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시편 116편 8~14절)
  • 조회 수: 164, 2013.03.12 20:22:54
  • 주님, 주께서 내 영혼을 죽음에서 건져 주시고, 내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 주시고, 내 발이 비틀거리지 않게 하여 주셨으니, 나는 생명의 세계에서 주님 보시는 앞에서 살렵니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우냐?하고 생각할때에도,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두려울 때에는 "아무도 믿을 사람 없다"하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주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주님께 맹세한 것은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다 이행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6~24절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 제자 가운데서 몇몇이 서로 말하였다. "그가 우리에게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게 되고, 또 조금 있으면 볼 것이다'하신 말씀이나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 우리는, 그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에게 물어 보고 싶어하는 기미를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게 되고, 또다시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한 말을 가지고 서로 논의하고 있느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근심에 싸여도, 그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여인이 해산할 때에는 근심한다.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을 잊어 버린다. 이와 같이, 지금 너희는 슬픔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요,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다.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이것은 너희에게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1부예배때 저희들이 어린이 교회학교 졸업생들을 축하해주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졸업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 말이 졸업은 끝나는 게 아니고 졸업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 합니다. 졸업식이 곧 시작이식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졸업을 하면 그 다음은 상급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그래서 한가지를 끝내면 다음가지가 시작이 됩니다. 맞습니다. 졸업식은 시작식입니다.

    제가 졸업식과 입학식에 대해 성경말씀에는 무어라고 쓰여있을까하고 제가 찾아봤더니 십자가에 그 답이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고 마지막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졸업식입니다. 졸업으로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줄로 알고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가 배반을 했습니다. 가롯유다는 십자가에 못박히면 틀림없이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돈을 받고 선생님을 팔았습니다. 십자가는 인생의 끝인건 사실입니다. 하나님 한편의 역사의 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교역사에, 구원역사의 한 졸업식입니다. 세상은 졸업식만 알았습니다. 그랬더니 졸업이 있고난 다음에 잠시 쉬시고 그리고 새로운 식이 거행이 되었습니다. 부활절 아침 하나님 나라의 제 2탄이 시작이 됩니다. 십자가로 끝난 졸업은 부활로 새로운 입학식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을 졸업식에 초대합니다. 여러분을 입학식에 초대합니다.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너희들은 나를 보지 못할것이다. 내가 죽고 갈보리언덕 무덤가에 묻혀야 하기 때문이다. 또, 또 조금만 있으면 나를 여러분이 볼것이다. 부활절날 아침 새로태어난 나를 너희들이 볼것이다. 십자가를 보고  히는 울고 애통해할것이나 세상은 기뻐할것이다. 너희가 근심에 쌓여도 기쁨으로 변할것이다. 십자가를 보고 근심이 많겠지만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것이다. 해산의 고통이 있으나 아이낳는 기쁨에 고통을 너희들이 잊어버리듯이 십자가의 고통은 있으나 십자가에 잉태된 부활의 새생명을 낳는 기쁨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은 부활의 기쁨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항상 기뻐하십시오 기쁠때 슬픔을 뒤돌아 보십시오. 그러면 슬픔이 기쁨으로 변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시고 부활하실때까지 제자들은 예수께서 가실길을 정확히 몰랐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데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주님 당신이 가긴 간다는데 어디로 가는 겁니까? 당신의 갈길을 따라가고 싶은데 어딥니까? 언제가십니까? 어디를 향해서 가십니까? 그래서 요한복음 13장 36절에 보면 베드로의 질문입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게 영화한편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십자가와 부활속에 예수의 갈길을 베드로는 몰랐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저도 주님 따라가겠습니다. 십자가가시면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부활하시면 함께 부활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속에 부활이 잉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십자가 지고 있는 동안 슬퍼할필요가 없었습니다. 부활을 잉태하고 있는데요 해산의 고통이 무서워서 임신을 안할 뿐있습니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때문에 해산의 고통은 별것 아닙니다. 아니 고통은 있지만 그것은 생명의 기쁨속에 삼켜버릴 수 있습니다. 새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으로 알고 기뻐할수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태어나는 것도 기쁜데 하늘의 생명이 태어나는 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러니 부활한 새생명이 태어나는 기쁨가지고 모든 것을 기쁨으로 한번 봐보십시오. 즐거울때만 기뻐하지 마시고 슬플때도 기뻐하십시오. 모든 것을 십자가와 부활이 있지 않습니까. 해산의 고통과 새로운 생명을 창출하는 과정이 있지 않습니까? 항상 기뻐하라 . 즐거움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습니다. 인생의 너무 집작하지 마십시오. 또 인생을 비관만 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당신이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십시오 그리고 지금 삶이 주어진 이 순간을 가장 가치있게 살아가십시오. 낙원에서 추방되어가지고 공포의 죽음에 떨고 있는 아담에게 천사장 미카엘이 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밀턴이 쓴 실낙원의 한 대목입니다. 인생의 집착하지 마십시오 죽음에 빠질지언정 거기에 집작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인생을 비관하지 마십시오 지금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주어진 한순간의 이 시간. 가장 가치있게 지내시기바랍니다. 여기서 기쁨을 창출하기 바랍니다. 죽음이후에 생명이 있습니다.

