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인의 말과 신앙(약 3:1-12) [사순절 시리즈]
  • 2013.03.09 13:02:20
  • 우리나라의 옛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사람에게 있어서 언어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거꾸로 뒤집어 해석하면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질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유익을 끼칠 수도 있지만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고사성어 중에는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치밖에 안 되는 바늘을 가지고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로, 간단한 한 마디 말이나 글로써 사람을 감동시킬 수도 있고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혀는 크기로 따지자면 비록 세 치에 지나지 않으나, 그 혀가 끼치는 영향력은 사람의 일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듯이 사순절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기념하며, 경건훈련과 신앙에 힘쓰는 기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언어생활을 점검해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경건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믿는 사람들이 어디 가서 행동으로 범죄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을 보면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음담패설로 우리의 입술을 더럽히기도 합니다. 혹은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남을 비방하고, 중상모략하며 깎아내릴 때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경건해 보이는 사람도 그 언어생활에 들어가면 경건치 못한 삶을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순절을 통하여 우리의 언어도 훈련되어 가다듬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말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여 몇 가지로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성경은 말이 사람의 온 몸을 굴레 씌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절). 어떤 사람의 말이 그 사람을 얽어매는 굴레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중국의 고전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의 머리에 씌워진 굴레와 같습니다.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데리고 인도에 가게 되었는데 개구쟁이 손오공을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머리에 굴레를 씌우고 주문을 외우면 굴레가 조여 꼼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도 이와 같이 말에 의해서 제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든지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그러한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사사기 11장을 보면 "입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사가 등장합니다. 입다는 본래 기생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용맹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웃 나라가 이스라엘을 침략하자 사람들은 그를 군대의 대장으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전쟁에 나가면서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내가 승리하고 평안히 돌아오게 된다면 가장 먼저 대문에 나와서 영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습니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데 자기 무남독녀가 춤을 추면서 환영하러 나왔습니다. 입다는 그 모습을 보고 옷을 찢으며 슬퍼하였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이었기에 그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경솔한 말 한 마디 때문에 사랑하는 딸이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말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한 번 내어 놓은 말은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마디의 말이라도 신중하게 자신을 살피고 말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사람의 언어는 사람의 인생을 방향 짓고, 결정한다고 했습니다(3-6절). 본문은 이러한 말의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첫 번째 비유는 말의 비유입니다. 말은 비록 사람보다 힘이 세지만, 그 입에 재갈을 물리면 사람의 뜻대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말의 입에 물리는 조그마한 재갈이 말의 온 몸을 어거하고 제어하여 사람에게 순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성경은 배에 붙어 있는 키의 기능에 비유하여 말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배의 뒤꽁무니에 붙어 있는 키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작은 부속에 지나지 않습니다. 좋은 모양새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키가 없으면 배는 방향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 조그마한 키를 이용하여 선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배를 조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의 말은 많은 나무를 태워 큰 불을 일으키는 작은 불씨와 같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불이든지 작은 불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몸에서 혀는 비록 가장 작은 지체 중의 하나이지만 가장 큰 힘을 발휘합니다. 왜냐하면 혀를 가지고 말을 하고, 그 말이 곧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5절에 말씀하기를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다시 말하면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언어가 갖고 있는 이러한 힘은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었습니다. 의학에서는 인간의 대뇌를 대뇌피질과 변연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대뇌피질이 인간의 생각과 판단, 그리고 언어와 운동을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대뇌피질이 변연계나 척수와 같은 낮은 수준의 신경기능을 조정하고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언어를 관장하는 대뇌피질이 온 몸을 지배하기 때문에 어떤 말과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생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말이 습관화되면 그 사람은 인생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음담패설을 즐기는 사람은 음란한 삶을 살고, 폭력적인 언어를 쓰는 사람은 폭력적일 수밖에 없고,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은 사기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치입니다. 반대로 긍정적이고 좋은 말을 쓰는 사람은 긍정적인 좋은 삶을 살게 되겠지요.


    이와 같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속에는 역동적인 힘이 있습니다. 사람의 말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하면 살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우리의 언어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자신의 말을 다듬어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언어가 가는 세 번째 기능은, 언어는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9-12절). 오늘 본문이 말씀하기를 "내 형제들아! 이것이 너희에게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명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그 입술의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말이란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그 말로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혀는 작으면서도 인생의 운명을 결정짓는 강력한 힘을 가졌는데 문제는 이 말을 쏟아내는 혀를 길들이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말 때문에 땅을 치고 후회를 하지만 다시 입을 열면 똑 같은 방식으로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7-8절에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라고 말하면서 혀가 얼마나 통제하고, 길들이기가 어렵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혀를 길들일 수 없으니 포기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말로 인한 실수를 줄일 수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5:2-3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으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함부로 입을 열지 말고, 급한 마음을 말을 하지 말고, 말을 줄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언어는 곧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더 나아가 신앙인에게 있어서의 언어는 곧 그 사람의 신앙의 표현입니다.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알 수 있고 인격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언어를 통해 신앙이 표현되고 잘 정제된 언어를 통해 자기의 변화되고 성숙된 인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자기의 말을 뛰어 넘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의 언어생활을 돌아보고 우리의 말을 잘 다듬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합당한 삶을 살고, 우리의 말에 의하여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축복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순절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적인 언어생활로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해인씨의 기도문 중에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말을 가꾸어야 할지를 돌아보게 하는 기도문이 있어서 적어왔는데 한 번 같이 읽어보고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말을 위한 기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맺고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내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키우는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이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해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한 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들을 이겨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 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좀 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하고 좀 더 분별 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리는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 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노래처럼 즐거운 삶을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 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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