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중년에 (시편 102:23-24)
  • 조회 수: 154, 2013.03.11 17:49:00
  • 어버이 주일입니다.  옛날 먹고 살기 힘들었을 때 "입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 고려장이라는게 있었답니다.  연세 많이 드신 부모를 지게에 지고 깊은 산 속에 버리는 제도였다죠. 

    한번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늙은 부모를 지게에 지고 산 속에 남겨두고 돌아왔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아 집에 돌아오는데 아들 녀석이 보고 있다가 "아버님 왜 지게는 안 가지고 오십니까?" 라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그 지게를 보면 산 속에 남겨두고 온 네 할아버지 생각이 자꾸 날 것 같아서 산에 함께 두고 왔단다." 그렇게 말하자 아들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이 참 아버지도 그 지게를 가져 오셔야 저도 아버지 늙으면 지고 갈 것 아닙니까?" 그랬답니다. 효심은 위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 그 사람이 뉘우치고 다시 산 속에 들어가 아버님을 모시고 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늙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곧 자라서 어른이 될 것이고. 지금은 젊은이지만 곧  나이 들어 노인이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옛말에 독약은 먹고 살아남을 수 있어도 나이를 먹고는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결국 나이 들어 늙고, 결국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기정 사실입니다.  하지만 늙는다는 것은 결코 기분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 시인이 중년을 노래한 싯귀 중에 이런 운율이 반복되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누구도 아니어라" "나는 그 누구도 아니어라"  

    우리 모두에게는 고독감과 함께 밀려오는 중년의 위기가 있습니다.  제 경우도 그렇습니다.  사실 교회 일이 바빠서 가정에서는 신경 쓸 여유가 없고, 또 집안 일은 아내가 다 알아서 하지만 가끔 집안 일이나 아이들에게서 섭섭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식구들이 제게 던지는 말입니다.  "아니, 당신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요" 라던가.  "아빠는 몰라도 되요"라고 하는 말들이죠.  평소에 그런 말을 들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던 일이... 아니 사실은 가정 일에 신경 쓰지 않게 해 주는 걸 더 바랬던 젊은 시절이 있었던게 사실인데... 그런데 어느날 부턴가 그런 말들이 섭섭함을 가져오더라는 겁니다. 

    난 과연 누구인가?  집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무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모든 의사 결정권을 아내에게 빼앗기고 아이들에게도 밀려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섭섭하고 서운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속상해 하면서 소위 말하는 섭섭병에 걸리고 홀로 고독감을 느끼는 시기가 바로 중년입니다. 

    그동안 교회는 중년에 대해 가르치지 못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준비없이 중년을 맞고, 또 중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학자들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가장 폭넓게 봐서 35-60세까지를 중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인들의 대부분이 바로 이 연령층에 해당되죠.

    그렇다면 왜 중년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다른 인생주기와는 달리 중년기는 가정과 사회에 너무 깊숙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중년의 위기는 자신 혼자 만의 문제가 아니고 가정과 사회 등에 너무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시기가 무너지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우리 인생에는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공연히 짜증을 부립니다. 하루 종일 TV만 봅니다. 뭘 해보려고 하지만 얼마 되지 못해 포기하고 쉬 지칩니다. 이런 마음이 드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중년기에 우울한 감정이 생기는 원인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과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길이가 갑자기 비교되기 시작합니다.  어쩌다 한 번 운동이라도 하고 나면 며칠을 끙끙 대면서 앓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건강에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되지는 않을텐데라는 생각들이 듭니다.  암으로 먼저 떠난 친구들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볼품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아랫 배가 부담을 줍니다.  재미도 별로 없는 특별히 보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그냥 TV를 보다가 소파에서 누운채로 잠들어 버리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직장에서 화나는 일이 있어도 처자식이 먼저 생각나서 참아야 할 때,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학자들은 중년기를 제2의 사춘기라고 하기도 하고 사추기라고 하기도 한답니다.  청소년기에 오는 사춘기와 마찬가지로 중년기에도 다시 한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에서 오기 때문에 제2의 사춘기라고 부르고, 인생의 가을에 들어섰다는 뜻에서 "가을 추"를 사용하여 사추기라고 불러보는 것 같습니다.

    제2의 사춘기인 중년기도 정체성의 갈등이 옵니다. 특히 중년기 여성들의 경우 결혼과 함께 오는 긴장감, 자녀출산, 자녀 양육, 경제적인 문제, 시댁, 친정 등 신경쓸 일이 많아 긴장하며  정신없이 살때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 10-15년 정도가 지나면서 자녀들도 어느 정도 자라고 빈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과연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갖게 되는 겁니다. 과거의 긴장 상태,  그 에너지가 이젠 분출할 곳이 없어진 겁니다.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들의 어머니로 그동안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한 순간 이 정체성에 혼돈이 옵니다.  

    심리학자 융은 중년기 위기는 "의미의 위기"라고 했습니다.  40대 이전에는 외향적이던 남성들이 중년기에 들어서면서는 내향적으로 변화되고, 내향적이던 여성들은 외향적인 성향이 도리어 강해 진답니다. 

