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에게 무엇을 보여 불까? (잠22:6, 요13:12~15)
  • 조회 수: 160, 2013.03.21 22:25:16
  •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이 가정의 달의 첫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이들이야 말로 가정의 보배요, 교회의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아무리 영악하다고 하여도, 아이들은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하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처럼 교육열이 높은 나라가 세계에서 없다고들 합니다. 듣기 좋아서 교육열이지, 이제는 거의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부모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하도 교육정책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학교교육이 뿌리 채 흔들리고, 아이들은 방황을 하니깐, 어느 부모는 아예 고국을 등지고 온 가족이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을 택하는 모습도, 우리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실입니다.

     왜 떠나느냐고 물으면 '아이가 불쌍해서'라고 서슴지 않고 대답을 합니다. 일평생이 단 한번의 시험으로 좌우되는 이 현실에서, 어느 부모가 고액이 아니라 최고액이 들어도 남들 다하는 과외공부 안시키고 되묻는다. 참 씁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젠 옛날과 다른 세상이 되었다고 말하고, 공부만 잘한다고 행복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어느 부모가 자녀에게 '그래 너 하고 싶은 것 실컨해라. 공부하기 싫으면 말아라' 할 수 있겠습니까?

     냉정하게 살펴보면 우리의 자녀교육문제는 '부모와 아이의 싸움'이 결코 아닙니다. 이건 부모와 또 다른 보모와의 비교경쟁에서 시작된 것이다. "남들에게 뭐든 뒤쳐지고 싶지 않은 부모세대"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 개성을 살리고 싶다'는 자녀들을 용납하질 않고 있기에 이 전쟁이 발발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 잠22:6에서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자'로 되어있습니다. 쉽게 풀어 쓴 성경에 보면 "마땅히 따를 길을 어려서 가르치라"고 풀어 쓰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은연중에 보여 주는 그것이 곧 우리아이들의 인생을 좌우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고국을 등지고 "자녀교육을 위해서 떠난다."고 말하는 분들의 주장은 '이 나라에선 우리아이에게 보여 줄게 없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법과 질서 정의가 바로 세워지고 노력하고 수고한 사람들은 그만한 대가를 부리고 반면 일하진 않고 놀기 만한 사람은 또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게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우리 보모들로 하여금 아이들의 눈과 귀를 가리우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어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살겠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심리학자가 있었습니다.

     똑같은 방을 둘 준비해놓고, 한방은 매우 지저분하게 어질러 놓고 쓰레기 같은 것도 마구 굴러다니게 해 놓고  다른 한방은 정말 깨끗하게 완벽하게 정리 정돈 해 놓고 같은 사람을 두 방에 다 들어가 보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몰래 카메라로 관찰해 보았더니 더러운 방에 들어갔을 때는 그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더욱 어질러 놓게 되고 깨끗한 방에 들어가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동을 조심하게 되고, 뭔가 제자리에 있질 않으면 더 잘 정리해 놓더라는 것입니다. 방의 정돈 상태에 따라 사람의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린 자녀들을 가르치고자 할 때 아이들의 보고 배우는 것을 늘 의식해야 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에서는 "가르치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모범을 보이며 훈련하여 양성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도 선생님이 먼저 쳐 보이면서 '너도 한번 이렇게 해 봐라'하지 않습니까?

     어려서 붓글씨를 배웠는데 신문지를 넓게 펴 놓고 처음 내려긋기를 하던 생각이 납니다. 처음엔 먹을 가는 법, 붓을 잡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먹을 가는 자세도, 붓을 쥐는 손의 모양새도 일일이 시범을 보이시고 잘 안되면 선생님의 큰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이렇게 쥐는 거야' 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려긋기를 하는데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이셨습니다. 얼마나 선이 바르고 힘이 있어 보이는지, 정말 부럽기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하시듯이 자세를 잡고 해 보았는데 줄이 흔들리고 영 모양이 안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선생님은 내 손을 쥐시고 당신 손의 힘으로 글을 쓰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한 차근차근 배워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무엇보다 먼저 "시범을 보여 주시고" 그 다음에는 "함께 같이 해 보시고" 그리고는 혼자 해 보도록 하시고, 잘 안되면은 또 다시 보여 주시고 같이 해 보시고 또 할 수 있도록 하시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의식을 하고 있던, 못하던 지금 우리가 할 줄 아는 모든 것(말, 기술,습관,등)은 익숙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았나, 무엇을 들었나, 어떤 경험을 해 보았나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소꿉장난을 하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너는 엄마해라. 나는 아빠할게 하고는 엄마는 저녁 상 차린다고 분주하고, 아빠는 신문 본다고 종이 들고 폼 잡고 앉아서 기다립니다. 엄마가 밥상을 들고 들어 오니깐 아빠는 '이게 뭐냐'고 소리를 치며 밥상을 걷어찼다. 엄마는 구석에 앉아서 엉엉 울었습니다. 이것은 소꿉놀이 이였습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하는 대로 그 장면을 재연하며 그걸 놀이 삼고 있는 것입니다. 걱정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이들이 여러분 모습을(그 성격까지) 쏙 빼 닮았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까?', '염려가 됩니까?'.