    바울선생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기뻐하되 항상기뻐하십시오 슬플 때 슬픔속에서 슬픔속에 잉태되는 기쁨을 찾아서 진주같이 기뻐하십시오. 그럴수있는 사람은 참으로 기뻐할줄아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세상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도 기뻐할줄아는 사람입니다. 슬픈 세상일속에도 하나님의 기쁨이 있습니다. 기쁜 사람은 감사할줄 압니다. 어떻게 감사하는 것이 좋습니까? 감사는 여러분마다 하는 방법도 다르고 여러분마다 하는 시간도 다를줄 믿습니다. 그러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자주듣는 성가곡 중에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 9번을 잘알고 계시죠 저도 감명깊게 늘 듣습니다. 베토벤이 57세에 죽었다고 되어있는데 스물여덟살 될때부터 청각장애 질병을 앓았습니다. 서른 두살때 유서를 써놓았는데 그 유서에 보면 수신자가 누구냐 하면 우리 형님 카알하고 우리형님 요하네스 두분이 보십시오, 나는 지난 6년 동안 나아지리라는 희망속에 지내왔습니다만 그 희망에 속아서 절망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나는 청각장애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완벽한 귀머거리입니다. 다른사람에게 보다도 나 자신에게 완벽해야할 내 감각의 한 부분이 완전히 허약해졌습니다. 나는 작곡을 해야되는데 내가 쓴곡이 어떻게 연주되는지 소리를 들을수가 없습니다. 잠시후면 내 인생이 마감합니다. 이 불안하고 불행한 존재를 형님들이 알아주십시오, 한참 나가다가 격정이 움직여가지고 하나님. 내가 마지막으로 기쁨을 누릴수있는 한순간만 허락해주십시오. 내귀로 좀 한순간만 좀 듣게 해주십시오. 너무도 오랫동안 진정한 기쁨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지 못했습니다. 듣지 못했습니다. 한순간만 바랍니다. 사실은 그분이 곧 죽을줄 알았는데 죽지않았습니다. 24년이 흘렀습니다. 죽기 1년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엄청난 교향곡이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심포니 넘버 나인입니다. 마지막 합창,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기쁨에 드리는 송시는 쉴러가 쓴 시입니다. "신들의 광채를 발하는 기쁨이여, 기쁨이여 모든 생명체들을 삼키시옵소서 기쁨의 태양이 천지를 나누듯이 기쁨이 우리마음속을 날아 주옵소서! 온 인류여 기쁨속으로 모여듭시다. 기쁨한테 송시를 드립시다. 거지들이 영주들의 형제가 되고 영주들은 거지가 되고 함께 모이는 즐거움 이것이 기쁨입니다." 쉴러의 시입니다. 베토벤은 이 시를 갖고 작곡을 해서 마지막 합창곡을 작곡했습니다. 기쁨에 드리는 송시, 기쁨이 독일말로 '타호이데' 그렇습니다. 기뻐서 드리는 노래가 아닙니다. 기쁨한테 드리는 노래 하나님의 이름이 기쁨이라면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 기쁨이라면 기쁨속에 이 노래를 드립니다. 사람들이 환호했습니다. 갈채를 난리가 났습니다. 표정은 읽을수 있는데 베토벤은 그 표정을 읽을수는 있으나 들을수는 없었습니다. 이 감격 그 감격이 상당히 오래전에 있었던 나는 귀머거리지만 창조주 하나님께 이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의 이름은 기쁨 타호이데, 160년이 지났습니다. 1989 10월 23일 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 베를린의 신도들이 모였고 시민들이 모여서 엄청난 합창이 하나있었습니다. 저도 위성방송을 통해서 그 합창을 시청했 니다. 합창은 바로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 9번 마지막 합창 기쁨의 드리는 우리의 송시, 그런데 그 기쁨은 통일된 기쁨을 아는 동서독 시민들이 기쁨이라는 단어를 바꿔었습니다. 기쁨은 '프로이데' 통일되었더니 기쁨만이 아닙니다. 통일되었더니 자유에 바치는 송시, '프라이 하이일' 저는 그 찬양을 들으면서 전세계에 있는 시청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저도 굉장히 기뻤습니다. 이 나라도 통일하고 기쁨을 맛보아야겠는데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쁨이라는 이름속에 드리는 우리의 송시 우리의 기도, 아니 언제 우리는 자유에 드리는 통일의 기쁨을 누릴수 있나 1989년의 감격은 굉장했습니다. 160년 전이든 160년 이후든 베토벤이 드릴려고 했던 기쁨에 드리는 송시가 160년 이후에 자기의 민족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기쁨을 맛볼수 있습니다. 