    이제 이처럼 중요한 시기인 중년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의미를 제공하는 것이 교회의 할 일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왜 사는지 그 의미를 찾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시간으로, 물질로, 노력으로, 그리고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그렇게 함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세워 나가게 해야 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각 종 부설 기관들에서 자신의 달란트를 찾아 주 중에도 봉사하는 것이나, 어렵고 소외된 자들,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게 하여 내가 정말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은 중년기 우울증, 이런 것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가족들 다 외출하고 그냥 멍하니 혼자 집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가 "내가 왜 사나?" 이런 생각을 하면 정말 사는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모든 것이 다 짜증나고, 하기 싫어지고 그야말로 중년기 우울증인 위기가 오게 됩니다.

    사실 집안에 신경 쓸 문제가 아직도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중년기 위기가 덜 온답니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졌고 부족함이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이 특히 더 심하게 우울증을 앓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성경 여러 곳에서도 중년을 맞이한 인물들을 통해 중년기와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 속에는 중년이라는 단어는 세 번 나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다가 나은 뒤 지은 시 속에 "내가 중년에 음부의 문에 들어가고 여년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내가 다시는.....생존 세계에서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 내가 세상 거민 중에서 한 사람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사 38:10-11)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중년에 죽을 뻔 하였다는 말 아닙니까?

    그리고 하나님께 약속합니다. 내 영혼의 고통을 인하여 내가 종신토록 각근히 행하리이다. (15절)  여기서 "각근"이란 "부지런히 힘쓴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이제 남은 인생을 진지하게살아보겠다는 의미죠.  중년에 맞이했던 생명의 위기는 히스기야로 하여금 남은 인생을 더욱 신중하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년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다른 구절은 예레미야 17:11 입니다.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물질적인 부를 취하는 자들을 향해 경고할 때 중년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즉 불의로 얻은 재물과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하고 즉시 그것이 떠난다고 말하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노년까지 머물지 못하고 중년의 때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잠깐 이면 사라진다는 의미로 이 "중년"이란 단어를 쓴거죠. 
    그리고 중년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나머지 한 곳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저가 내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시며 내 날을 단촉케 하셨도다.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연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

    이 간구의 기도 속에서 우리는 중년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년기에는 허물어져 가는 육체 때문에 갈등하는 시기입니다.  늘어만 가는 얼굴의 주름살, 희끗희끗 솟아나는 흰머리,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 자꾸만 불러지는 배. 그래서 거울을 들여다 보며 죽음을 건너다 보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사진 찍기가 싫어진다죠?  어쩌다 찍어도 사진을 보기가 싫어집니다. 

    어떤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말을 안듣는 아들에게 화가 치밀어 한 대 쥐어 박으려고 손을 치켜드는데 아들 녀석이 손을 턱 잡으면서 "아버지 왜 이러십니까?"라고 말하는데 손목을 잡은 그 힘과 굵게 변한 목소리에 기가 팍 죽더랍니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힘도 못 써보고 "그래 내가 늙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여성의 경우 신체적 퇴락과 함께 생리의 변화가 옵니다.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힘이 부치고, 원하지도 않았는데 몸이 불어나고 쉬 피로해집니다.

    그 다음으로는 정서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중년기에 다가오는 가장 큰 위기는 바로 자아 정체성의 재확립이 실패하는 것으로부터 출발됩니다.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생각, 삶의 무의미 어느날 갑자기 외로움이 몰려옵니다.  집에 들어가기도 싫습니다. 어디 멀리 떠나 가출이라도 하고 싶은 이런 마음들이 마구 솟아납니다. 통계적으로 40대의 가출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랍니다. 

    대개 중년기의 위기는 여성들에게서 더욱 심각합니다. 직장이니나 사회 일로 외부에서 여러 삶의 환경을 접하는 남성들 보다 여성의 경우는 2배에서 많게는 6배 정도 우울 증세가 더 많이 나타난답니다. 일상생활에 대한 권태로움과 불만이 높아지면서 삶의 의욕을 잃고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느낌으로 무기력증에 빠지는 경우죠.  

    이제 우리는 중년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나를 중년에 데려가지 마옵소서."라고 말입니다.  40대 사망률이 세계 1위라는 신문 보도는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한참 일할 나이인 사십대에 많이 나타나는 질환으로 고혈압, 내출혈, 심장병, 동맥경화, 위궤양, 당뇨, 각종 암과 지방간, 간염, 간경화 등 간 질환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이를 먹어가게 되고, 한번 먹은 나이는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중년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나를 중년에 데려가지 마옵소서"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시인은 기도 속에 주의 연대를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의 연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그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무가치를 발견할수록 하나님은 더 커 보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발견할수록 하나님은 더 위대해 보입니다. 자신의 무력과 무능력을 발견할 때 하나님은 더 전능해 보입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중년이 왔습니다. 이 중년의 때에 무엇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혼자 있을 때 무엇을 생각하며 사십니까?  외로움이 밀려올 때,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중년은 위기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말씀 속에서 이 놀라운 지혜를 터득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중년에 나를 도우소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여러분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희생하며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사십시오.  여러분은 꼭 있어야 할 귀한 존재입니다.   가치있는 삶에 충성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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