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 100 : 1 - 5)
  • 조회 수: 306, 2013.03.10 23:09:15
  • 불과 20, 30년 전만 하더라도 '춘궁기'라는 말과 '보릿고개'라는 말이 유행을 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봄이 되면 굶주렸고, 굶주리다 죽어 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북한이
    배고픔을 경험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과거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IMF시대를
    맞이했으나 먹는 것만은 넉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세가 드신 분들은 과거를
    기억하겠습니다만 꽁보리밥을 먹었던 추억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꽁보리밥을
    먹지 않습니다. 특별 음식점에서 주문하여야만 먹을 수 있고, 어찌 보면 사치스런
    꽁보리밥을 먹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쌀밥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꽁보리밥을 먹어야 했던 것입니다. 과거에 어머니들은 집집마다 보리쌀을 삶아
    두었다가 밥솥 밑에 깔고, 위에 흰쌀을 넣어 밥을 지어 집의 가장이나 남자들의
    밥그릇에는 흰쌀을 많이 넣고, 여자들의 밥그릇에는 꽁보리밥만 넣어 먹었습니다.
    오뉴월이 되어 들판을 보면 보리가 누렇게 익어 가는 광경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보리밭'이라는 노래가 있기도 했습니다. 요즘 들판에 나가면 보리밭을 쉽게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리를 생산해도 사람들이 먹지를 않아서 생산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농부들이 보리 농사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IMF를 맞이해서 온 나라가
    너무 힘이 든다고 이야기 하지만 실제 한국 사람만큼 끼니를 거르지 않고 잘 먹는
    나라도 많지 않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먹는 것을 보면 먹는 재미라고는 하나도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길거리에는 흥청망청 먹는 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나에게 족한 줄을 깨달아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놀랍게 받아
    누리면서도 그것이 하나님 은혜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어쩌면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IMF시대의 어려움 속에서 감사를 회복하기 보다는 블평하고, 원망하고, 짜증을
    부리면서 고통스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이라면
    IMF의 고통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깨닫는 지혜를
    가져야 될 줄 믿습니다.

     


    농경 사회도 아니고 고도 산업 사회를 살아가는 정보화 시대에 밀농사를 짓고, 감사절을
    지키는 맥추 감사절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농촌생활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도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맥추
    감사절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며 반문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감사와 감사절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왜 일년에 세 번이나 감사의
    날을 지키라고 명령을 하셨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농사도 짓기 전에,
    추수도 하기 전에, 농경 생활로 정착도 하기 전에 가나안을 향해 40년이라는 길고 긴
    방랑을 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일년에 '세 차례씩 절기를 지켜라'고
    했습니다. 일년에 세 차례씩 지켜야 하는 절기는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로써 일년에 세
    차례에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은 예물을 가지고 나와 하나님 앞에 감사절을 지키라고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무교절 절기 즉 유월절은 과거에
    그들이 경험한 절기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해방의 기쁨을 기억하는,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먹는 절기였습니다. 그 절기는 행군 중에서도 얼마든지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그것을 수확하고 저장하는 사이에
    지켜야 하는 추수 감사절은 아직도 이스라엘에 대해 미래적인 사건이요, 그들에게
    도래하지 않은 현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감사의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맥추 감사절의 의미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맥추 감사절은 곡식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였습니다. 흔히
    맥추 감사절을 오순절, 칠칠절, 초순절이라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데 가장 먼저 보리에
    낫을 대는 그 순간부터 칠주 동안 보리와 밀을 모두 추수하여 거두어 드립니다. 그래서
    맥추 감사절은 보리에 낫을 대면서 시작되는 절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첫
    농사에 가장 잘 익은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 앞에 가져다 받치는 절기가 바로 맥추
    감사절이라는 것입니다. 맥추절은 모든 처음인 것, 새로 수확한 것, 사람들이 먹거나
    쓰지 않은 처음 것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절기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만이 지킬 수 있고,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 것, 첫 마음, 첫 시간, 첫 재물, 첫 기회, 첫 사랑, 첫 믿음 이런 처음
    것들을 온전히 드리는 그런 절기가 바로 맥추 감사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과거에 처음 신앙을 가질 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때는 얼마나 순수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바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결단했던 우리의 과거였습니다. 그러나 1년이
    넘고, 2년, 3년, 10년이 지나면서 마음이 강퍅해지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맥추 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의
    신앙이 첫 신앙으로, 우리의 믿음이 첫 믿음으로, 하나님 앞의 첫 순수했던 그 모습으로,
    첫 사랑의 모습으로, 첫 순종의 모습으로 돌이켜 놓는 첫 자리로 자신을 세우는 그런
    맥추 감사절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특별히 부모들은 자녀들을 교육할 때 하나님
    앞에 처음 것을 온전히 드리는 감사 훈련을 잘 시켜야 합니다. 감사 훈련이 잘 되는
    사람은 성공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것을 받아 누리고 있으면서도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작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고,
    하나님께 드리는 순수한 믿음이 될 때 하나님은 더 큰 축복을 덧입혀 주시리라
    믿습니다.

