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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잠언 15:01-04/ 지혜자의 입술 [새벽]
  • 조회 수: 270, 2019.02.22 17:00:03
  • 오늘 읽은 잠언 15장은 내용 전체에 걸쳐서 의인과 악인의 입술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언어 생활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에 쌓은 것을 그 입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는 그 마음에 쌓아 놓은 악을 그의 입을 통해서 쏟아냅니다. 그는 노를 격동하는 과격한 말을 하며, 패려한 것을 말하며 자신의 미련함을 드러내는 말을 합니다. 참으로 미련하고 악한 자의 말은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위험스럽습니다. 그의 혀는 마치 칼과 같아서 그것을 듣는 이와 말하는 이 모두를 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지혜 있는 자는 분노를 쉬게 하는 온유한 말을 하며, 때에 맞는 아름다운 말을 깊이 생각한 후에 합니다. 그의 혀는 생명 나무와 같이 듣는 이의 마음을 치료하며 생기를 북돋아 줍니다. 그의 입과 입술은 참으로 복되어서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를 행복하게 합니다. 참으로 그는 그의 입술의 열매로 인한 복록을 누립니다.

     

    먼저 1-2절에서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상대방의 분노를 쉬게 하며 다른 사람들과 바른 관계성을 맺게 합니다. 그러나 과격한 말은 상대방의 노를 격동하게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지혜롭기 때문에 유순한 대답을 합니다. 유순한 대답을 하려면 여호와를 경외하고 지혜 있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오늘날 이 사회는 적개심과 증오심으로 가득차서 위 아래를 가리지 않고 험한 말을 합니다. 이는 자신이 미련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말하는 순간에 자신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4절에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우리는 온순한 말을 해야합니다. 온순한 말은 다른 사람을 치료하는 힘이 있습니다. 온순한 사람은 자신도 생명을 얻고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 나무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온순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온유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패역하고 가시돋친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칼과 같습니다. 우리가 온순한 말을 하려면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령을 받아야 온순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자가 유순하고 온순한 자가 되어 부드러운 말을 합니다.

     

    18절에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고 했는데 지혜로운 자는 분을 쉽게 내지 않습니다. 그는 마음에 여유가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과의 싸움이 즐어듭니다. 그러나 마음에 여유가 없고 조급한 사람은 사람들과 다툼을 일으켜 자신이 있는 곳이 지옥처럼 됩니다.

     

    마지막으로 23,24절을 보십시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에 있는 스올을 떠나게 되느니라”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기쁨을 얻습니다. 때에 맞는 말은 아름답습니다. 그는 자신을 모욕하는 말을 들을 때는 대꾸를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결정적인 순간은 말을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때에 맞는 말을 하여 위로 향한 생명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는 자신의 아래에서 삼키는 스올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를 얻어 때에 맞는 말을 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심문 받을 때 고소하는 자에게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그리스도냐 왕이냐는 질문에는 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때에 맞는 말로 인류에게 생명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겸손히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잘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읍니다. 이런 사람이 경영을 이루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2]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4]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 패역한 이란 -"성질이 거칠고 사납다"란 뜻



    조선시대에 유명한 제상이었던 황희 정승에게 어느 날 하인이 찾아왔습니다. 그 하인은 다른 하인과 다투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황희 정승은 그 이야기를 다 듣고서는 '네가 옳다'고 편들어 주었습니다. 그 하인은 의기양양하게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또 다른 하인이 같은 문제를 가지고 황희 정승을 찾아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정승은  '네가 옳다'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 하인도 의기양양하게 돌아갔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부인이 황희 정승에게 따졌습니다. "아니 둘 중에 하나가 잘했으면 다른 하나는 잘못한 것인데 대감은 왜 줏대도 없이 둘 다 옳다고 하십니까?"라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러자 황희 정승은 '자네 말도 옳으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말이란 무기도 될 수 있고, 치료하는 약도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말을 함부로 하면 무기가 되어서 상대편에게 상처를 주게되고, 말을 겸손하게 사용하면 상처난 사람을 치료하는 약도 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큰 복이 되기도 하고, 큰 화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속담인 것입니다.

    사실 황희 정승처럼 말의 의미를 폭넓게 사용한다면 서로 다툴 일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말을 사용합니다. 

