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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요한계시록 2:1-7/ 에베소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 [계시록]
  • 조회 수: 396, 2013.03.27 15:17:07
  •  [2장] admin 2012.12.29 17:55:45  본문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첫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먼저 에베소교회의 역사를 살펴 보자. 에베소는 아주 오래된 현존하는 도시다. 고대는 물론 지금도 도시로서 왕성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터키 국토의 영토로 되어 있지만 3000년전 헬라인의 한 인종인 이오니아 인들이 세운 도시였다. 2700년 전에 장님 호머가 일리어드를 저작할 때 트로이성 인근에 에베소가 있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역사가 흐르면서 에베소는 다리오의 페르시아와 헬라의 알렉산더 지배를 받았고 기원시대에는 로마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헬라의 용병들이 애굽으로 나가서 근무하면서 웅장한 애굽의 건물들을 보고 귀국해 세운 것들 중의 하나가 파르테논 신전이었다. 파르테논은 높이가 19미터나 되고 127개의 원주 기둥으로 되어 있는 거대한 건물이었다. 에베소에는 아데미 신전이 세워져 있는데 그 규모는 파르테논 신전 4배 규모였다. 이정도면 에베소 도성의 규모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리라고 본다. 에베소 앞바다에는 카이스터 강 유역이 있어서 지중해 연안무역의 중심지였고 로마제국 해군 아드리아 함대 산하 아시아 함대 사령부가 바로 에베소에 있었다.

     

    주후 26년에 일단의 에베소 카라반들이 요단강을 지나가다가 세례 요한에게 회개의 세례를 받고 조국 에베소로 돌아가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그들은 요한으로부터 "내 뒤에 오시는 이"(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만 들었을 뿐이다. 그로부터 25년 후인 주후 51년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에베소를 방문했다.(사도행전 19장) 바울이 이 곳을 방문했을 때 아볼로가 목회를 하고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보지 못했던 교회였으므로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여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고 사도행전 18장 25절에 기록되었다. 이렇게 해서 에베소인들은 26년 전에 세례 요한에게 들었던 미지의 예수 그리스도를 사도 바울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그 후 사도요한이 이 교회에서 목회했고 로마 황제의 미움을 받아 밧모섬으로 수년간 유배갔다가 귀환해 백세가 넘은 나이로 이곳에서 소천했다. 에베소교회는 그 당시로서는 쟁쟁한 주의 종들이 목회했던 교회였다. 왜냐하면 동기를 준 셰례 요한의 영향력, 목회자 아볼로, 바울, 사도 요한 등이 목회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식으로 말하면 강남교회였다고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 아시아 일곱교회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첫 번째로 나온 교회가 바로 에베소교회였다. 성경기자들은 나열법을 사용할 때, 제일 크고 중요한 것을 먼저 기록한다. 그 영향으로 서울 강남 스타일 교회인 에베소교회가 맨 먼저 나오게 되었다.

     

    1.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알고, 아노라고 하신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매우 잘 알고 계신다.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아신다. 그들의 헌신과 봉사와 전도를 하는 수고로운 행위와 인내를 잘 아신다. 또한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은 것과 거짓 사도를 드러냄을 아신다. 그들의 말씀 공부와 교리에 정통하여 거짓을 분별하고 드러낸 일을 아신다. 주님은 나아가서 에베소 교회의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딤과 부지런함도 아신다. 참 안다, 알아준다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잘 하는데도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다. 그러나 주님은 에베소교회를 안다고 한다. 에베소교회를 알면 우리도 알 것이다. 우리의 안고 일어섬도 알 것이다. 눈동자 같이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살펴보고 계신다. 그러므로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 보다 주님의 눈을 의식하며 봉사하며, 섬기며, 신앙생활 해야 한다.


    2. 그런데 주님이 아시는 에베소교회는 수준이 꽤 괜찮아 보인다. 이 정도의 교회라면 평균 이상의 교회다. 이 정도의 교회라면 좋은 교회요, 괜찮은 교회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행위가 좋았다. 그리스도인다웠다. 또 수고와 인내가 있는 교회이다. 또한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은 것과 거짓 사도를 드러냄을 아신다. 그들의 말씀 공부와 교리에 정통하여 거짓을 분별하고 드러낸 일을 아신다. 주님은 나아가서 에베소 교회의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딤과 부지런함도 아신다. 그런데 이 칭찬 같지 않은 칭찬을 잠간 하시고서는 책망으로 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책망이 주다. 흔히 탁월한 분들은 칭찬을 잘 하지 않는다. 성철 스님 하면 불자들은 야단만 치는 스승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신도들도 이 분에게서는 한 번도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그 분에게서 욕을 얻어먹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야단맞으러 가자.... 그러면서 해인사 절간을 밟았다고 한다. 우리 주님도 에베소교회를 향해 잘한다는 칭찬은 거의 없다.... 니가 잘 한 것은 있지만.... 하면서 야단이 주다. 어릴 때에는 기 살린다고 무조건 잘한다 그러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칭찬만 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 야단을 호대게 받고 참 시원하다.... 이런 대인이 되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

