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장 25-33) [고난주간]
  • 2013.03.09 14:27:42
  •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를 외치며 길가에 있던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펼쳐서 밟고 가시게 했던 게 유래가 돼서 그렇게 부릅니다. 아울러 이 종려주일은 또 고난 주간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주간을 맞이하기 전에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자기 위해 출전하시기 전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선언하신 이 말씀에 주목하면서 여러분들과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하신 것은 과거 시제지만 사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표현한 겁니다. 히브리어법도 우리나라처럼 확실하고 결정적인 말을 할 때는 과거시제로 표현합니다. 우리도 싸움을 하면서 “너 죽었어!” 그러는데 시제는 과거지만 좀 있다가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냅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도가 마지막에 서게 될 자리는 승리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비록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어렵게 살아갑니다. 환란을 당합니다.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선언처럼 우리도 반드시 이깁니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지금 상황 보고 두려워 떨 것 없다. 요즘 신종어로 쫄 것 없다, 승리한다. 이 뜻입니다. 왜요? 우리 주님이 이기시었고, 우리가 주님 믿고, 주님을 위해 싸울 때 주님처럼 우리도 승리하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겨울에 스위스에 가면 험한 산악지형을 타는 코스가 있습니다. 얼음과 눈이 덮인 계곡을 따라 가는데 눈으로 보면 아찔하며 위험천만입니다. 그러나 현지인 가이드가 안전하게 안내하며 그 가이드만 잘 따라가면 조금의 안전사고 없이 반나절 동안 스릴과 멋진 풍광을 즐기며 트랙을 즐깁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승리하신 방식을 따라 믿음으로 나아가게 되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승리할 것이다, 이게 아니라 확실히, 백프로 승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으로 세상을 이기었습니까?

     

     첫째, 용서로 세상을 이겼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대하는 유대인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예수님께 오만하게 굽니다. 때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을 줍니다. 비방합니다. 절대로 예수님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거기에다가 힘으로, 실력으로, 권위로 누룰 수 없으니까 결국에는 신성 모독죄로 음해하며 죽이게 됩니다. 침을 뱉고, 고개를 흔들며, 비웃으며, 그냥 매달아도 될텐데 옷을 홀딱 벗겨서는 챙피를 줘가며.....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인간으로서는 미칠 일 아닙니까?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숨을 거두시기 전에 뭐라고 기도하셨습니까? ‘저것들 저주를 내려 주세요, 자손 3, 4대까지 집안이 초토화 될 때까지, 뿌리가 쏙 뽑힐 때까지 갋아 주세요.’ 이렇게 기도했지요? 아니예요. 그렇게 기도하지 않고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니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성자 나셨네요, 성자 났어요..... 이런 것은 인간이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예배 때 김우열 강도사님 설교 듣고 제가 많이 웃었어요. 교수가 너무 미워서 학교에서 좀 짤리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했는데 오죽 미웠으면 그렇게 기도했겠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저도 인간인지라 속으로 미움이 불타오를 때가 있어요. 한바탕 붙을 수도 없고.... 아무게 좀 손 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까? 하다가도 그래도 명색이 목사인데 어떻게 목사 입으로 사람을 손 봐 달라고 기도하나.... 목사이니까 내가 용서해야지....또 이런 생각을 하다가  목사이니까 용서한다..... 이건 억지 용서 아니냐.... 저절로 용서가 되어야지..... 이렇게 생각하게 되죠. 여러분.... 죄인은 무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죄의 본능에는 용서가 맞지 않습니다. 죄의 본능은 미움이요, 저주요, 갈등이요, 분노입니다. 그런 우리가 언제 진짜 용서할 수 있습니까? 성령으로 거듭날 때,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비로소 용서의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용서는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을 뿐 아니라, 마귀의 세력을 무력화시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의 질투와 미움을 사서 노예로 팔려갑니다.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사람으로 인해 요셉보다 더 큰 상처 입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 당한 역경과 고통이라는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피눈물로 세월이 흘러갑니다. 그러다가 총리가 되었는데 그 원수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와서 감히 그 앞에 선 겁니다. ‘내 인생을 망친 놈들, 내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놈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요셉의 고백이 뭡니까? 창45:5 보니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그랬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이 큰 인물 된 것입니다. 