기쁨의 눈으로 슬픔을 보시면 슬픔을 소화해낼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기쁜 사람만이 감사할수 있습니다. 베토벤의 감사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속에서 우리는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슬픔을 극복하셨다고 믿으면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만이 기도할수 있습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는 신고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는게 아니라 항상 기도하십시오 쉬지말고 기도하십시오 사업이 여러분 벌이신다면 기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우리의 뜻이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나님에게 통고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야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허가제인데 '우리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이다.' 그게 기도가 아닙니다. '하늘뜻이 이땅에서 이루어지이다.' 하늘뜻이 이루어졌으므로 슬픔의 그릇속에 기쁨이 잉태했으므로 배고픔속에 배부름이 잉태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기쁨을 태어나기 이전부터 노래할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슬플때도 기도하십시오 기쁠때도 기도하십시오. 감사하면서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선입니다. 우리가 일할 때 숨을 쉽니다. 잘때 도 숨을 쉽니다. 숨쉬는 속도가 바로 자나 깨나 숨을 쉬어야 사람이 살듯이 하나님과 우리는 자든지 살든지 일하던지 안하던지 기도는 항상 쉬지말고 해야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끊기면 사람이 죽습니다. 일할때는 백년이 살것처럼 신나게 왕성하게 일하십시오 기도할때는 내일죽을 것이다 생각하고 진지하게 기도하십시오. 지금 기도가 숨쉬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수도원과 감옥의 차이가 무언지 알고있습니까? 수도원도 밀페된 공간 감옥도 밀폐된 공간 수도원에는 자발적으로 왔고 감옥에는 끌려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형식상의 차이이고 질적인 차이는 무어냐 수도원에 있는 사람은 스스로 선택해 온 사람은 수도원에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감사합니다. 감옥에 끌려온 사람은 감사가 없습니다. 기도가 없습니다. 찬양이 없습니다. 수도원이라고 생각하고 사시는 우리들에게 감사와 기도와 찬양이 없으면 감옥으로 변합니다. 감옥같은 세상일지 모르지만 감사가있는 곳, 기도가 있는 곳 기쁨이 있는 곳 수도원으로 변할수 있습니다. 기도하실때는 감사할 것을 찾아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실 때는 기쁜 것을 구체적으로 보시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는 사람이 눈을 감고 기도를 하지만 마음의 눈은 뜨고 기도 합니다. 진실된 기도는 눈뜬 기도입니다. 하늘을 향해서 눈뜬 기도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직접 보고 호소하는 눈뜬 기도, 그 기도가 참된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하는 사람은 항상 기뻐할수 있습니다. 쉬지않고 모든일에 감사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여러분들의 감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내가 십자가의 고통속에서 부활을 잉태하여 새 생명과 역사를 창출했듯이 십자가의 죽음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끓는 기도가 있듯이 슬픔과 기쁨 사이를 기도로 연결하십시오 기도는 살아있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벗고 부활을 만드는 것이 기도입니다. 부정을 벗고 정의를 만드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하여 새역사를 이루어주십니다. 개인한테 가정한테 교회한테 국가와 민족한테 새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함께 기뻐하고 찬양하십시다.