     

     

     

     


    2. 맥추 감사절의 의미

     


    맥추 감사절의 또 다른 의미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절기라는 것입니다. 감사의
    대상이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시편100편을 보면 '온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그들의
    찬양의 대상, 경배의 대상, 감사의 대상이 이 세상의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감사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축복을 베푸시고, 힘이 없는 자에게 힘을 주시고, 능력 주시고,
    인도하시고,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는 그런 절기가 맥추
    감사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맥추 감사절은 헌신과 봉사의 의미가 담겨
    있는 절기입니다. 공동체 속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는 절기가 맥추 감사절이라는
    것입니다. 맥추 감사 절기가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리를 벱니다. 보리와 밀 이삭을
    베면서 그들은 같이 모여 식사하고, 교제하고,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서로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고, 세우고, 존중하는 하나님 앞에서 그런 모습을 회복하는 절기가
    맥추 감사절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고 이차적으로는 우리들
    사이의 공동체 속에서 존귀히 여기고, 감사하고, 귀중하게 여기며 신앙을 회복하는
    절기가 바로 맥추 감사절입니다.

     


    IMF 사태가 우리 사회에 왜 도래했는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사회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습니다만 그 동안 우리는 너무나 들떠 있었고, 서로가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며 많은 시간들을 허비한 것을 다시 한번 반성할 때라
    생각합니다. 탐욕스런 기업주는 열심히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착취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노동자들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몰두했습니다. 노동자들은 기업주가 망하든, 상품의 경쟁력이 떨어지든 말든 내 임금만
    많이 받으면 된다는 이기심에 끝없는 노동쟁의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고 타도해야 하는 대상, 무너뜨리고, 허물고,
    공격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기업주들은 해외로 빠져나갔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 상품의 경쟁력이 자꾸만 떨어져 갔습니다. 외국 자본이 유치되어져야
    하나 후진국인 동남아로, 중국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그와 함께 우리들의 일자리는
    자꾸만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힘들고 고된 일을 원치 않았습니다. 값싼 동남아
    인력들을 썼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손가락질하고, 부정하는 사이에 아래에서 위까지
    곪아가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서서히 무너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정치인들에게 있습니까? 재벌 총수들에게 있습니까?
    기업주들에게 있습니까? 노동자들에게 있습니까? 우리 모두가 공범자들인 것입니다. 이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업주는 노동자들을 소중하게 여겼어야 했습니다. 기업주는
    노동자들에게 감사했어야 했습니다.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을 존귀하게 여겼어야
    했습니다. 그 반면 노동자들도 기업주들을 존경했어야 했습니다. 자기들의 노동 수당을,
    일자리를 창출해 주는 기업주들을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해야 하고, 귀하게 여겨야
    했습니다. 서로가 이용하고, 적대시하는 가운데 사회는 기울어져 갔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모두가 패배하는 사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조차도 아직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습니다.
    바르게 하면 내가 손해 본다는 좁은 생각이 나로 하여금 끝없이 잘못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맥추 감사절에 서로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 감사하는 것을 회복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뿐만 아니라 우리 사이의 관계 속에서 감사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향해 감사 하여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향해 감사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향해 감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향해 감사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뢰의 존귀함을 깨닫고, 서로 감사하는 관계가 되어 질 때 우리 사회는
    서서히 치유되어지고, 회복되어지는 것입니다. 1998년의 맥추절은 다른 해의 맥추절과
    분명히 차이가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맥추절의 또 다른 의미는 '계속'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설 때 지속적인 것이 되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한 주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되어져야
    되는 것이 우리의 자세입니다. 사람들 가운데 성격적으로 변덕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이 변덕스러운 사람은 감당하기가 힘듭니다. 무능하고 못나도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능력이 있고 똑똑해도 변덕스러우면 안됩니다. 때론 천사의 마음이 되었다가
    때론 악마의 마음이 되기도 하는 얼마나 충동적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우리의 부족함을 알고, 엎드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푼 은혜가 내게 족하나이다' 그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되겠고, 이런 고백을 하는 신앙인들이 지속적으로