다윗은 원수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 주었습니다. 스데반은 자기에게 돌을 들어 치려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마귀의 계획은 그게 아닙니다. 피터지게 싸우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가 망가져야 합니다. 요셉의 경우 보통 사람 같으면 피의 복수가 일어나겠지요? 그 복수 가운데서 악한 마귀가 계속해서 활동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 자리에서 다 용서했습니다. 그랬더니 더 이상 사탄의 세력이 힘을 발휘하질 못합니다. 죄의 세력이 뿌리 채 뽑히는 능력이 나타난 겁니다. 이 용서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강한 민족이 되었고 출애굽 해서 하나님의 선민이 됩니다. 그렇게 용서에 힘이 있습니다. 용서하는 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됨을 믿습니다. 용서는 이 땅 위에 있는 마귀의 세력을 뿌리 뽑고, 사람들을 살리며 승리하게 하는 무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해 주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믿음으로 세상을 이겼습니다. 제자들이 배신하고 실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믿어 주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 이름으로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32절 보면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십니다. 다 알고 계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전히 제자들을 믿었습니다. 믿으면 변화됩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주는 유혹이 뭡니까? 서로 믿지 못하게 만드는 거예요. 오늘날 이 대한민국 땅에는 불신의 영이 다스림을 강하게 느낍니다. 이 불신의 영이 서로를 못 믿게 하고, 의심하게 합니다. 나중에는 “오직 이 세상에는 나 혼자 밖에는 없다”는 생각을 심어줍니다. 불쌍한 인생을 살게 만듭니다. 실패하는 인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형제를 믿고, 성도를 믿고, 이웃을 믿어 주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진실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친구 간에 의리를 지키는 것을 우정이라고 하고, 남녀관계에서 의리를 지키는 것을 정조라고 하고, 군신 간에 의리를 지키는 것을 충성이라고 합니다. 성도 간에도 믿어주는 덕목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끝까지 믿어줌으로써 사람을 변화시키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음을 믿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기도로 세상을 이겼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현장에서 이기심으로 세상에서도 승리하셨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기 전에는 40일 동안이나 금식하며 기도하셨고, 제자들을 뽑을 때에도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고, 십자가의 쓴 잔을 받기 전에도 겟세마네의 처절한 기조의 결전장이 있었습니다. 그 기도의 현장에서 이기심으로 마귀의 손발을 묶고 최후 승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일하십니다. 이 땅에서 성도들이 모여 기도로 묶으면 하늘에서도 묶입니다. 이 땅에서 기도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환란을 당할지라도 우리는 기도로써 풀 수 있고 기도로써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이 통일 되어 지금 잘 나가고 있죠. 이제는 동독 출신이 대통령도 되고, 총리도 되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독일이 통일된 것이 고르바초프가 개방정책을 폈기 때문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소련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민주주의의 승리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독일 교회가 주장하는 것은 믿는 성도들이 독일 통일을 위해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83년 독일의 라이프니쯔의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성도들 50명이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해 주옵소서!” 매주 월요일 저녁 6시마다 함께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6년 동안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1989년 1월에는 그 숫자가 겨우 1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6년 동안 겨우 50명에서 100명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해 10월 2일에는 2만 명이 모였습니다. 10월 9일에는 7만 명, 10월 23일에는 36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0월 30일에는 57만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 기도의 응답으로 마지막으로 기도회를 가진 날,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종려주일을 보내고 내일부터 고난주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 고난 주간에 우리 항도교회 모든 성도들이 힘써 새벽을 깨우고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여, 미움과 증오, 불신과 시기심.... 이런 것들을 우리 마음에서 다 씻어내고 이번 부활주일에는 우리도 주님처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외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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