     
    주님, 주께서 내 영혼을 죽음에서 건져 주시고, 내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 주시고, 내 발이 비틀거리지 않게 하여 주셨으니, 나는 생명의 세계에서 주님 보시는 앞에서 살렵니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우냐?하고 생각할때에도,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두려울 때에는 "아무도 믿을 사람 없다"하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주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주님께 맹세한 것은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다 이행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6~24절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 제자 가운데서 몇몇이 서로 말하였다. "그가 우리에게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게 되고, 또 조금 있으면 볼 것이다'하신 말씀이나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 우리는, 그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에게 물어 보고 싶어하는 기미를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게 되고, 또다시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한 말을 가지고 서로 논의하고 있느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근심에 싸여도, 그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여인이 해산할 때에는 근심한다.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을 잊어 버린다. 이와 같이, 지금 너희는 슬픔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요,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다.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이것은 너희에게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1부예배때 저희들이 어린이 교회학교 졸업생들을 축하해주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졸업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 말이 졸업은 끝나는 게 아니고 졸업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 합니다. 졸업식이 곧 시작이식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졸업을 하면 그 다음은 상급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그래서 한가지를 끝내면 다음가지가 시작이 됩니다. 맞습니다. 졸업식은 시작식입니다.

    제가 졸업식과 입학식에 대해 성경말씀에는 무어라고 쓰여있을까하고 제가 찾아봤더니 십자가에 그 답이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고 마지막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졸업식입니다. 졸업으로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줄로 알고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가 배반을 했습니다. 가롯유다는 십자가에 못박히면 틀림없이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돈을 받고 선생님을 팔았습니다. 십자가는 인생의 끝인건 사실입니다. 하나님 한편의 역사의 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교역사에, 구원역사의 한 졸업식입니다. 세상은 졸업식만 알았습니다. 그랬더니 졸업이 있고난 다음에 잠시 쉬시고 그리고 새로운 식이 거행이 되었습니다. 부활절 아침 하나님 나라의 제 2탄이 시작이 됩니다. 십자가로 끝난 졸업은 부활로 새로운 입학식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을 졸업식에 초대합니다. 여러분을 입학식에 초대합니다.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너희들은 나를 보지 못할것이다. 내가 죽고 갈보리언덕 무덤가에 묻혀야 하기 때문이다. 또, 또 조금만 있으면 나를 여러분이 볼것이다. 부활절날 아침 새로태어난 나를 너희들이 볼것이다. 십자가를 보고  히는 울고 애통해할것이나 세상은 기뻐할것이다. 너희가 근심에 쌓여도 기쁨으로 변할것이다. 십자가를 보고 근심이 많겠지만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것이다. 해산의 고통이 있으나 아이낳는 기쁨에 고통을 너희들이 잊어버리듯이 십자가의 고통은 있으나 십자가에 잉태된 부활의 새생명을 낳는 기쁨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은 부활의 기쁨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항상 기뻐하십시오 기쁠때 슬픔을 뒤돌아 보십시오. 그러면 슬픔이 기쁨으로 변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시고 부활하실때까지 제자들은 예수께서 가실길을 정확히 몰랐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데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주님 당신이 가긴 간다는데 어디로 가는 겁니까? 당신의 갈길을 따라가고 싶은데 어딥니까? 언제가십니까? 어디를 향해서 가십니까? 그래서 요한복음 13장 36절에 보면 베드로의 질문입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게 영화한편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십자가와 부활속에 예수의 갈길을 베드로는 몰랐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저도 주님 따라가겠습니다. 십자가가시면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부활하시면 함께 부활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속에 부활이 잉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십자가 지고 있는 동안 슬퍼할필요가 없었습니다. 부활을 잉태하고 있는데요 해산의 고통이 무서워서 임신을 안할 뿐있습니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때문에 해산의 고통은 별것 아닙니다. 아니 고통은 있지만 그것은 생명의 기쁨속에 삼켜버릴 수 있습니다. 새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으로 알고 기뻐할수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태어나는 것도 기쁜데 하늘의 생명이 태어나는 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러니 부활한 새생명이 태어나는 기쁨가지고 모든 것을 기쁨으로 한번 봐보십시오. 즐거울때만 기뻐하지 마시고 슬플때도 기뻐하십시오. 모든 것을 십자가와 부활이 있지 않습니까. 해산의 고통과 새로운 생명을 창출하는 과정이 있지 않습니까? 항상 기뻐하라 . 즐거움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습니다. 인생의 너무 집작하지 마십시오. 또 인생을 비관만 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당신이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십시오 그리고 지금 삶이 주어진 이 순간을 가장 가치있게 살아가십시오. 낙원에서 추방되어가지고 공포의 죽음에 떨고 있는 아담에게 천사장 미카엘이 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밀턴이 쓴 실낙원의 한 대목입니다. 인생의 집착하지 마십시오 죽음에 빠질지언정 거기에 집작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인생을 비관하지 마십시오 지금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주어진 한순간의 이 시간. 가장 가치있게 지내시기바랍니다. 여기서 기쁨을 창출하기 바랍니다. 죽음이후에 생명이 있습니다.