    감사와 찬송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왜 하나님께서 맥추 감사절을 지키게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매년 3차 나에게 절기를 지켜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다 베풀고 갖추어준 상태에서
    나에게 매년 세 차례의 절기를 지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미완성의 단계, 도상의
    존재인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들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어쩌면 유월절은
    과거적인 존재요, 맥추절은 현재적인 절기요, 수장절은 곧 거두어 드린 곡식을 창고에
    저장하고 난 뒤에 드리는 절기기 때문에 미래적인 절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맥추 감사절기는 하나님의 현재적인 절기로써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맥추 감사절을 지키라고 하셨는가? 이것은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감사하는
    백성으로 양육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40년 광야 생활 속에서 불평하고 원망으로만
    점철되었던 백성들에게 감사 훈련을 시키기 위해 맥추 절기를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맥추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맥추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은혜와 축복을 받기 위해 맥추 감사 절기를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복 받는 비경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고, 그 말을
    지켜 행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행치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감사 절기를 세 번 선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지키게 하시면서 빈 손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예물을 가지고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리와 밀이 탐나서 빈손으로 오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큰 은혜와 더 큰 축복을 그들에게 부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들을 보면 이런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에게
    과자를 줍니다. 그때 "엄마 한입, 아빠 한입'하면서 입을 벌리면 어떤 아이들은 과자를
    내밀어 부모님의 입에 깨물도록 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어떤 아이들은 과자를
    숨기면서 자기만 먹겠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 좋은 모습입니까?
    엄마, 아빠에게 자기의 과자를 내밀 수 있는 자녀를 더 귀여워하고 많이 과자를 주는
    것처럼 하나님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그 과자를 먹고 싶어 입을 벌린
    것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감사를
    모르는 신앙인 만큼 불쌍한 신앙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이 너무 크고,
    너무 많은데도 불구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만 가지고 두리번 살피면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잘못된 욕심 속에 빠져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 할 수 있을 때 하나님께서 더욱 놀랍게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알고 계실 줄로 알고 있습니다. 옛날 어느 시골에 마음씨 착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농부는 항상 감사합니다. 만나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어느 해에 무 농사를 지어 거두게 되었습니다. 농부는 이렇게 잘 된 무를 혼자 먹기가
    너무 아까웠습니다. 이 농부는 농사가 잘 된 것이 그 고을을 잘 다스려 주는 원님의 선정
    탓이라 생각하고, 그 부를 잘 포장하여 원님께 가지고 갔습니다. 원님은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칭찬한 뒤에 하인을 불러 요즘 관가에 들어 온 것 중에서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하인은 최근 들어 온 큰 황소 한 마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원님은 그 황소를 끌어다가 이 농부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마음씨 착한 농부는 무 한개를 받치고, 크고 좋은 황소 한 마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온 동네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심보가 고약한 농부 한 사람이
    생각하기를 '무 한 개를 받치고 황소 한 마리를 얻었으니 내가 황소 한 마리를 받치면
    땅이라도 얻을 수 있겠기'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집에서 키우고 있는
    황소를 끌고 원님에게 갔습니다. "원님 저는 오랫동안 집에서 황소를 길러 왔습니다만
    이렇게 크고 좋은 황소는 처음입니다. 이것이 다 원님께서 백성을 잘 다스려 주신
    덕택인 줄 알고, 이 황소를 받치려 왔습니다"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원님은 이 말을
    듣고, 농부의 마음씨가 착하다고 칭찬한 뒤 하인에게 관가에 들어 온 것 중에서 귀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며칠 전에 들어 온 크고 잘 생긴 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원님은 그 무를 농부에게 가져다 주라고 했습니다. 농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농부는 별수 없이 무 한 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면서 많이 바치면 많이 준다는 것을 의식하고 하는 것이 아니고 순수한
    마음으로 예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더 축복하시고,
    감사하는 자를 더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기억을 해야 될 줄로 생각이 됩니다.

