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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시편 14:1-7/ 무신론자 [시편]
  • 조회 수: 645, 2013.03.16 17:44:47
  •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4편 1절 말씀을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 소위 무신론자를 가리켜서 혹은 무신론을 가리켜서 어리석다는 표현 을 썼습니다. 어리석다는 말은 희브리어로 나발이라는 말입니다. 나팔이 아니라 나발입니다. 실제로 구약성경에 보시면 나발이라는 사람이 나오지요? 사무엘상 25장에 나옵니다. 그가 다윗을 만났어요. 그래서 다윗과 평화롭게 살자! 이런 제안을 했는데 이 나발이 부자였기 때문에 혹시 다윗과 함께 살면 자기 재산에 축이 나고 손해가 되지 않을까 하여 거절합니다. 그리고 다윗을 악하게 대했습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서 그는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성경은 이 사람에 대해서 ‘그는 이름처럼 악한 사람이었다.....’


    나발 이라는 말은 단순히 어리석다는 것뿐만 아니라 악하다는 뜻을 동시에 갖습니다. 무신론은 단순히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죄악입니다. 그래서 이 무신론자에 대해서 오늘 시편 14편 4절에 보시면 동시에 죄악을 행하는 자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도스토엡스키가 남긴 유명한 말 가운데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무슨 일이라도 할 수가 있다.... 이것은 무서운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무슨 일이라도 할 수가 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라고 생각해요. 이 말은 모든 질서,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선언인 것입니다.


    그래서 무신론자는 자기 양심을 거스립니다. 오늘 14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 마음을 향해서 말해요. 하나님이 없다. 자기의 마음을 지금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자기 마음을 설득해요? 자기 마음과 싸우고 있는 거예요. 마음 깊은 곳에서는 신이 존재할지 몰라, 하나님은 계실지 몰라… 이런 마음의 외침을 들으면서도 그는 그것을 누르는 것입니다.


    니이체라는 유명한 철학자가 하나님은 죽었다, 신은 죽었다... 라는 선언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말년에 미쳤어요. 그가 광기어린, 그 미침 속에서 그가 휘갈려 쓴 메모지에는 이런 글이 남겨져 있습니다. 신이여, 당신은 살아있고 나는 마침내 미쳐갑니다. 니이체... 사실 그는 자기 안에 있는 신의식과 더불어 한평생을 싸웠던 불행한 철학자라고 우리는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을 자기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어떤 신의식이 우리의 마음 밑바탕에 남아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을 아는 증거들이 있다... 이 말입니다. 로마서 2장에 가면 2장 15절에는 하나님 모르고 살아가는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양심이 하나님의 율법을 나타낸다.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양심이 하나님의 율법을 나타낸다.... 우리 마음속에 이런 양심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주신 하나님의 법이죠. 법은 법의 제정자 없이는 주어질 수 없잖아요. 양심이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흥미로운 것은 양심이라는 단어가 희랍어에서 본래의 두 개의 단어의 결합입니다. 누구누구와 더불어 안다. 영어에도 conscience라고 그러는데 con 더불어 함께 안다. 하나님과 더불어 아는 것입니다. 이게 양심의 뜻입니다.


    이렇게 양심과 싸우니까 하는 짓이 자기의 죄를 합리화시키죠. 그래서 1절에 계속 보면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또 3절의 말씀은 유명한 로마서 3장에서 인용되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다, 하나도 없다’ 사람들이 왜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합니까? 자기 마음속에 있는 죄악을 은폐하기 위해서죠. 자기 마음속의 죄를 은폐하고 그 죄를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은 무신론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무신론은 심판의 두려움을 회피하는 방법입니다. 프로이드라는 유명한 심리학자가 현대 무신론의 원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뭐라고 했느냐 하면 종교가 생긴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현대 수많은 지성인들을 매료시킨 무신론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아주 담대하게 죄를 짓습니다. 부끄러운줄 모르고 죄를 지어요. 이런 류의 실존주의로부터 지금의 더럽고 추한 예술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자기의 개성이요, 실존을 나타낸다고 하면 모든 게 다 선입니다. 이런 영향을 오늘날 젊은이들이 받아서 정말 악합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진보주의자들은 다 이래요. 그들에게서는 자기들만이 선이고, 다른 것은 다 악한 것입니다. 오늘날 진보정치인들의 추태를 보세요. 대선 때에는 모 후보에게 온갖 아양을 다 떨다가 이제는 자기들 말 안 듣는다고 노원병신이니, 육갑이니, 심지어는 자기들끼리 비밀스럽게 한 말을 다 까발리고.... 여기에 무슨 도덕이 있고, 선이 있습니까? 완전히 염치를 잃어버리고, 악한 사람들이예요. 이들은 다 무신론자들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의 모순과 질병을 치유하는 방법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신론 병에 걸려있는 사람들을 복음으로 치료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복음을 더욱 강하게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답고 바람직한 사회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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