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부모를 공경하라(잠언 23:19-26)
  • 조회 수: 182, 2013.03.22 22:05:59
  • 광수에 이러한 만화가 있습니다.
    어떤 아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3류연극배우라고 부릅니다.
    그가 처음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엄청난 반대를 했습니다.
    연극은 안돼!
    결국 그는 아버지와 그 일로 의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집을 떠났고 아버지와 아들은 오랫동안 연락을 끊은채 살았습니다.
    그후로 집에서 연락이 온 것은 20여년이 훨씬 지나서였습니다.
    연락의 내용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유품을 챙겨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아버지를 보지 않았던 까닭인지 그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이 왠지 슬픔을 주지 않았습니다.
    덤덤하게 아버지의 유품을 챙기던 도중 그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아주 정성을 들여서 스크랩을 한 하나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 책속에는 집을 나간 아들의 공연내용과 아들에 관한 내용들로 온통 가득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마음속에서 지우고 있는 동안 아버지는 가슴속에서 아들을 키우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아버지!
    20년만에 느껴보는 아버지의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광수는 이렇게 만화를 그리고 그 밑에 주를 달았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흙에 묻고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습니다.

    또 이러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아들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갔습니다.
    아버지, 저 직장에 다녀 왔어요. 전 그래도 아버지와 함께 할 때가 제일 편하네요. 아버지, 내일 또 올께요
    그리고 광수는 이렇게 주를 달았습니다.
    부모님이 내일 돌아가실거라고 생각하고 효도하십시오. 그래도 모자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고 하셨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먼저‘아버지’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 봅니다.
    국어사전에서 ‘아버지’는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의 남편, 기독교에서는 인류를 태어나게 하시고 기르시는 이라는 뜻으로 하느님을 이르는 말, 천부’라고 기록되어 있고 ‘부모’라는 말은 아버지와 어머니 양친을 말할 때 사용하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가정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아버지는 가정과 사회와 법률과 모든 생활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의해서 가정을 이끌어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이는 부모님은 하나님의 대리자, 즉 하나님을 대신한 자로 믿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아버지의 의무에 대해서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훈계와 모범으로 율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아버지는 자녀들을 훈계하고 징계하는 것을 봅니다.
    이는 아버지는 자녀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문에서 아버지를 말하는 부(父)라는 글자는 사람이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쥐고 있는 모양에서 유래한 것인데 그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돌도끼입니다.
    즉 ‘父’자는 돌도끼를 내리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며 이는 아버지란 ‘돌도끼를 휘두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또 한문에 도끼부(斧)자가 있는데 이것은 父에 斤을 합한 것으로 斤이라고 하는 글짜는 본래 도끼를 뜻하지만 무게를 재는 저울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득한 옛날에는 무게를 재는 저울이 따로 없었지만 정확하게 무게를 잴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무게를 달아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아버지가 들고 있는 손도끼를 저울로 사용해서 무게를 재곤 했기 때문입니다.
    또 손도끼는 옛날 남자들에게는 사냥이나 전투, 물건을 만들거나 밭에 나가 일할 때 없어서는 아니되는 필수품이며 소중한 도구였습니다.
    그래서 손도끼는 어른이 된 사나이를 가리키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볼 때 아버지는 늘 손도끼를 들고 다녔습니다.
    이것은 곧 손도끼를 들고 가족을 통솔하는 사람이 아버지라는 이미지를 낳게 되었고 그 결과 손도끼를 나타내는 ‘父’자가 차츰 아버지를 뜻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버이를 뜻하는 친(親)자는 가까이에서 지켜봐 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아버지는 자녀들의 삶의 기준이었고 부모님은 항상 옆에서 자녀들을 돌보고 지켜보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1) 바로 살아야 합니다(19-21).
    바로 산다는 것은 탕자처럼 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속을 썩이고 아버지의 품을 떠나 세상과 짝하여 제멋대로 살아가는 아들입니다.
    그는 술과 고기와 세상의 쾌락을 좋아하고 연락을 즐기는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그를 근심하는 것은 그가 인간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7-35절에서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자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식은 부모의 은혜를 모를 뿐만아니라 자기의 인생에 대해서도 무책임합니다.
    때때로 결혼한 자녀들이 가정을 돌아보지 않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부모는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사람이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앞에서와 사람앞에서 바로 사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자기의 인생을 책임지는 사람이 될 때 부모는 기뻐합니다.

