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페이지
  • 신약 마가복음 09:01-08/ 변화산 사건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968, 2018.07.16 17:34:19
  • 오늘 본문은 흔히 변화산 사건이라고 불리웁니다. 이 변화산 사건을 경험한 후에 예수님의 사역의 성격을 논하라고 한다면 고난을 향한 분명한 여정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이 아주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계획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의도하시는 바를 본문에 나타난 말씀을 가지고 드러내보고자 합니다.   

    첫째, 베드로가 예수님이 변형되셔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 하시는 것을 보시고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고 감격스럽게 말합니다. 그 말 뜻은 ‘여기 이대로가 좋습니다. 이대로 오래오래 있고 싶습니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도 좋습니다...’ 하는 마음입니다. 행복의 극치란 바로 이렇게 표현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이대로가 좋다고 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행복했겠습니까? 욕망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까? 무엇을 소유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예수님의 본체를 아는 순간, 제자들은 기뻤습니다. 주님의 본체는 영화로운 몸입니다. 영화로우신 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잠시 초라한 인간으로, 초라한 몸으로 나타나신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그 변형은 변화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본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장차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가 부활한 후 영광스럽게 나타날 그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사실을 목격하는 순간 베드로는 "여기가 좋습니다" 하는 소리밖에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이렇게 짜증스럽고 문제가 많습니까?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 본체를 얼굴과 얼굴로 대하는 체험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 또한 베드로와 같은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스데반이 군중들이 던진 돌에 비찹하게 맞아 죽어가면서도 왜 그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났다고 표현했겠습니까? 그에게 나타난 예수님의 본체를 대하는 순간 모든 고통도, 창피함도, 분함도 다 사라지고 그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난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 이 순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으로 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초막을 지으려면 최소한 넷은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묵을 초막도 셈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을 위한 초막은 없습니다. 자기걱정이 없습니다. 자기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가 없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요, 엘리야는 선지자들의 대표입니다. 이 위대한 신앙의 두 인물이 예수님과 더불어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9장 31절을 보면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실 것을 의논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 변형 사건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이 영광스러운 광경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9장 1절에서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말씀하시고 엿새 후에 이 변형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변화산 사건은 잠시 동안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의미합니다. 저들에게 일시적으로나마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심으로 해서 어떠한 고통이라도, 어떠한 가시밭길이라도 인내하며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게 하시려는 주님의 의도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많은 까닭은 아직 주님을 바로 만나지 못한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광의 메시야를 앙망하며 그리스도와 내게 바른 만남의 관계가 이루어질 때, 그리고 그 영광과 그 체험으로 살아갈 때에 이 세상의 고통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날의 아침을 바라볼 때에 오늘 고통 당하는 것, 그 자체도 이미 행복의 벅찬 마음으로 이겨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마지막으로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축복과 승리의 영광이 따를 것입니다. 
번호  분류  제목  조회
notice 공지사항 94844
1838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812
1837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1045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968
1835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600
1834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997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