     


    최용덕이라는 찬양 사역자가 간증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경북 지방에서 연합 찬양
    집회를 인도하는데 모두들 뜨겁게 박수를 치면서 찬양을 합니다. 그런데 중간의 어떤
    사람은 찬양을 하면서 자신의 빰을 치면서 찬양을 하더라는 겁니다. 자기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면서도 그 사람만 계속 보았다고 합니다. '왜 저 사람은 자신의 빰을 계속 치는
    것일까? 아니면 책상을 쳐도 될텐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한쪽
    손을 못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난 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사지가
    멀쩡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불평했던 모든 것을 그날 저녁에 청산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빰을 치는 것은 고통과 기쁨이 함께 나오기
    때문에 빰을 친다" 과거를 생각하면서 빰을 치고, 하나님 앞에 구원받음을 미소지으며
    빰을 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죄를 짓고 살았던 과거를 가슴 아파하면서 동시에 웃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찬양 인도자는 너무나 많은 충격을 받고 자신의 삶을
    주일 성수, 기도 생활, 공집회 출석, 봉사 헌신, 십일조 생활을 잘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많습니다. 우리도
    감사합니다.

     


    세상에는 감사하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If의 감사, 두 번째는
    Because의 감사, 세 번째는 In spite of의 감사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조건부 감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에게 무엇을 해 주시면 내가 감사하겠습니다.' 이것은
    보통 세상 사람들이 하는 감사입니다. 어쩌면 70%정도의 교인들이 조건부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무엇을 해주신다면? 나도 그렇게 하겠습니다.'이런 수준의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반면 약 20%정도는 무엇 때문에 감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루어졌으니 감사합니다. 이것은 If의 감사보다는 조금 높지만 아직도
    온전한 신앙인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감사인 것입니다. 그 반면 In spite of의 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다니엘의 신앙생활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를 모함하는 모리배들 속에서 다니엘을 넘어지게 하기 위해 덫을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날마다 하나님에게
    감사함으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은 어떤 환경,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좋을 때만 감사하고, 잘 될 때만 감사하고, 기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 때는 어려울 때일수록, 힘 들 때면 힘들 때일수록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심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의 새 친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힘이 들었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했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구약 성경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 열매가 없으며, 감람 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고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우리의 감사가, 우리의 기쁨이, 우리의 찬양이 바로
    하박국과 같이 다니엘과 같이 바울과 같은 기쁨과 찬양과 감사가 넘치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신약 성경 골로새서 3장 15절에서 17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이 말씀을 통해 감사하는 신앙을 회복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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