    2) 부모님의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22).
    부모님의 말씀이 때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한 시대를 살아온 인생의 깊은 경험이 들어있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부모가 늙고 힘이 없으면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이 있습니다.
    큰 아들은 서울에서 아파트에 잘 살고 있는데 작은 아들은 시골에서 고생하며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큰 아들 집에 있지 않고 작은 아들 집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날 큰 아들이 와서 여기에서 이렇게 고생하지 말고 우리 집으로 갑시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싫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내가 너의 집에 가면 좋은 집에 좋은 음식 먹고 좋기는 하겠지만 나는 이 집에 사는 것이 더 편하다. 네 동생은 날마다 내 등을 긁어주고 내 말벗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늙은 부모님은 말벗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친구처럼 옆에 앉아서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바로 효도입니다.

    3)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23-26).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까?
    항상 마음을 부모님께 두는 것입니다.
    즉 부모님에게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6절 말씀에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에 신경을 써 드려야 하겠습니까?
    먼저 자주 부모님의 얼굴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는 자식의 얼굴을 보고 싶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용돈이나 붙이면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주 찾아 뵙는 것이 효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부모님의 건강에 신경을 써 드려야 합니다.
    몸이 늙을수록 아픈 곳이 많아지지만 부모는 자녀들이 근심할까봐 말을 하지 아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얼굴도 살피고 음식을 드시는 것도 살피고 잠자는 것도 살피고 걸어가는 뒷모습도 자세히 살펴서 혹시 건강에 이상이 있지는 않은지를 살피고 잘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효도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용돈을 풍족히 드려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희생할지라도 자식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노인이 무슨 돈이 필요할까 하지만 늙을수록 남모르게 쓰고 싶은 데가 많습니다.
    그래도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스스로 알아서 풍족하게 드려야 합니다.
    특히 믿는 사람은 교회에 갈 때 헌금을 챙겨드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릴때 부모님이 돌보아주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을 보살피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효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어떠한 때에 우리의 부모님이 섭섭해 하시는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1. 우리의 집을 다른 집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가정환경을 탓할 때
    2. 부모의 생일은 기억하지 못하면서 여자(남자)친구의 생일은 손꼽아 기다리며 챙겨줄 때
    3. 어렸을 때에는 엄마의 손을 잡지 않고서는 아무 곳에도 갈수 없었던 자녀가 언제부터인가 엄마의 손을 잡기는 커녕 함께 걸어가는 것조차 부끄러워 할 때
    4. 때때로 자녀들이 자기가 밖에서 당한 일로 집안에 들어와 부모에게 분풀이 할 때
    5. 자기의 방을 마치 치외법권지역처럼 항상 문을 잠그고 식구들과 격리하여 생활하는 자녀를 볼 때
    6. 어머니가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방에 들어가면 마치 벌레를 내어 쫓듯 내어 쫓을 때
    7. 친구와 전화할 때는 시간가는 줄 모르면서 부모와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려고 할 때
    8. 신체적인 나이는 먹어가면서도 기도하고 말씀 보고 찬송하는 것은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신앙의 정신박약증 증세를 보일 때

    광수생각입니다.
    어느날 효자인 아들이 아버지께 나아가서 얘기를 합니다.
    아부지, 이제 곧 생신이시잖아요 . 갖고 싶은 것 없으세요?
    갖고 싶은 것 ?. 그래! 하나 있다. 비디오에 달려서 .
    비디오요? 비디오는 있으시잖아요 ?
    아니 비디오말구 . 왜, 동그랗게 생겨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거 .
    아하! 죠그서틀이죠? 그건 비디오를 앞뒤로 돌리는 거잖아요. 그걸 뭐에 쓰시려고요?
    으응 . 그걸로 내 인생을 돌려서 젊음을 찾고 싶어서
    아들은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광수는 이렇게 주를 달았습니다.
    할수만 있으면 아부지 당신에게 젊음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자기의 보모님을 이렇게 이해하는 아들은 효자입니다.

