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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브리서 12:04-13/ 징계 [새벽]
  • 조회 수: 1542, 2018.12.25 22:54:21
  • 오늘의 주제는 징계입니다. 왜 징계입니까? 달음질을 잘하면 상을 받지만 또한 낙오도 있습니다. 낙오하지 못하도록 징계를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앞에 주어진 경주를 잘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군에서도 훈련병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게 구보입니다. 다른 게 힘들 것 같지만 구보가 제일 힘듭니다. 대부분의 훈련병들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거리를 완주합니다. 완전군장을 하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뛰어서 목표지점까지 뜁니다. 왜 그럴까요? 뛰다가 낙오해서 맞아서 죽느니 차라리 뛰다가 죽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징계가 없으면 다 낙오할 겁니다. 낙오하면 잠 안 재우고 연병장을 밤새도록 돌리니 차라리 뛰다 죽겠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완주합니다.

    히브리서 신앙의 달음질을 말씀하며 징계를 말하는 것은 어떻게든 우리가 천국까지 완주하게 하려는 뜻이 있습니다. 4절에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지 않았다’라는 말은 우리가 죽기를 각오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편하게 신앙생활하면 다 엉터리입니다. 정말 신앙생활은 장거리 구보처럼 힘든 겁니다. 정말 죽기를 각오하고 이를 악물면 더 뛸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지적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죄와 싸우지만 그러나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았다는 겁니다. 신앙의 우리 선조들은 피 흘리기까지 싸우다 순교했습니다. 그래서 징계는 우리의 잠재력을 100프로 120프로 발휘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보통은 자기 힘을 다 써보지도 않고 백기를 듭니다. 아이들에게 답답한 것은 힘껏 해보지도 않고 스스로 패배를 선언해 버리는 겁니다. 죽기까지 노력을 했는데도 안 되면 그건 동정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제대로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합니다. 이게 부모로서는 답답한 노릇입니다. 히브리서는 피 흘리기까지 달리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징계를 피하지 못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에게  징계란  무엇입니까?

    여기서 징계는 저주가 아니라 사랑의 매입니다. 6절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따라서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10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징계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애정, 관심 그리고 사랑입니다. 저주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 자녀요 친 아들이기에 징계하시는 겁니다. 남의 자식이 낙오되든 도태되든 무슨 상관입니까? 그러니 고아나 사생자에게는 징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에게는 항상 징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징계 받을 일이 없이 우리 앞에 놓인 경주에 최선을 다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어떻게든 사랑의 매를 들어서라도 잘 되게 하십니다. 내가 징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이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징계 받을 때, 시험 받을 때 잘해야 합니다. 5절입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주님의 징계를 우습게 여기지 말라는 겁니다. 부모가 매를 드는데도 끝까지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얼마든지 때릴 테면 때리라는 태도를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진지하게 징계를 받으라고 합니다. 이 징계를 통해 주님이 내게 계시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사색해야 합니다. 자성하고 용서를 구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징계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더 큰 징계를 자초하는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낙심하지 않는 게 징계를 잘 받는 겁니다. 5절 하반절입니다.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징계를 받을 때 그 징계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낙심천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친부모 맞느냐며 대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은 잘 사는데 왜 하나님은 내게만 이런 징계를 주시는가 하면서 낙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그만큼 크고 깊다고 해석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낙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제대로 받는 태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징계를 주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못한 해석입니다. 징계 받을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남다른 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확인하십시오. 아직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아직도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하십시오. 괜히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완주하게 하셔서 면류관을 얻게 하십니다. 그러니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다. 오히려 징계를 받으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십시오. 오히려 뜀박질에 정진하십시오.

    그리고 징계를 받을 때 더욱 복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더욱 철저하게 결단하며 살아야 합니다. 9절입니다.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아버지가 자식을 징계하는 것은 결국 아버지의 뜻을 공경하게 하려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이유도 결국 우리가 주님 뜻에 복종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즘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을 징계하면 학생들이 반발합니다. 그 학생들의 반발에 부모까지 가세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스승이 없고 제자가 없습니다. 그런 풍토에서 무슨 스승이 있고 제자가 있습니까? 군대 교관이 훈련병을 미워서 징계하는 겁니까? 어떻게든 낙오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이 선생의 징계에 반발하면 그 징계의 의미가 사라집니다. 결국 공부 잘하고 훌륭한 사람 되라고 징계하는 건데, 거기에 반발하면 징계의 의미는 퇴색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징계할 때 자식이 부모의 뜻에 순종하기를 바라는데, 자식이 부모 말씀에 순종하려 들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면 졸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뜻에 더 매진하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더 반발하다가 더 시험에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징계하시는 의도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 원망이나 대들 게 아니라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13절입니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지금 내가 절고 있진 않나, 내가 가는 길이 어그러지지 않나 확인하라는 요청입니다. 징계를 받을 때 얼른 자세를 고쳐 잡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건강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징계를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징계는 저주가 아니라 은혜요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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