     

    그 당시 기록자 당사자인 사도 요한도 이 밧모섬에서 계시록 기록을 하면서 땀께나 흘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자기가 목회하고 있었던 교회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도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제자요, 예수님의 이종 사촌 동생이었다. 예수님은 그런 사도 요한이 목회했던 에베소 교회를 신랄하게 책망을 하셨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가 에베소 교회에 대한 책망의 서두였다. 에베소교회가 창설되고 난 지, 약 70년만의 책망이었다. 그로부터 수천년이 지나 오늘날 비교해 보면 한국교회가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본질인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된다. 예수님은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셨으나 에베소 교회는 그 말을 듣고 꿈쩍도 안 했다. 역사가 흐르면서 여전히 교권 싸움을 하다가 주후 7세기 경 이슬람교의 침략을 받아 에베소 교회는 물론 대동소이한 다른 소아시아 교회들도 다 이슬람의 영토가 되어 사탄의 세력 하에 떨어지게 되었다. 이스탄불에 있는 콘스탄틴 대제가 세운 성 소피아 성당도 이슬람 사원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볼 때 역사는 잠깐이고, 대교회는 돌 더미에 불과하고, 사람들은 고깃덩어리에 불과하고, 교회내의 많은 돈은 낙엽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의 영원한 목적은 천국이며, 지상에서 이것을 이뤄내는 것이 바로 성경이 계시한 "처음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처음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나 자신의 셀 수 없는 많은 죄를 용서 받고 그 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하나님 향한 사랑으로 가득하였던 시간을 말한다. 자신의 남은 인생을 자신의 죄를 용서하시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매순간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응답하는 삶을 살겠노라는 다짐했던 사랑을 말한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가 이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하신다. 그것도 촛대를 옮길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책망하신다.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구원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아무리 처음 사랑을 잃었다지만 그동안의 선행과 인내와 부지런함이 있는데 어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가? 사랑을 말하면서도 행치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고 거짓 사도를 드러낸 일을 생각해서라도 책망해서는 안 된다. 평균 이상의 교회요 괜찮은 교회면 대단한 것 아닌가? 어느 교회인들 부족함이 없는 교회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촛대를 옮길 정도라고 말씀하시면서 책망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의 일들을 잘 아신다면서 처음 사랑을 가지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신다. 왜 이렇게 예수님은 무서운 경고를 하면서 책망을 하시는가?

     

    먼저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에베소 교회의 선행과 인내와 부지런함... 악한 자를 용납지 않음과 거짓 사도를 드러낸 일들이 잘못이라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사랑치 않고도 얼마든지 선행과 인내와 부지런할 수 있다는 게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치 않고 행하면 주님의 교회가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치 않고 행하면 형식적인 교회요 죽은 교회다.

     

    교회의 승리와 패배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행동하면 그 교회는 승리한 교회가 된다. 이런 교회는 서로를 사랑하면서 용서와 배려를 하면서 빛 가운데 행하여 하나 되는 교회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치 않고 행동하면 그 교회는 패배한 교회가 된다. 이런 교회는 서로 미워하면서 정죄와 심판이 난무하며 어둠 가운데 행하여 결국 나눠지는 교회가 된다. 인생도 동일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행동하는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 되고 하나님을 사랑치 않고 행동하는 인생은 패배한 인생이 된다. 에베소 교회는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고 거짓 사도를 드러내다 보니깐 자신들도 모르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계속 사랑 없이 행동하게 되었던 거다.

     

    아무리 위대한 행동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리 자신을 불사르는 데에 내어놓는 일을 한다 해도 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승리하게 하기 위해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 하신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촛대를 옮길 것이라고까지 하시면서 승리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행동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촛대를 옮길만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기억하자!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행하면 승리한 인생이 되고 하나님을 사랑치 않고 행하면 패배한 인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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