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진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과도하게 아껴도 가난해질 뿐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는 재물이 인간의 노력으로 주어지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급으로 주시는 것이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아마도 이러한 제물관이 확실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께 재물의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영예로운 재물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주라 그리하면 흔들어 넘치도록 눌러주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드리자 오천명이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사렙다 과부가 떡과 기름을 엘리야에게 드렸을 때 가뭄때 계속하여 먹고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재물을 물에 던지면 하나님은 그 재물이 언제가 그와 그 후손에게 배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비밀을 가르쳐주시는데 그 비밀인즉, 관대함은 증식을 가져오고 인색함은 가난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뿌린 그것을 몇 배로 거두어서 재정적으로 부유해질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창세기 26장에서 이삭은 관대한 생활의 태도로 하나님께 복을 받아 그 해에 백 배나 더 거두었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신명기 1장 11절에는 모세에게 현재보다 1000배나 더하실 것이라고 복을 주십니다. 5병 이어 같은 경우에는 5천배의 복까지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금전을 뿌리고 영혼을 거둘 수도 있습니다. 친절을 뿌리고 친구를 거둘 수도 있으며, 동정을 뿌리고 사랑을 거둘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관대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상급을 거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에게 사 준 책 한 권이 그의 전체의 삶의 방향을 변화시키는데 사용되었음을 후에 알게 될 때도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베푼 친절이 계기가 되어 어떤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기도 합니다.
반면에 자기를 위해 쌓아두는 것은 가난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은행에 쌓아둔 돈에서 기쁨을 얻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짓된 안전감으로 우리를 속일 수는 있으나 참되고 영원한 기쁨을 줄 수는 없습니다. 돈을 버는데서 얻는 흥미는 그 돈이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이웃을 위해 사용되어 엄청난 결과를 거두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비밀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은 기꺼이 큰 금액을 사회에 기부하기도 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어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얼굴없는 기부자로 잘 알려진 손창근 할아버지는 2008년에는 추사 김정희의 새한도를(그림) 국립 중앙박물관에 기부하면서 1억원도 함께 기탁했는데 2012년에는 그동안 50년 가까이 가꾸어 온 싯가 1천억원 가치의 산림 662헥타아르를 또 산림청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이는 서울 남산 면적의 2배가 넘는 규모라고 하는데 그가 소유한 지역의 주변이 점차적으로 개발의 붐이 일면서 그동안 가꾸어 온 산림에 대해 가족 간에 개발에 대한 견해 차이로 자주 다툼이 일어나면서 결국은 산림청에 기부하면서 재산정리를 하였는데 그 자녀들도 기꺼이 동의를 하였다고 합니다. 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이 지역이 국유화되어서 그동안 자기 집안이 가꾸어 온 삼림을 회손하지 않게 후대에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조건만 달았다고 합니다. 경기도 용인과 안성지역을 끼고 있어서 앞으로 그 가치는 엄청나게 될 것인데 이를 과감하게 기부하기로 결정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이 분이 예수를 믿는지 믿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재물의 이러한 태도야말로 오늘 본문처럼 흩어 구제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작은 재물은 우리의 노력으로 가능하나 큰 재물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너무 재물에 집착하여 과도히 아끼거나 인색하지 말고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