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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요한계시록 2:12-17/ 버가모 교회에 주신 말씀 [계시록]
  • 조회 수: 567, 2013.03.27 15:09:32
  •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도시에 정착해서 살기 시작했는데 주변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들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①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이단 교회가 있고 ②사탄 숭배자들이 운영하는 병원이 있으며 ③집 가까이에 잘못된 사상을 실은 책들이 가득 차 있는 도서관이 있는 곳 말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녀들을 기른다면 얼마나 위험하겠습니까? 자녀들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신앙의 삶도 파괴될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버가모라 불리는 도시에는 자랑하는 것 세 가지 있습니다. ①그 첫째가 제우스 신전이고 ②두 번째로는 아에스쿨라피온이라는 유명한 병원이며 ③세 번째는 20만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유명한 도서관입니다. 이 대규모 도서관에 대해서 도시 사람들은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는데 이는 세계 제일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다음으로 규모가 컸다고 합니다. 그리고 글을 쓸 때 사용하는 종이는 송아지 가죽을 이용하여 부드럽고 품위 있게 가공처리를 하였는데 내구력이 아주 좋아 버가모지(紙)하면 최고의 양피지 상품으로 통하였습니다.

     
    13절을 보면 버가모는 사탄의 영향력을 받는 도시, 거대한 우상 숭배의 도시인데 이곳에 버가모교회가 있습니다. 성도의 생명은 믿음 아닙니까? 버가모교회 성도를 향하여 말씀으로 무장된 성도, 신령한 은혜로 무장된 성도가 되기를 바라는 주님 말씀처럼 나는 그런 믿음의 성도인가를 오늘 말씀을 통해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1. 버가모교회의 지리적 위치 및 문화, 종교의 배경입니다.


    지리적으로 버가모는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해발 300m 이상 되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일종의 산성 도시로서, B. C 282년에 설립되어 소아시아의 여러 도시들 가운데서 에베소, 서머나와 함께 3대 도시로 일컬어집니다. 정치적으로 B.C 133년에 로마의 식민지가 된 이후 로마로부터 파송을 받은 행정관이 주재하는 권력과 정치의 도시입니다. 로마 식민지 아래서 수도와 같은 역할을 했던 버가모는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보낼 당시 로마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서 강력한 도시라는 인상을 풍기고 있었습니다.

     
    문화적 배경이나 종교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무엇보다 로마의 최고의 신 제우스 신전이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산 위에 올라가면 제우스 신전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 옆에는 로마의 황제들을 숭배하였던 신당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또 당시 사람들이 숭배하던 아에스쿨라피온이라는 신의 신전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 신의 상징인 뱀을 섬기면서 종종 구주라고 불렀습니다. 올해가 개사년이라 하여 검은 뱀띠의 해라고 하잖아요. 무당들, 점술가들이 이 뱀을 신성시 하고 난리입니다. 올해 이 뱀띠라는 점을 이용해 사탄이 극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에 이 신전에 그려진 뱀의 문양들이 떠다닙니다. 또 이 신의 이름을 딴 아에스쿨라피온 병원이 있는데 소아시아 최고의 병원으로 이름났습니다.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환자들을 대리석으로 된 길을 맨발로 엄숙하게 걷게 해서 병원 뜰 중앙에 솟아오르는 온천수에서 목욕을 한 번 합니다. 다음으로 지하 터널로 된 치료실을 지니는데 그러면 치료실 위쪽으로 난 창문에서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말합니다. 네 병은 곧 낫는다. 나을 수 있느니라. 일종의 심리 치료이지요. 다음에는 치료실을 나와 극장에 가서 음악을 듣고 마지막으로는 아에스쿨라피온 신 앞에 가서 기도하고 서약을 합니다. 뱀신이죠. 그 당시에는 뱀을 의료의 신처럼 섬겼습니다. 버가모 어느 지역에서든 아에스쿨라피온 신의 모습을 본뜬 뱀 조각상을 볼 수 있으며, 어떤 동전에는 황제 칼리굴라(Caligula, 3대 A. D. 37~41)가 뱀 앞에 서서 오른 손을 들고 경의를 표하는 숭배의 모습이 새겨진 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전 내부에는 길들인 뱀들을 키우는데 치료받기를 원하는 환자들은 캄캄한 시간에 뱀들 중 한 마리가 옆으로 지나다가 스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신전에서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뱀의 접촉은 아에스쿨라피온 신의 접촉이므로 즉시 치유가 뒤따른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2. 주님의 모습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이러한 환경의 버가모교회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떠나 세속화되고 있는 이 교회를 향해서 주님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심판자의 모습으로 등장하셨는데 검이 강조되고 있죠. 이 검에 관련된 사료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편지를 기록하였던 당시의 사료(史料)에 의하면 로마 황제가 버가모의 행정관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황제가 직접 사용하던 글라비라는 검인데 이 검을 내어 준다는 것은 신임의 증표로 볼 수 있습니다. 버가모의 행정관이 이 칼로 직접 사람을 죽이면 그게 바로 사형이다... 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그 칼은 행정관의 법집행에 권위를 부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글라비라 하는 검입니다. 버가모교회와 관련해서 검이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은 계시록에서는 검이라는 말이 주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버가모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로마의 행정관이 가지고 있는 그 칼보다 더 무서운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고 성도들의 잘못된 신앙을 심판하기 위해 등장하셨습니다.

