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뿌리 깊은 나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구절이죠. 뿌리 깊은 나무는 꽃이 피고 지는 것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서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한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12절에 보면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게 된다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잠언 12장 전체를 보면 대체적으로 악인은 오래 서 있지 못하고 곧 소멸되는 것으로 표현되며 반면에 의인은 굳게 서게 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에서 의인의 삶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뿌리 깊은 나무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첫째, 뿌리 깊은 나무는 터를 잘 잡아야 합니다. 모래, 바위.... 이런 것은 뿌리 깊은 나무가 자라기에 좋은 땅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복을 얻는 자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의뢰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뿌리를 두는 자라는 말입니다. 특히 예레미야 17장 7-8절은 시편1편과 비슷한 문구가 등장합니다.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복있는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잘 파악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라고 하는 영생의 샘물에 깊이 뿌리를 박은 나무라는 것이죠. 나무가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뿌리를 통해 물과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곧 나무는 뿌리에 뿌리는 땅 속의 물과 영양분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생의 샘물인 말씀에 뿌리를 둔 자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고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 곧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둘째, 뿌리 깊은 나무는 물과 양분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물을 빨아드리고, 영양분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로 뿌리를 촉촉하게 적셔야 합니다. 눈물의 기도 만이 나무의 뿌리에 수분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분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연약할 때에 성령으로 붙들림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나무의 뿌리는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셋째, 이렇게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는 요동하지 않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엔 바람 잘 날 없지만 뿌리 깊은 나무는 이런 바람에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의인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의인은 세상의 풍습에 요동하지 않습니다. 의인은 악한 사람들의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이성, 감정, 욕심, 정욕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귀로부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 모든 것으로 시험을 받았으나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철새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조금만 불리하다 싶으면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이러 저리 옮겨다니기를 조석으로 합니다. 오늘 아침에 한 말도 저녁이 되면 바꾸어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 선거 한 번 하면 정당 이름이 바뀌고, 정당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합니다. 이러니 이런 정치에 무슨 믿음이 가겠습니까?
우리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긴 인생 살다 보면 실망도 있고 절망도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럴 때마다 바람에 흔들리듯 아프고 방황하지만 의인은 시대의 바람을 탓하지 않고, 환경을 탓하지 않고 침묵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인내 가운데 기도합니다. 이렇게 해서 의인은 자기의 중심을 지키는 뿌리 깊은 나무로 그 자태를 뽐내며 묵묵히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한다고 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 안에 굳게 서되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려 흔들리고, 요동치 않는 삶으로 의인의 자태를 뽐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