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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가복음 05:21-24/ 달리다굼의 은총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1080, 2018.06.19 19:46:38
  • 예수님의 복음 사역이 계속 되던 어느 날 야이로라 하는 회당장의 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주위 사람들이 훤화하면서 이미 죽었는데 예수님인들 어쩌랴 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괴롭히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 죽은 딸에 대한 동정심으로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상황에서 아주 조용히 야이로에게 말씀을 건넸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고 야이로의 집으로 들어가셔서 죽은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그 순간 소녀가 일어나서 걷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달리다굼’이란 말은 당시에 팔레스틴에서 통용되던 아람어 ‘탈리다 쿰’(מוק אתילט)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탈리다’는 ‘연약한 것, 불쌍한 것, 미천한 것’을 뜻하는 단어로서 여기에서는 ‘소녀야’입니다. ‘쿰’은 ‘일어나라’는 말인데 이 말의 합성어가 ‘달리다굼’입니다. 이 ‘달리다굼’은 당시의 가정에서 일상화된 용어였습니다. 곧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린 아이들을 깨울 때 사용한 단어로서 애정이 담긴 가정의 상용어가 ‘달리다굼’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달리다굼’은 엄청난 역사를 일으키는 메시지가 있는 용어입니다. 여호수아 7:10에서는 여호수아가 아이성 공략에 실패하여 좌절감에 빠져 주저앉아 있을 때 여호와께서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60:1절에서는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고 사명을 일깨우셨습니다. 누가복음 7:14절에서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어 관에 메어 나갈 때 과부를 불쌍히 여겨 관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시기를 “청년아 일어나라”고 명령하여 죽은 청년을 살리셨습니다. 사도행전 12:7절에서는 옥중에 지쳐 쓰러져 있는 베드로에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면서 베드로는 구출되었습니다. 에베소서 5:14절에는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은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에게 이르시는 말씀이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 같이 ‘달리다굼’의 은총입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탈리다’이며 그러기에 어제나 ‘쿰’의 은총이 있는 것입니다. 이 달리다굼의 은총은 어떻게 임하는가?

     오늘 본문 21~24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가정에 큰 문제가 생겼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곧 어린 딸이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대강 읽으니 그렇지 이 상황이 우리 가정의 상황이라 생각해 보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회당장 야이로의 문제에 대처하는 자세를 주의해 보십시오. 답을 얻을 수 있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22~23절입니다.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이 말씀 안에는 복음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 발 아래 엎드렸다는 사실입니다. 발아래 엎드렸다는 말은 최대의 존경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회당장은 회당에서 가장 높은 직위의 사람으로서 집회를 인도하고 회당 건물의 유지 운용 보존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예배 질서와 신성함을 유지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으며 또한 율법의 낭독이나 설교 등을 할당해 줄 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 회당장 아래 ‘핫잔’(Hazzan)이라는 회당의 서열 2위가 있었고, 그리고 랍비들이 있어서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역이 시행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당시 사회적 종교적 신분이 높았던 사람이 틀림없는데 새로운 랍비 정도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는데 예수님 발앞에 엎드렸다는 것은 최고의 겸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문제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많이 간구하였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하나님을 향한 마음 자세라고 한다면 ‘간구’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뜻합니다. 회당장은 딸이 죽게 된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엎드려서 딸을 살려달라고 간절하게 아뢰었던 것입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의 간절함, 소경 거지 바디메오의 간절함,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절함, 문둥병자의 간절함, 삭개오의 간절함은 하나 같이 문제 앞에서 주님이 해결해 주시기를 소망하는 낮은 자리에서의 바램이었습니다. 야고보 4:2절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마태복음 7:7절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

    셋째는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구원이 어디로 오는 것인가를 회당장은 그의 고백을 통하여 확인하였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이 주님께로부터라는 확신 있는 믿음에서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꾸만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리고 엉뚱한 곳에 마음을 두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큰 문제를 만들어 가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문제 해결은 주님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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