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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절_신약 누가복음 15:17-24/ 명절을 맞아 다시 생각해 보는 탕자의 비유 [절기]
  • 조회 수: 390, 2019.02.06 15:56:37
  • 오늘까지 설명절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제가 우리 어르신들 방문하시는 자녀들이 차를 많이 가지고 오셔서 주차장 교통정리를 했었는데 자녀분들이 다 훌륭하고 멋지셔서 우리 어르신들이 자녀들을 전부 잘 키우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너무 많은 분들이 이틀에 걸쳐서 병원을 찾아주셨는데 명절은 명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절이 되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다 부모님을 만나뵈러 오는데 어떤 자녀들은 출세해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기도 하고, 돈도 많이 벌어서 선물이나 용돈을 두둑히 가지고 옵니다. 그러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부모님과 형제들을 찾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반면에 어떤 자녀들은 부모님이나 다른 형제들을 만나러 올 때 마음이 무겁습니다. 명절이 좀 부담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다 모였을 때 자신이 다른 형제들 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명절에 느끼는 소회는 탕자의 비유에 나타나는 이야기와 정서적으로 일치되는 바가 많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부모와 함께 살던 아들 둘이 나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품안에서 사는 것에 대해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자기에게는 나름대로 꿈이 있습니다. 아버지 품에 있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노력하면 훨씬 잘 살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자기에게 돌아올  상속재산을 미리 달라고 조릅니다. 이 상속재산은 부모가 돌아간 후에 받는 것이 순리입니다. 부모가 죽기 전에 재산을 달라고 하는 것은 부모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둘째 아들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이에 마음씨 좋은 아버지는 걱정되고 염려되지만 아들의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둘째 아들은 자기 소원대로 이루어졌다고 기뻐하면서 아버지가 준 자기 몫의 재산을 가지고 나가 자기 딴에는 정말 열심히 삽니다. 그런데 자기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재산이 다 날라 갔습니다. 이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한 둘째 아들에게 온갖 사기꾼들이 다 붙어서 돈을 자기치는 바람에 얼마 못가서 돈이 다 없어집니다. 결국에는 자기 자신마저 지탱 할 수 없는 형편이 됩니다. 죽을 지경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자신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놀랐습니다. 인간은 그 만큼 자기 의지가 강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죽을 지경이 되지 아니하면 결코 돌아서는 회개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런 지경에 된 후에야 아버지집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집은 먹을 것이 풍부하게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 집에 돌아옵니다. 

    한편 아버지는 이제나 저제나 이 아들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다가 멀리서 머뭇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자식을 보면서 덥썩 끌어 안아 집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너는 내 자녀임을 인정하는 가락지를 끼어 줍니다. 그리고 잔치를 벌입니다.  

    물론 이 비유에서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 받는 세리와 죄인들을 둘째 아들로 비유하고 있으며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은 첫째 아들로 비유하면서 아버지는 성실하면서도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첫째 아들 보다는 철이 없지만 뒤늦게 아버지의 자비를 찾아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에게 마음이 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의무감에 매여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모범적인 그리스도인들로 보여지지만 그들에게는 감동이 없습니다. 열정이 없습니다. 눈물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탕자의 비유에 나타나는 첫째 아들입니다. 

    반면에 인생을 살면서 처절하게 실패를 경험하고 인생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지푸라기라도 붙드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렵습니다. 도덕적으로도 비난을 받습니다. 그렇기에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교회에 다니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필요하기에 교회에 나오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니 그 예배와 기도가 얼마나 처절하고, 치열하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탕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탕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명절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는 명절이 될 때마다 첫째 아들이든, 둘째 아들이든 한쪽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명절이 될 때마다 부모님을 찾아 뵙고, 형제들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마음이 무거운 경우는 둘째 아들의 역할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명절에 부모와 형제들을 만나서 분란을 만들어내는 자녀는 영낙없는 첫째 아들의 모습입니다. 둘째 아들은 가족들에게 측은한 마음을 일으키는 아들이고, 첫째 아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지나친 자만심으로 부모와 형제들을 비난하고 책망하는 아들입니다. 우리는 이 둘 중에 어느 한쪽에 틀림없이 서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명절에 나타나는 가족의 갈등상황에서 좋은 명절의 분위기를 만들어갈 책임은 첫째 아들에게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갑질을 할 수 있는 조건은 첫째 아들 외에는 없습니다. 첫째 아들이 우선 부모의 심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둘째를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의 심정도 해아려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나 둘째 아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아들이 보는 앞에서 부모님에게 거창한 선물을 드린다든지, 큰 용돈을 드리는 것도 삼가해야 합니다. 물론 드리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른 형제들 몰래 드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에게 주는 선물도 먼저 주지 말고, 집에 갈 때 조용히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자기 얘기를 하지 말고 둘째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긍정해주고, 염려해주고.... 그러면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주인공이 되게 하고, 둘째 아들이 주인공이 되도록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 첫째 아들이 히야 할 명절이 몫입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타나는 첫째 아들은 결국 가정을 해치는 아들의 역할로 끝나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첫째 아들의 배려로 부모와 둘째 아들이 함께 행복하며 가정이 더욱 더 견고해지고, 형제들 간에 우애 깊은 명절로 만들어 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 이번 명절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지만 다음 명절에는 여러분 모두가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첫째 아들로 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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