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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가복음 06:01-06/ 믿음 없는 사람들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481, 2018.06.24 16:53:41
  • 예수님이 고향에 가셨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게 되었는데 고향 사람들은 그 지혜와 손으로 이루어지는 권능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따뜻한 마음으로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배척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믿음 없는 사람들,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 몇 가지 담겨 있습니다.

    1. 영적 무지함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영적으로 무지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하시는 권능에 나사렛 사람들은 호기심도 가졌고 놀라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상황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한계 안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사람은 자기 한계 안에 살아가지만 믿음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한계 안에 살아갑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자신이 보는 한계 안에 살아가지만 믿음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는 한계 안에 살아갑니다. 인간이 보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한계가 없습니다. 

    호세아 4:6절에서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므로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말할 것도 없이 여기의 지식이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그래서 영적 무지는 불신의 뿌리가 되며 인간을 불행하게 하고 그 삶을 황폐하게 합니다.

    2. 시기와 편견입니다. 3절입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이 말씀 안에는 아주 무서운 인간의 편견과 시기심이 담겨 있습니다.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 그리고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그것은 출신 배경의 선입관, 가족 상황의 선입관, 성장 배경의 왜곡된 선입관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불신의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가장 무섭고 불행한 것이 편견과 시기심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선입관에서 오는 무지요 수치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안다는 편견으로 믿음 없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와 같은 안다는 것 때문에 알아야 할 것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바울은 세상적으로 따를 자 없을 정도로 유식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안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안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칩니다. 고린도전서 8:2절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빌립보서 3:8절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예수를 아는 것이 최고의 지식이며 예수님에게 자신이 발견되는 것이 최고의 삶의 가치라는 바울의 고백은 진실로 바로 아는 자의 고백입니다. 막말로 무식한 사람일수록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나오는 모든 것은 믿음 없는 자의 모습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보다 못하던 사람이 잘되면 시기하고, 자기보다 못 배운 사람이 뛰어나도 시기하고, 자기보다 모든 면에 모자란 사람이 자기보다 능하면 시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서운 편견이며 믿음 없는 행위인 것입니다.

    3. 체험없는 신앙입니다. 5절입니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거기서’가 어디입니까? 편견과 시기와 선입관으로 예수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나사렛 고향입니다. 그런 환경에서는 좀처럼 믿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 있고, 믿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신앙의 근거지가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권능을 행할 수 없는 곳.... 바로 자기 공향입니다. 불신으로 가득찬 곳에는 역사가 일어나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믿음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믿음을 파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과 믿음 있는 사람의 삶의 내용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에게서는 오늘도 예수님이 아무것도 하시지 않지만 믿음 있는 백부장 같은 사람에게는 말씀 한 마디로 소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믿음이 충만한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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