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을 씻겨주시는 예수님 (요13:1-11) [사순절 시리즈]
  • 2013.02.23 17:02:10
  • 우리 몸의 신체 기관 가운데 가장 대접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발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발을 홀대합니다. 가령 머리에 썼던 모자나 입을 가렸던 마스크, 손에 끼었던 장갑 같은 것은 잘 간수합니다. 잘 때 옆에 두고 잡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걷는다고 피곤한 발을 감싸 주었던 양말은 그렇게 안 합니다. 양말을 침대 곁에 두고 자는 사람 못 봤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발이 얼마나 중요한 줄 아십니까? 발은 심장과 혈관의 건강 유지에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발의 건강이 곧 심장의 건강입니다. 그래서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심장이 나쁜 사람은 잘 걸을 수가 없습니다. 잘 안 걷기 때문에 심장은 더 나빠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걸을 때 나쁜 지방질이 다 분해됩니다. 콜레스테롤을 비롯한 지방성 분들은 몸을 움직여야 없어집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체내에 축적이 되어 동맥경화와 당뇨.. 등 성인병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걷는 것 이상의 건강에 좋은 운동은 없습니다.

     

    이 운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위가 바로 발입니다. 발로 걷는 운동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걷기야 말로 최고의 전신운동이라고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많이 걸으시기 바랍니다. 발은 그 자체가 건강의 척도입니다. 발 관리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발을 잘 씻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계십니다.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유월절을 제자들과 함께 보내시고 계십니다. 여기서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행하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오늘은 사순절 두 번째 주일을 맞아 이 예수님의 발 씻기심의 의미를 알아봄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4절에 보니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라고 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시던 주님께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그리고는 5절에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대야에 물을 담아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속으로 “설마”했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발을 씻기는 일은 종들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가장 낮은 자가 하는 일이어서 제자들 중에 누구도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설마 우리의 발을 씻기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했는데 그 설마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먼지 묻은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냄새 나는 발을 차례로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유대지역은 날씨가 매우 덥고 건조하여 사막이 많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먼지가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는 제일 먼저 발을 씻습니다. 특히 다른 집에 대접을 받는 손님으로 갔을 경우엔 주인이 종으로 하여금 그 손님의 발을 씻어 주도록 하는 게 예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다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입니다. 많지 않은 숫자입니다. 그럼에도 만나기만 하면 다투었습니다. 다투는 이유가 누가 더 큰 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볼 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내가 너 보다 더 위다’ 이겁니다. 이 문제로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도 마찬가집니다. 한국교회의 분쟁이 있는 모든 교회는 바로 이 ‘누가 더 크냐’ 이 문제로 싸웁니다. 누가 더 큰가? 누가 더 힘이 있느냐?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이들의 다툼은 막 9장에서 시작합니다. 막9:34에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고 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에 길거리에서 한 바탕 싸웠습니다. 복음을 전하러 다니기도 바쁜데 싸움질이니 주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제자들 싸움까지 말려야 했습니다. 먼저 그들이 잘 알아듣도록 말씀해 주셨습니다. 막9:35에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너희들 중에서 첫째가 되려는 자는 꼴찌가 되어야 한다. 알겠느냐?’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알아들었을까요? 아닙니다. 10장에 가면 좀 더 구체적으로 으뜸 경쟁이 벌어집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조용히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주님의 나라가 임하면 우리 둘을 제일로 높은 자리에 올려 주십시오.’ 하고 간곡하게 청탁까지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다른 제자들이 알았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41절에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했습니다. 아마 베드로가 가장 화를 많이 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모처럼 의기가 투합했습니다. 두 명만 빼고 나머지 열 명의 제자들이 모두 분노했습니다. 분위기가 험악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막10:43절로 45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제자들의 다툼을 통해 주님은 진리의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때에도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가장 극단적인 본을 보이셨습니다. 시간이 없으셨습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합니다. 그때까지 자리싸움이나 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옷을 벗으시고 허리에 수건을 차시고 실제로 섬기는 종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하리라”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씻어 가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참으로 당황스러운 모습입니다. 자기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발을 씻기시니 그동안 누가 크니, 작으니 하면서 도토리 키 재기 식의 다툼을 하였던 것이 참으로 무안스럽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주님에게는 누가 크냐, 작으냐... 이건 아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가지고 다투는 제자들을 보며 예수님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제자들은 너무나도 하찮은 것을 중요한 것으로 여겨 시기와 다툼과 분쟁을 일으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까...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절말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데 제자들은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 지뿔 같은 허영심 때문에 니가 높으니, 내가 높으니... 하면서 다투고 있단 말입니다. 이들을 보시는 주님의 심정이 어떠한지 우리는 스스로를 헤아려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스스로에 대해서 가장 자신 있는 사람만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스스로가 낮고 천하다고 생각할수록 높아지기를 다투는 법입니다. 우리 주님 같은 분이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길 때 제자들 중 그 누가 예수님을 비천하다 손가락질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스스로가 잘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스스로가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낮아지십시오. 섬기는 종의 가장 밑바닥 자리까지 내려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굴욕적인 일도 아닙니다. 그러한 낮아짐은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아름답고 신선한 충격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말씀드린다면 무엇보다도 주님의 본을 따라 죽기까지 낮아져야 할 우리의 교회에서, 복음의 현장에서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높아지려고 하십니까? 교회에서 높아져서 뭣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높여줍니까? 다른 사람이 인정해줍니까? 그것이 너무나 우스꽝스럽고, 사실은 그것이 스스로를 더 비천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리처드 포스터는 “주님의 십자가가 복종의 징표인 것처럼 수건은 섬김의 징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이유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복종과 섬김, 바로 종의 모습이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 주님은 이런 철저한 종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종으로 사셨습니다. 마지막 까지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인을 섬기셨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자 우리 성도들의 신앙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복종이 있습니까? 섬김이 있습니까? 대야에 물을 담으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의 모습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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