    더 넓게 보자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말을 하고 삽니다. 인간의 언어는 손과 발처럼 일평생동안 쉬지 않고 사용하는 보이지 않는 몸이며 신체의 일부분입니다. 사람이 일평생동안 사용하는 도구 중에 말만큼 많이 사용하는 것도 없을 것이며, 가장 소중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모든 문명과 문화는 말을 통해서 발달했고 전수되었습니다. 말을 글로 옮기면 책이 되는 것이고, 소리로 옮기면 노래가 되는 것이며, 몸짓으로 옮기면 연극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답답한 것 중에 말을 못하는 벙어리만큼 답답한 것도 드물 것입니다. 말은 자기 자신의 필요를 표현하는 수단이며,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통로입니다. 인간의 생활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말을 잘못 사용하면 무기가 됩니다. 말로 인해서 인생을 망치기도 하고, 치유 받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게도 됩니다. 그래서 오늘 잠언에서는  "온량한 혀는 곧 생명 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4절]고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패려~성질이 거칠고 사납다)


    조선일보 7월 11일자에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업체 ‘나와넷(www.nawanet.com)’ 대표 박봉래(35)씨가 소개되었습니다. 그는  공공건물 출입구에 들어가면 핸드폰이 저절로 ‘진동’으로 바뀌는 기술을 개발하여 정보통신부에서 주최한 ‘창업아이템 경진대회’ 대상을 안았습니다.

    그는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소아마비 때문에 열네 살 때까지 학교에 못 갔으며 혼자 공상을 하며 놀았다고 합니다.

    서당 훈장을 지낸 할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버지는 전남 화순탄광 광부로 17년간 근무했습니다. 학교에 못 간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아들을 앉혀놓고 천자문 가락으로 ‘가나-다라 마바-사’를 외웠다고 합니다. 

    박 대표는 열네 살 때 초등학교 5학년에 편입했습니다. 교육방송 라디오를 들었다곤 하지만, 내내 집에만 있다 생전 처음 교실에 앉은 소년은 전 과목 꼴찌를 거듭했습니다. 어느 날 체육시간에 운동장을 지나던 교장선생님이 혼자 땅바닥에 낙서를 하는 박 대표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그놈 참 똑똑하게 생겼다”고 했습니다. 이 말 한 마디가 박봉래씨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날부터 성적이 쑥쑥 올라갔습니다. 산수와 과학에 재미를 붙여서 친구들과 함께 로켓도 만들고, 인과 황을 섞어 폭탄(?)도 만들었습니다. ‘펑’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가 터져 주변 아이들이 전부 검댕투성이가 됐죠. 병 속에 수산화나트륨과 과산화수소수를 넣고 빨대로 용액 윗부분 공기를 흡입, 뱃속에 시원한 느낌이 들게 하는 장치를 만들었다가 형님 친구가 기절한 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온량한 말 한마디는 생명나무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거칠고 포악한 말은 한 인생을 망치게도 합니다.


    어느 중학교에 새로운 선생님이 부임했습니다. 중간고사가 지난 시점에 부임한 선생님은 늘 하던 버릇처럼 자기가 맡은 교실에서 가장 공부를 못하는 학생부터 혼내줌으로 그 반의 분위기를 휘어잡으려고 계획하였습니다.  그 선생님은 종례시간에 꼴등한 학생을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에게 "너의 일생은 공부로 풀리기는 틀렸다."고 때리면서 모욕하였습니다. 시험에서 꼴찌를 하여서 모욕을 당하는 학생은 사실 공부를 잘하는 친구였습니다. 그는 몸이 아파서 중간고사 시험기간에 결석을 함으로 꼴찌를 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은 이 학생은 그 후 장성하여서 모의고사 실력으로는 서울대학에 충분히 입학 할 만큼 점수가 잘나오는데 실제 시험만 보면 전문대학에도 들어가지 못할만큼 형편없는 점수가 나왔습니다. 결국 그 학생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하여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레이스 케터만 박사는 미국의 미혼모 시설에 수용된 많은 사람들은 말로 인하여 상처 받아서 타락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엘렌이라는 여인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욕설과 학대를 견디며 자랐다고 합니다. 엘렌의 아버지는 툭하면 "야, 이년아. 나가서 창녀 짓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와야 할 거 아냐."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상처를 받은 엘렌은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창녀처럼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보니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되자 미혼모 시설에 수용된 것이었습니다. 


    데일이라는 사람이 자기의 딸을 데리고 정신과 병원에 찾아왔습니다. 그의 딸 이브는 공부는 안하고 점점 낙오자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답답하게 생각한 아버지가 딸을 데리고 병원에 상담을 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상담해본 결과 이브가 본래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브가 이렇게 성적이 떨어지고 매사에 자신감을 잃은 것은 바로 아버지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브가 어렸을 때부터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단다. 네가 커서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돈도 많이 벌 수 없어. 그러니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해야 해. 내 말 알아듣겠니?"

