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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브리서 11:37/ 예레미야의 믿음 [새벽]
  • 조회 수: 533, 2018.12.19 15:44:21
  • 37절에는 돌에 맞아 순교당한 신앙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누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까? 신약에서는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바울도 돌에 맞아 혼절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37절에 나오는 돌에 맞은 사람은 아무래도 구약의 인물인 듯합니다. 왜냐면 그 다음에 나오는 ‘톱으로 켜는 것’이 이사야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돌에 맞아 순교한 사람은 예레미야로 보는 것이 낫습니다. 예레미야와 이사야는 거의 동시대 인물입니다.

    예레미야가 돌에 맞아 순교한 것은 거의 전설입니다. 성경에 기록은 없습니다. 물론 이사야가 톱에 켜 죽었다는 것도 성경에 기록은 없습니다. 이사야 승천기나 탈무드, 여러 유대 전승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이 전승을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가장 어두울 때 활동한 사람입니다. 주전 626년에서 587년까지입니다. 587년에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약 40년간 활동했습니다. 

    이때가 이스라엘은 최악의 암흑기였습니다. 북 왕국은 앗수르에 망하고 많은 귀족들이 애굽으로 피난을 가고, 대다수는 포로로 잡혀 갔을 때입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그의 예언을 듣지 않고, 비난하고 핍박합니다. 때로는 그를 붙잡아서 마른 우물에 던집니다. 자주 돌로 치기도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회개를 외쳤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 앞에 지은 죄 때문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의 외침을 듣기 싫은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핍박했습니다. 예레미야의 별명이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예레미야서와 애가를 썼는데, 애가는 그야말로 처절한 눈물의 예언입니다. 예레미야의 눈물로 점철된 예언, 눈물의 노래입니다. 백성들이 귀를 닫으니 눈물로 호소한 겁니다. 결국 587년에 죽습니다. 예레미야가 히브리서 11장에 오른 것은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1. 그는 우선 하나님의 예지예정(豫知豫定)에 투철한 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1장 5절입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거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다는 것은 예지(豫知)입니다.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했다는 것은 예정(豫定)입니다. 예레미야가 그 온갖 박해 속에서도 40년 동안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자신에 대한 예지예정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깨닫기 전에는 교회 다닌다는 것이 수박 겉핥기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그럭저럭, 실수로, 친구를 따라 교회에 왔다가 붙잡힌 게 아닙니다. 믿는 부모를 만나 선택의 여지없이 신자가 되었습니까? 가정 평화를 위해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이것은 모두 우연을 가장한 창세전부터 불러주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실체적 진실은 이미 하나님이 창세전에 나를 아시고 택하셨다는 겁니다. 따라서 예지예정의 신비와 비밀을 깨닫지 못하면 신앙생활에서 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이유로 나를 창세전에 나를 아시고 택하셔서 당신의 자녀를 삼으신 것인가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레미야나 바울처럼 신앙의 정절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어떤 선지자보다 예지예정의 신앙이 투철했습니다.

    2.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인간적인 한계를 인식하고 겸손히 살았습니다. 예레미야 1장 6절입니다.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이때 예레미야는 20대 청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린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경험이 없고 미숙한 자신의 한계를 겸손히 시인한 겁니다. 

    솔로몬도 왕위에 오른 후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어린 아이라고 했습니다. 이래야 은혜를 입습니다. 요즘은 절대 겸손이 미덕이 아닙니다. 모두 자기선전에 혈안입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 잘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떳떳해도 좋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교만할 권리, 자만할 자유가 없고, 겸손하고 겸허해야 할 의무와 책임뿐입니다. 주님도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지니셨습니다. 주님도 자기를 밑바닥까지 낮추십니다. 어쨌든 사람들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시대에 우리는 애써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을 섬길 수 있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서를 읽어보면 그는 참으로 겸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동족 앞에서 얼마나 겸손했는지 모릅니다.

    3. 예레미야는 누구보다 사명자 의식에 투철했습니다. 7절 이하입니다.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이게 바로 예레미야의 소명입니다. 이것은 결코 예레미야만의 사명은 아닙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두려워 말라. 누구에게든 가고, 무엇이든 말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모든 사역은 결국 이 시대를 향한 주님의 말씀을 충분하고 충실하게 대변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점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당신의 말씀을 두셨다는 사실을 어떤 핍박과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백성들 앞에서 선포해야 함을 자기의 사명으로 확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울며불며 그 말씀을 끝까지 전하다가 결국 동족에게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위대한 믿음의 조상 예레미야의 사역과 믿음을 생각하며 자신을 성찰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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