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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가복음 11:27-33/ 누구의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가?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703, 2013.03.13 15:23:55
  •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 다니실 때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이 나아왔습니다. 이들을 한꺼번에 지칭하는 표현이 있다면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원들입니다. 이들은 주님이 자신들의 안방을 연일 휘젓고 다니고 있으니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고심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묻습니다. ‘도대체 누구의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이렇게 묻는 것은 성전청결과 가르침에 대한 자격에 관한 것입니다. 자격증도 없는 예수가 떠들고 다니는 것도 보기 싫은데 사람은 구름떼같이 모이고... 제법 예의를 갖추고 묻는 것 같지만 아주 못마땅한 느낌이 묻어나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의 대답에 대해 올무를 걸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세라는 답을 들었다고 하면 신성모독죄로 고소라도 할 참입니다.


    그런데 이를 예수님이 잘 간파하시고 그렇다면 세례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아니면 사람으로 말미암았느냐...? 라고 역질문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은 예수님 못지않게 그 시대에 영적인 영향력을 미친 분이었고, 그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했기 때문에 이를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산헤드린공회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세례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느냐.... 하고 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받을 것이요, 만약 인간이 고안해 낸 것이라... 이러면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데 그들을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모르겠다는 대답을 합니다. 


    이들이야말로 최고의 종교지도자들이 아닙니까? 이들이 지금 종교 지도자로서 잘못하고 있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런 부분들을 잘 살펴야 합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하나님 보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바른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통령과 장관이 있는데 어떤 고위 공무원이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내면서 누구의 눈치를 먼저 살펴야 합니까? 대통령의 눈치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통령 보다 장관의 눈치를 더 살피게 되면 대통령이 믿음직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니 그에게 대통령은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지금 이 최고 종교지도자라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두려워하니 어찌 그들을 종교 지도자라 할 수 있습니까?


    둘째, 종교 지도자는 옳고 그름이 분명해야 합니다. 종교지도자가 믿음의 대상이 불분명하다거나 어떤 사상에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면 이를 어떻게 종교 지도자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예와 아니요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런 사람을 어떻게 종교 지도자라고 믿고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셋째, 진리를 구하고 받아드리는 것이 종교 지도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들이 궁지에 몰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실을 애써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세례요한을 인정했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예수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을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그냥 무작정 귀를 막고, 눈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를 더욱 더 궁지로 몰아넣는 어리석은 행동이죠. 진리를 따르는 지도자들이 취해야 태도가 아닌 것입니다.


    신앙은 때로 자기를 부인하는 경지에까지 넘어서게 함으로 더 깊은 영성으로 인도합니다. 자기가 경계가 되는 것은 더 이상 신앙의 추구가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은 나를 뛰어 넘어 더 넓고, 더 깊은 경지에 나를 이끌어갑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서 신앙인 답지 못한 세 가지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사람 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이 분명해야 하고, 신념이 분명해야 합니다. 진리에 대하여 애매모호한 태도는 신앙인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리를 구하고 찾는 자들입니다. 진리를 깨닫게 될 때 적극적으로 받아드리는 수용성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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