     
    버가모교회의 성도들 중에 더러는 교회를 출입하면서도 우상숭배와 신앙생활을 혼합으로 하는 혼합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향락주의에 빠져 있는 자들로서 저들의 신앙상태는 신앙인인지 불신앙인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에 주님께서 날선 검을 가지고 나타나셨는데 이는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과감히 수술하듯 도려내겠다는 의지입니다.

     
    3. 버가모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

     
    13. 네가 어디에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3절에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사탄의 권자가 있는 곳이라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①이는 높이 6m 사방 27m 크기의 제우스의 제단이 있음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종교적으로 치료의 신으로 이해되었던 아에스쿨라피온 뱀 신과, 아테네 신전 지도자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겠지만 믿음을 지켜 나갔다는 것은 또한 대단히 칭찬할만한 아름다운 일입니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마음대로 거주지를 옮길 수 없는 생활권 그러니까 떠날 수 없는 삶의 터전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믿음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죽기 아니면 살기의 각오로 생활한다는 뜻으로서 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신앙의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불신자들도 신자라고 인정해줄 만큼 믿음의 순수성을 지키면서 신자의 품위를 잃지 않았는데 그런 환경에서 신앙인의 품격을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버가모교회 성도들은 죽음의 환경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의 긍지를 가지고 살았으며 믿음 하나만을 굳게 붙잡고 순교까지도 각오하면서 살아갔습니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제우스와 로마의 황제들이 신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버가모에서 그리스도만이 주님이라는 진리를 수호하고 있었던 버가모교회 성도들의 승리를 여기에서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안디바는 버가모교회의 감독으로 모든 것에 대적하는 자란 이름 뜻이 있습니다. 어느 날 로마의 관리가 안디바를 잡아다가 로마의 황제 신상 앞에 세워놓고 말을 합니다. “안디바야, 로마 황제 신상에 절을 하라” 이에 안디바가 말하기를,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으니 내가 절하지 않겠노라.” 그러자 관리가 노하여 말하기를 “안디바야 온 세상이 너를 대항하고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안디바가 다시 말하기를, “나도 온 세상을 대항하여 예수님을 만주의 주로 시인하노라” 그 대답을 듣고 격분한 관리는 놋 가마를 불에 달구고 그 속에 안디바를 넣어 볶아 죽였다고 합니다.

     
    이렇듯 버가모교회에 순교자가 나왔으니 그 사회적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그야말로 살벌한 분위기로서 그리스도인임이 드러나기만 하면 언제 잡혀가 죽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버가모교회의 진실한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그리스도인임을 담대히 고백했는데 이런 모습을 주님께서 보시고 칭찬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하게 밝히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지 않으면 주님은 천하만국이 보는 심판대 앞에서 우리를 모른채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은 서머나, 버가모 시대가 아지죠.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 의지를 밝혀야 인정받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뭐가 부끄럽고, 창피해서 그리스도인임을 감추고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4. 버가모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입니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발람의 교훈은 민 22~25장에 기록되어 있는 일로서 하나님의 선지자 발람이 물욕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인들과 행음하도록 만들고 우상의 제물도 먹게 한 사건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 맞춰져야 할 믿음의 초점을 우상에게 돌리게 하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정신을 파괴시킨 것이었습니다(민 31:16). 그 결과는 이스라엘 백성 중 수만 명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었는데 이런 발람의 교훈은 유대 역사에서 늘 경계의 표적으로 언급됩니다. 당시의 버가모는 우상 숭배가 아주 강한 지역으로서 사람들은 우상에게 바친 고기 먹는 것을 큰 기쁨과 즐거움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버가모교회 성도들도 이 우상의 제물 먹는 것을 그렇게 동경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우상 숭배에 동참하여 신앙과 우상이 혼합된 생활을 거리낌 없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 버가모교회 성도들에게 발람의 이야기를 하십니까?