    그런데 이브가 아버지에게 성적표를 갖다 주면 아버지는 잘한 것을 칭찬하지 않고 항상 잘못한 것만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곱셈이 뭐가 어렵다고 성적이 이 모양이니. 네가 어려우면 다른 친구들도 다 어려워야 하는데 너만 점수가 나쁘잖아. 공부는 안 하고서 놀기만 하니 그렇지 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바보 멍청이처럼 게으름만 피우면 나중에 빌어먹게 될 거야"

    결국 이런 말에 상처를 받은 이브는 공부에 흥미를 잃고 잘못된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엄마가 소리지를 때 큰 소리로 대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팻이라는 학자가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신체적 학대를 당하는 것보다 소리를 지르며 폭언을 일삼는 행위를 더 두려워하며 그로 인해 패명벅인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위험한 상황이 아닌데도 소리를 지르는 것은 모두 언어폭력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보호 받고 위로 받아야 하는 곳이 두 군데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정과 교회입니다. 그런데 언어폭력이 가장 많은 곳은 가정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언어폭력은 흔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걸프 전쟁 당시에 미국에 살고있는 유대인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의 수도인 텔아비브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배에 참석하여 딸을 안전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신도들이 자신들의 딸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 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신도들은 걸프 전쟁의 추이에 대해서는 비상한 관심을 갖고서 대화를 나누면서도 정작 유대인 가정의 딸을 위해서는 눈꼽만큼도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위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때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무언의 폭력이라고 정신과 의사인 케터만 박사는 말했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도 옆자리에 않아 있는 성도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유순한 말, 온량한 생명나무 같은 말, 사랑의 말이 넘쳐야 할 것입니다. 


    필이라는 중년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유부남으로서 직장 여직원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결국 그는 그녀와의 관계가 드러남으로 부인과 이혼 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필은 아내와 이혼할 마음이 없었음으로 용서해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필의 아내는 냉냉하게 거부하였습니다. 오히려 이 문제를 출석하는 교회에 회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결정대로 따르겠다고 결정해 버렸습니다. 필은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교회의 징계위원회의 결정에 순종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교회의 징계위원회에서는 필의 죄악을 모든 성도들 앞에서 공개하고 잘못을 회개하도록 결정하였습니다. 필은 온갖 수치심을 무릎쓰고 모든 성도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순간 모든 성도들은 필을 싸늘하게 처다 보았고 아무도 그를 위로해 주거나 그의 처참하게 찢어진 자존심을 격려해 주지 않았습니다. 필은 그날밤을 하얗게 세웠습니다. 거센 폭풍처럼 불어닥치는 수치심과 고통을 이기지 못한 필은 서랍에서 권총을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낮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던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김으로 그 모든 수치심에서 벗어났습니다. 


    예수님은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을 향하여 돌을 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은 죄에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하여 고통 당하는 죄인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반면에 사람들은 죄인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죄진 사람이 얼마나 고통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파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그것이 얼마나 파렴치한 것인지 수군거리며 비방하기를 좋아합니다. 


    교회는 비판하고 상처 주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죄에 대해서 비판하고 정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죄를 심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도 인간들의 죄를 그대로 심판하시지 않고 용서하시고 고쳐주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서로 비판하고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감싸주고 위로해 주는 말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폭언을 일삼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등감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부족합니다.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감추기 위해서 상대편을 무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언어폭력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위대합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존귀한 존재입니다. 서로 폄하하고 무시하고 상처주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생명나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사람의 주위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위로받기 위해서 찾아올 것입니다.

    반면에 거칠고 사나운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불행하고 실패하는 삶을 갈게 됩니다. 그런 사람의 주위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말을 사용하며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좋은 말 생명나무 같은 말만 사용하며 살기 위해서는 자기의 언어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도 수 십만원의 돈을 들여서 수 개월동안 연습을 합니다. 그런데 평생 사용하는 언어를 운전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노력이나 훈련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언어를 훈련하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면서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첫째 잘못된 언어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언어폭력자임을 인정하고 시인해야 합니다.


    둘째 자기의 힘으로 잘못된 언어습관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셋째 나의 잘못된 언어습관을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도와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께 이 언어습관의 문제를 꾸준히 기도합니다.


    다섯째 나의 잘못된 말로 인하여 상처 입은 사람을 기억하고서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부족한 언어습관을 고쳐주심으로 우리에게 더 행복한 삶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이 귀중한 초대에 아멘으로 응답하심으로 행복한 가정, 행복한 직장 생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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