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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편 064:01-10/ 근심하는 소리 [시편]
  • 조회 수: 505, 2018.12.18 16:21:46
  • 1. 근심하는 소리 

    시인은 근심하는 소리를 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근심 자체가 소리가 된다. 근심하는 사람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의도와 의지와 상관없이 표정, 행동으로 소리를 낸다. 시인은 자신이 근심하는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시기를 간청한다. 하나님을 향한 간청을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는 하나님이 오지 않아서.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으니 제바 ㄹ들어달라고 요청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이 근심하는 소리를 포착하는데 능하신 분이라서. 그분은 자신 뿐만이 아니라 형제 자매 부모 할아버지 친족들의 경험 안에서 근심의 소리를 포착하는 분이시다. 그래서 그분께 들으시라고, 근심의 소리에 반응하시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들으심은 청취, 감상의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인은 그것을 알았다. 들으시는 하나님은 움직이시는 하나님, 근심의 소리를 들으시는 순간 움직이실 것이라고. 시인의 요청은 조금 의외다. 악을 멸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숨겨 주시고 감추어 달라는 요청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3,4절에 나온다. 지금 시인을 향한 공격은 거대한 전쟁이다 주먹다짐이 아니다. 물리적 공격이 아니라 정서적 심리적 공격이다. 바로 뒷담화. 칼같은 혀와 화살 같은 말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파상공세를 펼치는 것이다. 혀와 말의 공격이야 말로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공격이니까. 

    시인이 악의 절멸이 아니라 자신을 숨겨 달라는 요청을 한 것은 이러한 연유이다. 악인을 잡는다고 악인이 쏟아놓은 혀와 말의 공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숨는 것이다. 완전히 사라져서 과녁을 잃은 혀와 말들이 제 풀에 지쳐 쓰러지기를 바랄 뿐이다. 

    5,6절은 악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죄책감과 두려움 없이 함정을 설치하고 자신들끼리 히히덕 거리는 모습을 상세히 보여준다. 누가 우리를 볼까? 우리가 설치한 함정은 대체 누가 알겠어! 하며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누군가를 괴롭히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악을 묘책이라는 말로 바꾸어 죄책감을 던다. 시인의 말처럼 사람의 속뜻과 마음이 깊어 도무지 이러는 인간들의 속을 알 길이 없다. 

     <그럴 줄 몰랐다>
     표현을 바꾼다. 죄악을 묘책으로 바꿈으로써 농담과 장난으로 치환한다. 누군가에게는 끝모를 절벽으로 떠미는 것이 누군가에게 농담과 장난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속으로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 말한다. 자신이 죄악을 묘책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농담과 장난으로 변환시켰다는 것을. 
     분명 그럴 줄 알았다. 다만 정말 일어날 줄은 몰랐고 일어난다 하더라도 자신은 죄악이 아니라 묘책이며 농담과 장난이었다고 얼버무릴 생각이었을 것이다. 나쁘다. 
     
     
     그러나.  7절은 그러나로 시작함으로써 하나님의 반격을 기대하게 한다. 인과응보. 자신들이 쏜 혀가 그들을 해할 것이다. 하나님이 쏘는 화살은 하나님의 시그니처 화살이 아니라 그들이 쏜 혀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내가 뱉은 죄가 된다. 그 죄가 나를 죽이다. 나를 심판한다. 내가 쏜 농담과 장난이 나를 죽인다. 
     
     죄를 지은 사람은 죄를 지음으로써 죄 안에 갇힘으로써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마치 이명박은 이명박이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는 것과 같다. 그정도로 성에 차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만이 심판 자체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감됨을 이루어야 할 존재가 철저히 망가져 버렸기 때문이다. 비록 더 많은 정의와 잔인한 심판을 바라는 욕구 앞에서는 너무나 점잖고 말뿐인 듯 보이지만...
     
     8.그들을 보는 자가 다 머리를 흔들리로다
     
     죄인에 대한 심판은 그들을 보는 자들이 다 알 수 있는 자명함이 있어야 한다. 머리를 흔들며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알 수 있도록 자명해야 한다. 앞서 말한듯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됨을 상실한 것. 이 말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 할 하나님의 일, 모든 사람들이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심판이 필요하다. 그럴 때에만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그분께 피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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