    어떤 거지 어린아이가 시장바닥에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없는 어떤 부부가 이 모습을 보고 그 아이를 데려다가 기르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아주 잘 자랐습니다.
    이들 부부는 막노동을 하면서 먹고 살았기 때문에 일을 갈 때에도 아이를 함께 데리고 가서 일을 했습니다.
    어느날입니다.
    아버지가 일하는 공사판에서 놀고 있던 어린아이가 철근이 무너지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그만 철근밑에 깔리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뛰어 갔습니다.
    아버지는 철근밑에 깔리는 아들을 구하고 자신은 철근밑에 깔려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어머니도 아들을 구하느라 한쪽 다리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너무 어릴 때의 일이라 그것을 알지못했습니다.
    한쪽 다리를 잃게 된 어머니는 나물을 캐다 시장에 팔아서 먹고 살았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듯 장사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아들을 보자 기쁜 낯으로 3,000원을 건네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 돈을 보자 화가 치밀었습니다.
    난 거지 자식이 아니란 말이야. 이런 돈 필요없어!
    다음날 아침 아들은 어머니가 시장 간 사이에 책가방을 챙겨 학교로 갔습니다.
    4교시가 끝나갈 무렵 어머니가 선생님 드리려고 다듬은 나물 한봉지를 들고 절뚝거리며 교무실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말합니다.
    야! 민석아, 너네 엄마 병신이었냐?
    그는 화가 나서 반 아이들을 두드려패고는 교실을 나와 버렸습니다.
    저녁 무렵 실컷 두드려 맞은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집에 나타났습니다.
    아니, 애비없는 자식은 이래도 되는거야? 못배우고 없는 티 내는거야 뭐야? 자식교육좀 잘 시켜. 어디 감히 우리 집 귀한 자식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느냔 말이야. 어머니란 작자가 병신이니 자식 정신이 온전하겠어?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들은 하교길에 어머니가 배추가게 쓰레기통에서 배추잎들을 주워 모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녁상에는 배추국이 올라왔습니다.
    아니, 이 배추!
    그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배추가게 아저씨가 팔다 남은 거라고 버리기 아까우니 가져가서 너 국 끓여주라고 하더구나!
    아들은 이제 정말로 거지자식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그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어머니가 싫었습니다.
    차라리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어머니의 생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되었고 잘 사는 장모의 도움으로 병원을 개업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아예 잊어버리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식의 얼굴이 보고 싶었던 어머니가 야위고 허름한 옷차림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물어물어 아들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왔습니다.
    문 밖에서 가정부와 실랑이를 하다가 퇴근해서 돌아오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어머니는 기뻐했습니다.
    민석아, 얼굴이 많이 좋아졌구나.
    그러나 아들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습니다.
    사람을 잘못 보셨습니다.
    민석아 .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민석이가 아닙니다. 저는 최영호입니다.
    그리고 아들은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들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 후로도 어머니는 시장에 나가서 장사를 했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자식이 없나요?
    아니여. 우리 아들은 서울 큰 병원 의사여. 자꾸 나보고 같이 살자고 하는디 내가 싫다 혔어.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자식 신세를 져. 요즘도 자꾸 올라오라는 거 뿌리치느라고 혼났구먼. 우리 아들 같은 사람 세상에 둘도 없어. 우리 아들이 효자여 효자.
    그로부터 1년뒤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듣고 아들이 집을 찾아 갔을 때 혼자 집을 지키고 있던 선생님이 어머니가 아들에게 남겨놓은 보따리를 하나 내어 놓았습니다.
    이거 돈 아닙니까?
    그래. 돈이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주시는 마지막 선물이다. 그 동안 널 위해 모아두신 돈이란다. 너에게 잘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해 하셨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어머니가 어떻게 그 아들을 만나고 어떻게 키우고 왜 몸이 불구가 되었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아들은 어머니가 불구가 된 원인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가 어머니의 사랑으로 대학에 다닐 때 어머니는 암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병원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은혜로 공부해서 지금은 암 전문의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암 전문의로 명성을 날리는 사람이 자기 어머니가 암으로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부끄러워졌습니다.
    더구나 그 아들의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 물어물어 찾아온 어머니를 그는 문전에서 박대해서 쫓아버렸습니다.
    어머니는 자기가 낳은 자식도 아닌 아들을 자기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어머니의 가슴에 못만 박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비로소 그 사랑을 깨닫고 어머니께 돌아왔지만 어머니는 계시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어머니를 보내드린 자기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벽에 걸린 어머니의 사진은 어머니를 찾아온 아들을 보며 잔잔한 웃음을 띠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 못난 자식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조가 있습니다.

    부모 살아실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못다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지만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계실 때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신 후에 물떠놓고 비는 것은 진정한 효도가 아닙니다.
    이미 이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자녀로서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윤리와 도덕이 자기 부모를 알고 공경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또한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도 잘 섬깁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그동안 찾아뵙지 못한 부모님을 찾아뵙고 하나님안에서 부모와 자녀가 서로 사랑함으로 복을 받는 가정 이루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부모님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건강을주시고 여생을 복되게 사실 수 있게 하시며 하늘에 소망을 두고 주님 오라 하실 때 기쁨으로 아버지께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과 같이 하셔서 부모님의 은혜를 알게 하여 주시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가정이 잃어버린 윤리와 도덕을 되찾게 하시고 주님을 믿는 가정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세상사람들이 본받는 세상의 빛과 소금된 가정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에 또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하시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녀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댓글 0 ...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18 admin 179 2013.07.20
admin 182 2013.03.22
116 admin 185 2013.07.20
115 admin 185 2013.07.27
114 admin 187 2013.07.21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