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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브리서 11:01-03/ 믿음의 세계 [새벽]
  • 조회 수: 120, 2018.12.16 23:04:20
  •  히브리서 11장을 흔히 ‘믿음장’이라고 합니다. 믿음이란 말은 성경 안에서도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누간가를 신뢰할 때 믿는다고 말합니다. ‘신앙의 열정과 충서의 정도’를 말할 때 ‘그 사람은 믿음이 좋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는 ‘지적인 동의’를 표현할 때도 믿음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야고보서 2장 19절에 보면,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습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고 떤다는 표현은 귀신의 지적인 동의입니다. 귀신들은 하나님께 충성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인정합니다. 그런 점에서 ‘귀신들도 믿는다’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이런 지적 동의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혀 믿음의 원리를 따라 살지 않으면서도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에 대해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하박국서에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7절과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서 인용합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늘 제목을 ‘성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라고 정했습니다. 본문은 세 가지 점에서 세상적인 가치관을 거부하는 믿음에 대해 정의합니다. 이 믿음은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현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말하며 그 가운데 과거의 삶이 치유받는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1. 믿음은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장래의 소망을 실제로 느끼고 경험하고 확신하고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지만, 장차 이루어질 것들을 실상으로 보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미래를 기대합니다. 믿음은 현재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현재를 뛰어넘는 힘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미래에 약속된 하나님의 말씀을 실상으로 보며 현재를 뛰어넘는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미래를 불안정한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영역이라고 믿었습니다.  

    2. 믿음은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1절 하,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그리스도인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의 현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수종하는 삶의 현장입니다. 현재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현재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현재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현재는 미래에 일어날 그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가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여기에 세속적인 사고와 성경적인 사고가 완전히 갈라지게 됩니다. 세속적인 사고는 현재의 삶이 미래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미래의 운명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세계관에서는 현재의 삶이 미래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즉 현재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미래에 의해 확실하게 구속되어 있습니다.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계획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삶을 좌우합니다. 

    3. 믿음은 과거의 삶을 회복합니다. 

    3절,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믿음으로 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이 일에 우리는 참여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창조의 역사는 늘 신비롭기만 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믿음으로 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과거도 주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과거를 볼 뿐만 아니라, 그 과거조차도 주님의 주권적인 손에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놀라운 것은 본문은 미래로부터 현재로, 그리고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면서 믿음의 실체, 본질에 대해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압니다. 이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인간은 지나간 과거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를 직접 하신 분이시고, 따라서 우리의 과거조차도 그분의 손에 있음을 밝히십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과거가 현재의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는 원망과 불평이 조금씩 있습니다. 어렵고 불행한 환경에서 자람으로 아주 겪기 어려운 경험과 그로 인한 상처가 여전히 있는 사람들은 더욱 이런 마음이 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불평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전적으로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어디선가 실수를 하셨거나, 아니면 한 때 그분은 내게 대하여 무관심하셨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주님의 은혜를 소망하긴 하지만, 그분의 손길조차도 나의 삶을 완전히 치유하고 회복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랑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과거도 치유/회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과거 그 때에도 우리와 함께 하셨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삶도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주관하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 부족함 때문에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을 그렇게 살지 못한다고 생각할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하나님을 만난다면 우리는 그 어떤 약점과 아픔들, 부족함들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음을 고백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 고백이 없는 사람은 진정한 성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나의 나됨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 12:9)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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