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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시편 08:1-8/ 존귀한 인간 [시편]
  • 조회 수: 384, 2013.03.23 15:55:01
  • 고아의 아버지요, 과부의 후견자이며, 자비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지킬박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 대한 최상의 예우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밤만 되면 『하이드』라는 흉악범이 나타나서 사람을 죽이고 부녀자를 겁탈하고, 온 동네를 약탈하는 통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의 보안관이 범인이 잡혔으니 구경 오라는 전갈이 왔습니다. 동민들은 그 흉악범을 보기 위해 동네의 광장으로 모였고 드디어 불빛 속에 가면이 벗겨지고 범인은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주민들은 아연실색했습니다. 그 범인의 모습이 흉칙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는 바로 그렇게 존경받는 『지킬박사』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가장 잘 그렸다는 영국의 단편작가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겉모습과 내면의 모습이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다. 천사와 악마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 렘17:9』이라고 합니다. 강한 듯하나 너무나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소크라테스라는 철인은 『네 자신을 알라』고했습니다. 최고의 지혜는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한없이 연약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얼마나 위대해 질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1절,9절)- 본 시는 첫 절과 마지막 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람이 어떤 존재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바울도 로마서 12장 1절-2절에서 예배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비로소 시작됩니다. 인간은 목적을 잃으면 나침반 잃은 배와 같습니다. 1923년 시카고의 에지와트비치 호텔에서 미국최대 부호 아홉 명이 자리를 같이 했을 때 언론에서는 『20세기의 신화』라고 대서특필했습니다. 그러나 25년 후인 1948년에 그들 중 한 명은 미치고, 셋은 파산하고, 둘은 출옥 후 패인이 되었고, 셋은 자살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돈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1절)-하늘은 땅과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죄악으로 오염된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구별된 곳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그 분은 우리 죄인들이 드리는 영광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영광을 받으실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2절)-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미련한 자를 택하여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십니다(고전 1:27-29).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히기를 『자랑치 못하도록』하려는데 있다고 합니다. 바울의 이러한 진술은 하나님의 역사 운영 법칙에서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유랑하는 히브리인을 그의 백성으로 세워 주위의 열강들을 꺾으셨고, 80노인 모세를 세워 막강한 애굽의 바로를 꺽으셨으며, 목동 다윗을 통하여 거인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미련하고 거치는 십자가를 통하여 사탄의 왕국을 파멸시켰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내가 못 가진 것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나의 약함을 통해서 오히려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달과 별을 내가 보오니(3절)-다윗의 시는 체험과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외롭게 양을 치면서 밤하늘에 영롱히 빛나는 달과 별빛을 보았습니다. 은하수의 강을 보았을 것이고, 힘차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았고, 한 낮의 강렬한 태양을 보았으며, 저녁노을을 보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대자연을 보면서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을 것입니다. 대자연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 앞에 초라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미약한 존재가 우리 인간이나 하나님 안에서 얼마나 위대해 질 수 있는지를 4절 이하에서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4절) - 『사람이 무엇이관대』 이 말속에는 『하나님께서 결코 사람에게 그렇게 관심을 둘 대상이 아닌데』 그런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런 대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고 계시니 이상하다는 말입니다. 그 구체적인 표현이 무엇입니까?

     

      첫째 - 생각하십니다. 여러분 생각한다는 말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관심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생각하셨던지 자신이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우리를 생각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습니까?

     

      둘째 - 권고하십니다. 『권고』라는 말은 『파카드』라는 동사인데, 여기서는 『조심스럽게 충고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폭군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을 최대한 존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의 대화의 파트너로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곳에 나오는 아버지는 한없이 자애롭고 인자합니다. 철부지 자식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탕자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주고 집 떠난 후에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어떻게 보면 모자라고 무능한 늙은이같이 보입니다. 계시록 3장 20절에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합니다. 

     

      셋째 -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인체의 신비』는 신묘막측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를 분석해 보아도 하나님의 걸작품이라고 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영적으로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창조주와 독대할 특권이 사람 이외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어느 피조물에도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5절에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라는 구절에서 『천사』로 번역된 원문은 『엘로힘』 즉 하나님입니다. 영어성경에도 『당신은 사람을 오직 당신 자신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시고...』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인간이기에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창조물을 인간에게 확실하게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절』 하나님의 걸작품인 것을 인간이 알면 절대로 교만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절대로 비굴해질 수도 없습니다. 인간이 자기의 의를 내세우거나 아니면 물질의 노예로 권력의 노예로 사는 것은 이 사실을 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맺는 말 - 존귀하게 지음 받은 인간들이 죄로 인하여 자신들의 신분을 망각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신분이 왕자요 공주인데도 거지와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창공을 나는 독수리인데도 병아리와 같이 거름더미나 뒤지고 있습니다. 원래의 신분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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