     '마땅히 행할 일'을 아이에게 가르치라는 이 말은, "아이들에게 정말 보여 주어야 할 것"만을 보여 주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기도할 줄 아는 아이가 되길 원하십니까?'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 주고 함께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성경말씀"에도 유식한 아이가 되길 원하십니까? '내가 성경 읽고 배우는 모습을 보여 주고' 함께 말씀을 읽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도 남의 아이들처럼 교회 친구도 좀 사귀고, 활동도 잘하고, 적극적으로 신앙 생활을 했으면`하는 생각이 있습니까? 아직 어린이일 때 부모가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 예배당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흔히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엄마, 아빠는 잘 믿으시는데, 왜 아이는 교회에 안 나와요?" "아이고, 목사님 이젠 자식도 우리 맘대로 할 수 없네요. 교회 가자고 해 봐야 듣는 척 두 안 하는 걸요. 그냥 기도만 하면서 내버려 두기로 했어요. 때가 되면 나오겠지요" 이런 말을 들을 때 가장 가슴이 아픕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 버려 둔다고?', "때가 되면 나온다고? " 정말 자기 자식이 맞는 걸까. 어쩌면 저리도 태평할까? 답은 하나입니다.

     자식에게 보다 그 부모에게 문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구원의 확신이 있고 주님을 믿고 섬기는 일에 기쁨이 충만하다 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 신앙을 자식에게 물려주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부담 없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예수를 믿으며 '양심에 가책이 될만한 일'도 슬쩍슬쩍 지나가 살아가려니 깐, 더 이상 자녀에게 보여줄 것도  없고  강요할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뭘 보고 자라겠습니까?  교회는 다니는데 '본'이 되지는 못하는 부모님. '이젠 부모님도 뭘 보여 준거 없으니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도 없다. 난 얼마든지 내 멋대로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내 아이들에게 "믿음의 본"을 바르게 보여주질 못하고  살아온 우리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는 이 시간이 먼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리 신경 쓴다고 하였어도 자녀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쳐 왔습니다. "누가 찾아오면 없다고 해라" 그러면 아이는 "엄마가 없다고 하래요"하며 '아~ 이럴 땐 예수를 믿더라도 거짓말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우린 안 그런다고 하면서도 '불법, 무질서'를 가르쳤습니다. 교통질서를 무시하고(신호위반) 휙 지나가면서 "경찰 없지?" 할 때, 아이들은 '아- 예수를 믿더라도 이럴 땐 경찰만 없으면 신호등도 무시하는 것이로구나'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면서 여기 서있는 목사도 회개를 합니다. 저도 내 아이들이 거짓말 안 하길 바라고 질서를 지키고, 법을 준수할 줄 아는 아이들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삶으로 내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이젠 아이들이 커서 말을 안 들을 때 '왜, 거짓말했어?' '왜 교통신호 안 지켰어?' 하고 책망하면 아이들도 할말이 있는 것입니다. "아빠도 거짓말했잖아. 아빠도 신호 안 지켰잖아-" 여러분 아이들이 무섭습니다.

     우리 오늘부터 뭔가 잘못을 저지를 때 "하나님"을 제일 먼저 의식하고 두려워해야 하겠으며, "아이들"을 의식하고 두려워해야 하겠습니다. 경찰이 있는지 없는지, 다른 사람들이 봐주는지 아닌지는 그 다음 일입니다. 이것이 거꾸로 되어 있을 때, 문제가 발생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진실한 사람이 되도록 우리가 진실하게 살아 왔다는 점을 돌아봐야겠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라" (신 6:5~7)

     우리는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의 본"을 보여주지 못하였음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교육학자들의 이론은 '아이들 책망하며 키우기 보다 자주 칭찬하여 격려하면서 키우라고 합니다. 또 우리들도 평소 생각하기를 '아이들을 야단만 치기보다는 좀더 장점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의욕을 넣어 주어야 하겠다'하고 생각하긴 합니다. 그러나 실제 우린 얼마나 자주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큰 소리를 내고 살아 왔던가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중학생이 살해된 끔 직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파트 모니터 녹화 테입을 통하여 붙잡힌 범인은 남자 '고등학생' 아이였습니다. "왜?"라고 물어 보았을 때 이 아이는 '어머니를 때리고, 온 집안을 다 부수는 난폭한 아버지, 그 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품고 길거리를 방황하는데. '나 보다 행복해 보이는 아이'를 보는 순간 그 아이에게 이 분풀이를 다 해 버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 상관도 없는 아이를 그렇게 살해했다고 하니 온 세상이 시끌벌쩍 했었습니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금은 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세상이 다 잊어 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사랑" 없는 세상에 대한 탄식은 이렇게 탄식으로만 끝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길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 중 적지 않은 숫자의 아이들이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고" "사랑을 보고 자란 적도 없어서". 아니 오히려 마음 속 깊은 곳에 적개심만 키워 가고 있는 중이라는 이 심각한 현실을 우리는 무시하면 안되겠습니다. 사랑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을 배우게 하려면, 역시 부모가 사랑을 보여 줘야 하고 그리고 사랑을 느끼도록 해 줘야 합니다.