    바울선생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기뻐하되 항상기뻐하십시오 슬플 때 슬픔속에서 슬픔속에 잉태되는 기쁨을 찾아서 진주같이 기뻐하십시오. 그럴수있는 사람은 참으로 기뻐할줄아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세상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도 기뻐할줄아는 사람입니다. 슬픈 세상일속에도 하나님의 기쁨이 있습니다. 기쁜 사람은 감사할줄 압니다. 어떻게 감사하는 것이 좋습니까? 감사는 여러분마다 하는 방법도 다르고 여러분마다 하는 시간도 다를줄 믿습니다. 그러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자주듣는 성가곡 중에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 9번을 잘알고 계시죠 저도 감명깊게 늘 듣습니다. 베토벤이 57세에 죽었다고 되어있는데 스물여덟살 될때부터 청각장애 질병을 앓았습니다. 서른 두살때 유서를 써놓았는데 그 유서에 보면 수신자가 누구냐 하면 우리 형님 카알하고 우리형님 요하네스 두분이 보십시오, 나는 지난 6년 동안 나아지리라는 희망속에 지내왔습니다만 그 희망에 속아서 절망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나는 청각장애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완벽한 귀머거리입니다. 다른사람에게 보다도 나 자신에게 완벽해야할 내 감각의 한 부분이 완전히 허약해졌습니다. 나는 작곡을 해야되는데 내가 쓴곡이 어떻게 연주되는지 소리를 들을수가 없습니다. 잠시후면 내 인생이 마감합니다. 이 불안하고 불행한 존재를 형님들이 알아주십시오, 한참 나가다가 격정이 움직여가지고 하나님. 내가 마지막으로 기쁨을 누릴수있는 한순간만 허락해주십시오. 내귀로 좀 한순간만 좀 듣게 해주십시오. 너무도 오랫동안 진정한 기쁨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지 못했습니다. 듣지 못했습니다. 한순간만 바랍니다. 사실은 그분이 곧 죽을줄 알았는데 죽지않았습니다. 24년이 흘렀습니다. 죽기 1년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엄청난 교향곡이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심포니 넘버 나인입니다. 마지막 합창,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기쁨에 드리는 송시는 쉴러가 쓴 시입니다. "신들의 광채를 발하는 기쁨이여, 기쁨이여 모든 생명체들을 삼키시옵소서 기쁨의 태양이 천지를 나누듯이 기쁨이 우리마음속을 날아 주옵소서! 온 인류여 기쁨속으로 모여듭시다. 기쁨한테 송시를 드립시다. 거지들이 영주들의 형제가 되고 영주들은 거지가 되고 함께 모이는 즐거움 이것이 기쁨입니다." 쉴러의 시입니다. 베토벤은 이 시를 갖고 작곡을 해서 마지막 합창곡을 작곡했습니다. 기쁨에 드리는 송시, 기쁨이 독일말로 '타호이데' 그렇습니다. 기뻐서 드리는 노래가 아닙니다. 기쁨한테 드리는 노래 하나님의 이름이 기쁨이라면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 기쁨이라면 기쁨속에 이 노래를 드립니다. 사람들이 환호했습니다. 갈채를 난리가 났습니다. 표정은 읽을수 있는데 베토벤은 그 표정을 읽을수는 있으나 들을수는 없었습니다. 이 감격 그 감격이 상당히 오래전에 있었던 나는 귀머거리지만 창조주 하나님께 이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의 이름은 기쁨 타호이데, 160년이 지났습니다. 1989 10월 23일 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 베를린의 신도들이 모였고 시민들이 모여서 엄청난 합창이 하나있었습니다. 저도 위성방송을 통해서 그 합창을 시청했 니다. 합창은 바로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 9번 마지막 합창 기쁨의 드리는 우리의 송시, 그런데 그 기쁨은 통일된 기쁨을 아는 동서독 시민들이 기쁨이라는 단어를 바꿔었습니다. 기쁨은 '프로이데' 통일되었더니 기쁨만이 아닙니다. 통일되었더니 자유에 바치는 송시, '프라이 하이일' 저는 그 찬양을 들으면서 전세계에 있는 시청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저도 굉장히 기뻤습니다. 이 나라도 통일하고 기쁨을 맛보아야겠는데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쁨이라는 이름속에 드리는 우리의 송시 우리의 기도, 아니 언제 우리는 자유에 드리는 통일의 기쁨을 누릴수 있나 1989년의 감격은 굉장했습니다. 160년 전이든 160년 이후든 베토벤이 드릴려고 했던 기쁨에 드리는 송시가 160년 이후에 자기의 민족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기쁨을 맛볼수 있습니다. 기쁨의 눈으로 슬픔을 보시면 슬픔을 소화해낼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기쁜 사람만이 감사할수 있습니다. 