     
    이는 옛날 발람 사건과 같은 일들이 버가모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버가모교회에 존재하던 니골라당은 발람이 과거에 이스라엘에 끼쳤던 것과 같은 영향을 미치는 그룹으로서 향락주의를 좇는 무리를 말합니다. 이들의 구호는 마음으로는 믿고 육신으로는 오직 즐기자는 주의로서 이것이 좋다고 박수를 치며 따라가는 신앙인이 있었습니다. 버가모에는 제우스의 신전도 있고,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던 도시 아닙니까?

     
    버가모의 집권자들은 무력을 사용하여 황제 숭배를 시민들에게 계속 강요하자 교회 안에서 혼합주의 사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신전에서 절하고 로마의 황제가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우상의 제물을 먹었다고 해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교회에 와서는 주님을 열심히 섬기되 세상에서는 형편상 가이사가 주님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것 때문에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박해를 당하고 미움을 받지는 말자는 겁니다. 소위 우리나라 교회가 신사참배를 강요당할 때 신사참배에 참여했던 교회 지도자들이 옹색하게 한 변명입니다. 지금도 교수들이나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요. 계시록의 니골라당과 같이 시류에 따라 편리하게 신앙을 해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한경직 목사님은 필리핀의 막사이사이 상을 받을 때 자기는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한 자이기 때문에 상 받을 자격이 없다고 회개한 바가 있죠. 교회의 어른이 회개하였으면 그 후배들이 당연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을 바꾸어야죠.

     
    요즘의 상황으로 바꿔서 말한다면 예수님을 믿으면서 점도 치고, 제사도 지내고 하는 이중의 표준을 가지는 겁니다. 버가모교회가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신앙과 합치될 수 없는 그룹들이 점점 늘어나고 보니 충성된 증인의 목소리보다도 세속화를 지향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결국 그렇게 되면 교회는 진리를 잃어버리고 세속화되어 가겠죠? 이런 식으로 자기도 모르게 오염과 타락과 부패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 버가모교회가 그만 신앙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진리를 수호하려고 애쓰다가 사랑을 잃어 버렸는데, 반대로 버가모교회는 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회인들과 어울릴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하다가 진리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5. 버가모교회를 향한 주님의 권면입니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본 절은 발람의 교훈과 동일한 니골라당의 교훈에 빠져있는 버가모교회 성도들에 대한 권면과 그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생겨날 일에 대한 경고입니다.

     
    교회는 이 힘찬 명령을 들으면서 기꺼이 발람의 교훈을 전하였던 니골라당의 거짓 교사들 사상을 묵인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통감하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런 사상에 안 넘어가겠다는 경계심 정도가 아니라 철저한 회개가 뒷받침되는 결단, 진리가 요구하는 자리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이 회개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을 굳게 닫고 있으면 주님께서 네게 속히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심판을 하시겠다는 겁니다. 즉 회개의 자리로 나오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서 발람의 추종자들을 칼로 심판하셨던 것처럼(민 31:08) 우상과 타협하는 자들에게도 말씀의 검으로 심판하시겠다는 겁니다(엡 06:17). 계속 주님의 경고의 음성을 주의하지 않을 때는 물욕에 눈이 어두워 변절된 발람이 그러했듯이(민 31:08) 심판의 검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크리소스톰이라는 교부가 있었는데 박해가 하도 심하고, 불신앙의 세력이 자꾸만 일어나게 되니 크리소스톰의 제자가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온 세상이 우리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이에 크리소스톰이 아, 그래. 그러면 우리가 온 세상을 반대하면 되지 않느냐? 좋은 말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대로 이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 이 세상과 대결할 수 있었던 안디바 같은 사람이 그리워지는 때입니다. 우리는 버가모교회에게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그리고 버가모교회가 받은 칭찬과 책망과 경고와 약속을 거울삼아 우리도 주님 앞에서 칭찬과 하늘나라의 약속만 받을 수 있는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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