     어느 청년이 깊은 열등의식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부정적이며 반항적인 마음을 갖게 된 이유를 살펴보니까. 어려서 그 부모가 아이를 늘 책망하기만 하고 칭찬을 할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늘 뭘 잘못한다고 하고 넌 커서 뭐가 되려고 하느냐 하고, 너 때문에 속상해 죽겠다 하고, 무슨 잘못을 저지르면 '또 네가 그랬느냐'하고 더 야단을 치고 늘 그런식 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은연중에 아이에게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했고. '난 역시 안 된다'는 의식을 갖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우리의 아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용납을 체험하도록 합시다. 또한 우리는 우리아이들에게 "순종의 본"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미 택사스주 휴스톤 경찰서에서 다음과 같은 아이를 망치는 방법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1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원하는 데로 다해주어라 그러면 자라면서 온 세상이 나를 살려 줘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2 아이가 나쁜 말을 하고 상스러운 소리를 할 때 그냥 웃고 넘어가 주어라. 자기가 큰 재능이나 부릴 줄 알고 더 그렇게 할 것이다.

      3 신앙교육을 자기가 자라나서 결정할 때까지 서두르지 마라.

      4 '안돼'하는 말을 하면 기가 죽으니까 절대로 하지 말아라.

      5 책이나 장난감등을 아무 데나 팽개쳐 놓았을 때 부모가 조용히 정리해 주어라. 그러면 무슨 일을 저질러 놓고도 남의 핑계를 대게 될 것이다.

      6 아무 책이나 자기가 보고싶은 것 보게하라 그리고 먹는 것에 영양가가 있는지 만 신경 써라.

      7 될수있는 한 아이를 앞에서 자주 다투어라.

      8 아이들이 날리는 대로 무제한 용돈을 주라.

      9 선생님 친구에 대해 불평 불만을 털어놓을 때 다 받아 주라.

      10 무슨 실수를 저질렀을 때 부모가 대신 수습해주어라.

     

     우리는 아이들이 '기 줄일까 봐 늘 염려하고 살지만, 요한웨슬리의 어머니는 "자녀들의 고집을 빨리 꺾어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자녀들이 뭐든 제 멋대로 하도록 내 버려 두는 부모는 잔인한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칭찬과 사랑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만큼이나 불순종할 때는 따끔한 책망도 필요한 것입니다.

     잠 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심이 징계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책망은 자기의 감정을 풀기 위한 "화풀이"성 책망이 되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순종의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하게 하기 위한 목적있는 징계여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 주질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모습, 교회를 섬기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자기가 먼저 희생코자 하는 모습. 가정에서 식들끼리 있을 때 성도에 대하여, 주의 종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긍정적인 말, 칭찬하는 말을 나누는 모습. 우리가 이런면에 얼마나 부족하였었나요?

     아이들은 평소에 보고 들은 대로 배우게 되어있습니다. 요13:12~15절을 보면 예수님께 대야에 물을 떠오시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팔을 걷으신 다음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길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고 부르고 주라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사실 그러하다. 그러면 주요, 또 선생인 내가 너희도 행하도록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예수님은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친히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섬김의 본"이었습니다. 발을 씻어 주는 이 일은 "종"이 하는 일입니다.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것을 가르치시고, 사랑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러 오신 것을 가르치시고 "순종의 본" "믿음의 본"을 보이시기 위해 오셨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생활 주변에는 우리 일거수 일수 족을 다 감시하는 "몰래 카메라"가 두 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하나는 우리의 언행심사까지 다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요, 하나는 함께 생활하며 커가는 우리의 아이들입니다. 첫 번째 촬영된 녹화 필름은 주님 심판대 앞에서 다 다시 방여 될 것이고, 두 번째 녹화된 필름은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대로 다시 재연될 것입니다.

     "도대체 넌 누굴 닮아서 이러냐?"로 큰소리 치지 마십시오. 누굴 닮았겠습니까? 아이들의 눈에. 아이들의 귀에, 그리고 아이들의 추억 속에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님을 잘 섬겼던 모습. 특히 사랑했던 모습, 섬겼던 모습, 충성했던 모습, 믿음 생활 잘했던 모습, 온 식구가 함께 예배했던 모습, 부모가 아이들 위해 기도했던 모습, 함께 찬양하던 모습을 심어 주십시오.

     어찌 보면 이것이 '친구 잘 사귀어라' '공부 열심히 해라' '예수 잘 믿어라'고 백 마디, 천 마디 하는 것 보다 휠 씬 더 큰 교육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어린이 주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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