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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잠언 17:17/ 생명을 나누는 친구 [새벽]
  • 조회 수: 98, 2019.03.20 16:32:50
  •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오늘 새벽에는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얼마나 잘 살았느냐를 보려면 생명을 나누는 친구가 주변에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이 본문에 맞는 다윗 주변의 인물들을 통하여 본문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다윗은 생명을 나누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원수의 아들인 요나단도 다윗을 생명처럼 아꼈다 그랬습니다. 그가 왕이 되기까지 그를 위해 목숨을 건 부하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심지어는 다윗이 전쟁 중에 목이 말라 베들레헴에 있는 우물을 그리워했을 때 세 부하가 다윗을 위해 목숨을 걸고 그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위험에 빠졌을 때 다윗을 지켜준 사람이 있고, 또한 다윗을 떠난 사람도 있습니다. 사무엘하 16장에서 아들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하여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 때 다윗의 심복 중 아히도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히도벨은 아마도 밧세바의 할아버지로 판단됩니다. 사무엘하 11장에 밧세바의 아버지는 엘리암으로 소개되어 있고, 23장에서는 엘리암이 아히도벨의 아들로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다윗의 지략가로서 다윗을 도왔습니다. 그의 지략이 얼마나 뛰어나던지 삼하 16장 23절에 보면 그의 지략은 마치 사람이 하나님께 멀어서 얻은 것과 같다...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과히 신의 경지에 이르는 예언적인 지략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지략가가 다윗을 버리고 압살롬 편에 섰습니다. 아마도 다윗이 도덕적으로 타락했고, 민심도 다윗을 떠났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때가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후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의 소문이 좋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압살롬은 백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습니다. 그래서 아히도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에 서서 지략을 베푸는데 시간 상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겠지만 만약 압살롬이 이 아히도벨의 지략을 따랐다면 아버지 다윗을 물리치고 새로운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후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후새라는 사람은 다윗의 세력이 극심하게 기울어진 때에도 끝까지 다윗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따라 성을 비우려 할 때에 다윗은 자기를 따라가기 보다 성에 남아서 압살롬의 편에 서는 척 하면서 아히도벨의 지략을 방해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래서 그는 목숨을 걸고 아히도벨의 계획을 방해하는데 이 절대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후새를 도와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의견보다 후새의 의견을 따르게 합니다. 압살롬도 찰라의 순간에 친구를 버렸던 아히도벨 보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던졌던 후새가 더 믿음직해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아히도벨은 낙담해서 고향에 내려가 자살을 하고 맙니다. 아마도 자기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후새를 따르는 데서 압살롬의 최후가 보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친구가 없다고 하시면서 생명을 나누는 친구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친히 생명을 나누는 친구로서 우리 곁에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생명을 나누는 친구가 있다면 외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친구를 여지껏 한 명도 가지지 못했다면 예수님이 바로 여러분 곁에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우리를 멸망에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천국의 좋은 것들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세상 친구들 다 나를 버려도 예수는 영원한 내 친구..... 이런 찬송도 있는 것처럼 여러분도 예수님과 생명을 나누는 친구로 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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