고, 절기마다 행사도 다양했지만 의미 없는 예배, 행함이 없는 생활, 실천되지 않는 언어들만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찾으시는 나무는 수많은 나무들 중에 나무, 곧 선택받은 나무였습니다. 주님이 직접 찾아 가셔서 만져보시고 헤쳐보셨던 그 무화과나무는 바로 오늘 우리 자신인 줄로 믿습니다. 


    현대 크리스챤에게 3 F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사실입니다.(Facts) 예수를 믿겠다고 한다면 첫 번째 인정해야 할 사실은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믿음입니다. (Faith) 진정한 크리스챤이 되려면 이제 그 사실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믿어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지식인들은 성경을 기본적으로 공부합니다. 영원한 베스트셀러예요. 보통 10만부 정도 팔렸다 하면 베스트셀러라고 유명해지지만 성경은 언제나 제외해 놓고나서의 기록일 뿐입니다. 주님께 분명한 신앙고백적 선언이 있어야 합니다. " 네가 믿느냐?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 번째는 감정 입니다.(Feeling) "주님 만이 나를 구원하실 구세주이십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우리 안에 놀라운 기쁨과 평안이 생깁니다. 이 감정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며 세상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요한 14장 27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두려워 말고 근심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도의 이러한 감정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눈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얼굴만 보아도 근심과 걱정이 지배하는 삶과 기쁨과 평안이 지배하는 삶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고자 하면 'F'를 하나 더 추가해야 합니다. 4 F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F는 열매입니다. (Fruits)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느니라"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세례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세례를 주옵소서" 하지만 세례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나온 무리에게 이것을 먼저 요구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눅 3장 8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남다른 은혜와 조건들을 넉넉히 주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곧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받은 바 은혜들을 주님 기뻐하시는 열매들을 맺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남다른 축복의 삶들을 살아가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했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으며 옳바른 성도의 삶을 살기를 권면했던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열매맺는 성도로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막 11:12-22/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주님께서 아침 일찍이 베다니에서 나오셔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던 중 무화과나무를 찾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시장하셨기 때문입니다. 시장기를 무화과 열매로 해소하시려고 가까이 가셔서 무화과 잎사귀를 헤쳐 보셨지만 열매가 보이지 않자, 주님께서는 아주 이례적으로 그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본문 13절에서 무화과의 열매를 찾지 못한 주님은 14절에서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토록 주님께서 마음이 상하셨을까? 13절의 "지금은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는 말씀을 생각하면 더욱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주님이 실수하셨나? 지금은 때도 아닌데 열매를 찾으시다니.......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감람산과 그 주변의 환경적, 지리적 여건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곳은 언제나 무성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이스라엘에서 몇 안되는 축복받은 장소였습니다. 따뜻한 기후와 감람산 계곡의 기혼샘에서 흐르는 풍부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곳은 다른 곳보다 적어도 한달 이상은 무화과 열매가 일찍 맺혀지는 곳이어서, 일반적으로는 무화과 열매를 얻기에 이른 때였지만 주님이 지금 찾고 계신 그 나무에서는 충분히 열매를 낼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기대하신 열매는 보이지 않고 잎만 무성한것이 문제였습니다. 무화과나무란 이름 그대로 꽃이 피지 않고 열매부터 맺는 나무이고, 더구나 잎보다 열매가 먼저 맺는 것이 상식인 것으로 보면, 주님의 기대는 무리한 것이 아니었음을 잘알 수 있습니다. 좋은 환경과 조건들을 가지고 열매를 맺는 일에 전념했어야 했는데 , 오히려 무성한 잎사귀를 만드는데만 써버렸다는 얘기입니다. 

    사사기 9장에 보면,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자기 형제 70인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을 때에 겨우 목숨을 건진 말째 아들 요담이 세겜 사람들을 향하여 한 비유를 이야기 합니다. 나무들이 모여 왕을 뽑는 일을 의논하던 중, 감람나무에게 네가 왕이 되라고 하자 감람나무가 말하기를 "나의 기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 이를 두고 어찌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면서 사양하였고, 무화과 나무에게 네가 왕이 되라고 하자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버리고 어찌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며 거절하였고, 포도나무에게 찾아가 네가 왕이 되라고 하자 "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술을 버리고 어찌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며 사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이 세 종류의 나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 곧 열매를 맺는 일에 충실했다는 것이데, 오늘 이 무화과 나무는 그 부분에서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라고 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들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였습니다. 화려한 경력과 모습 속에 정작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있는 삶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잎만 무성한 무화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 예배도 있고, 절기마다 행사도 다양했지만 의미 없는 예배, 행함이 없는 생활, 실천되지 않는 언어들만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찾으시는 나무는 수많은 나무들 중에 나무, 곧 선택받은 나무였습니다. 주님이 직접 찾아 가셔서 만져보시고 헤쳐보셨던 그 무화과나무는 바로 오늘 우리 자신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남다른 은혜와 조건들을 넉넉히 주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곧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받은 바 은혜들을 주님 기뻐하시는 열매들을 맺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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