베토벤의 감사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속에서 우리는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슬픔을 극복하셨다고 믿으면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만이 기도할수 있습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는 신고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는게 아니라 항상 기도하십시오 쉬지말고 기도하십시오 사업이 여러분 벌이신다면 기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우리의 뜻이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나님에게 통고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야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허가제인데 '우리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이다.' 그게 기도가 아닙니다. '하늘뜻이 이땅에서 이루어지이다.' 하늘뜻이 이루어졌으므로 슬픔의 그릇속에 기쁨이 잉태했으므로 배고픔속에 배부름이 잉태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기쁨을 태어나기 이전부터 노래할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슬플때도 기도하십시오 기쁠때도 기도하십시오. 감사하면서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선입니다. 우리가 일할 때 숨을 쉽니다. 잘때 도 숨을 쉽니다. 숨쉬는 속도가 바로 자나 깨나 숨을 쉬어야 사람이 살듯이 하나님과 우리는 자든지 살든지 일하던지 안하던지 기도는 항상 쉬지말고 해야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끊기면 사람이 죽습니다. 일할때는 백년이 살것처럼 신나게 왕성하게 일하십시오 기도할때는 내일죽을 것이다 생각하고 진지하게 기도하십시오. 지금 기도가 숨쉬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수도원과 감옥의 차이가 무언지 알고있습니까? 수도원도 밀페된 공간 감옥도 밀폐된 공간 수도원에는 자발적으로 왔고 감옥에는 끌려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형식상의 차이이고 질적인 차이는 무어냐 수도원에 있는 사람은 스스로 선택해 온 사람은 수도원에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감사합니다. 감옥에 끌려온 사람은 감사가 없습니다. 기도가 없습니다. 찬양이 없습니다. 수도원이라고 생각하고 사시는 우리들에게 감사와 기도와 찬양이 없으면 감옥으로 변합니다. 감옥같은 세상일지 모르지만 감사가있는 곳, 기도가 있는 곳 기쁨이 있는 곳 수도원으로 변할수 있습니다. 기도하실때는 감사할 것을 찾아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실 때는 기쁜 것을 구체적으로 보시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는 사람이 눈을 감고 기도를 하지만 마음의 눈은 뜨고 기도 합니다. 진실된 기도는 눈뜬 기도입니다. 하늘을 향해서 눈뜬 기도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직접 보고 호소하는 눈뜬 기도, 그 기도가 참된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하는 사람은 항상 기뻐할수 있습니다. 쉬지않고 모든일에 감사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여러분들의 감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내가 십자가의 고통속에서 부활을 잉태하여 새 생명과 역사를 창출했듯이 십자가의 죽음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끓는 기도가 있듯이 슬픔과 기쁨 사이를 기도로 연결하십시오 기도는 살아있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벗고 부활을 만드는 것이 기도입니다. 부정을 벗고 정의를 만드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하여 새역사를 이루어주십니다. 개인한테 가정한테 교회한테 국가와 민족한테 새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함께 기뻐하고 찬양하십시다.
     

댓글 0 ...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10 admin 202 2013.03.14
109 admin 385 2013.03.12
108 admin 263 2013.03.12
107 admin 225 2013.03.12
106 admin 194 2013.03.12
105 admin 275 2013.03.12
104 admin 168 2013.03.12
admin 164 2013.03.12
102 admin 229 2013.03.12
101 admin 312 2013.03.12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