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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것에 대한 소위 보상법에 대해서 대조하여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내용으로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흔히 기독교 윤리의 극치라고 일컬어집니다. 혹은 기독교 생활의 절정을 소개하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또한 기독교의 대표적 교훈으로서 많은 사람들 앞에 소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말씀을 참으로 묵상하지 못하고, 우리의 생활 속에 적용하는 데에 실패하는 일이 많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사실상 이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누가 나를 한 대 칠 때 나는 두 대 세 대를 치고 싶은 것이
우리의 감정입니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받은 것만큼 돌려준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니 율법은 세상 사람들 눈으로 볼 때에는 아주
정당하고, 신사적인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여기에는 사회의 질서를 유지함과 동시에 복수의 제한성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명한 중국의 성도인 '위치만 니‘의 간증 가운데서 이러한 대목이 있습니다. 중국의 예수 믿는 한 성도의 논에 물이 풍성하게 고여 있는데 마침 가뭄이 찾아 왔습니다. 한 밤이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도 자기 논에 고여 있었던 물이 다 빠져나가곤 합니다. 그 성도의 바로 옆에 있던 이웃집의 논에서 밤새도록 그 성도의 논에 고여 있던 물을 다 빼 가 버린 것입니다. 그 성도는 그 물은 본래 자기 논에 고여 있었던 물이므로 당연히 그 물이 자기 논의 물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당당한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도는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이튿날, 이웃에게 가서 따졌습니다. “왜 나의 논에 고여 있던 물을 당신이 다 빼내어 가는 것입니까?” 그는 자기의 권리를 주장해서 이웃으로부터 사과를 받아 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논에 고여 있던 물을 다시 자기 논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또 다시 물은 빠져나가 버리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이웃으로 가서 물을 되돌려 놓았습니다. 이런 일을 몇 번이나 거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성도는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해도 그 마음속에 도무지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님! 제가 정당한 일을 하는데 왜 저의 마음속에 평안이 없습니까?”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정당한 일만 하려고 하느냐? 정당한 일보다 더 위대한 일은 할 수가 없겠느냐?』 “하나님! 제가 정당한 일보다 그 이상 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내가 너희에게 베풀어 준 것처럼 그 사람에게 대하라』
그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를 여러 번 물으며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마침내 그의 마음속에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날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튿날 새벽녘이 되어서 이웃집 사람이 자기 논의 물을 빼어 가기 전에, 자기 논의 물을 빼어 이웃의 논에 물을 대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마음속에 놀라운 기쁨과 평안이 다시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 12장 17절에 말씀하시기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의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행해져 온, 그리고 일종의 의무로까지 생각되던 복수심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말씀입니다. 주님은
복수심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작은 불씨를 더 큰 불씨로 번지게 하는 무익하고 위험한 것이며, 영적인 생활과 사회적인 생활을 파괴하는
가장 치명적인 것임을 일깨워 주고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악은 결단코 악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악은 더욱 큰 악을 초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의 이러한 특성을 아셨기 때문에 악을 이기기 위한 지혜로운 방법을 제시해 준 것입니다.
1) 오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 대라.
우리가 신체 중 일부에 구타를 당하는 것 중에 가장 기분 나쁜 것이 뺨을 맞는 일입니다. 이렇게 뺨을 맞는 일은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정신적인 고통이 상당히 큽니다. 인격이 짓밟힌 것 같고, 수치심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가운데서 오른 뺨을 맞은 후 왼 뺨을 돌려 대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을 죽음의 자리에 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2)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십리 가라...... 당시의 로마법으로는 군인들이 행군할 때 백성을 강제 징용하여 5리씩 짐을 지워가지고 가서는, 거기서 또 새로 징발 당해 오는 사람과 교대하고 보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억지 요구에 배나 더 너그럽게 들어주라는 것입니다.
3)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을 주라.(40) 모세의 율법에 겉옷은 가난한 사람들이 낮에는 입고 다니고 밤에는 이불 대신에 덮고 자기 때문에 신명기 24장 13절에 보면 전당 잡기를 금지하였습니다. 그민큼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겉옷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주라는 것은 상대방의 악한 마음을 사랑으로서 덮어 줄 수 있는 최고의 덕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참된 그리스도의 정신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상식 이상, 정당함 이상의 큰 일을 하라는 예수님의 요구입니다. 우리는 남이 하는 것 만큼만 해 가지고서는 영적인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남이 하는 것 만큼만 해가지고서는 하나님의 복이 없습니다. 크고 위대한 능력, 영성에는 정당한 것 이상을 뛰어넘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상식으로 살면 상식선 밖에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범하게 살면 비범한 방식으로 복을 받는다는 것이 오늘 예수님의 말씀임을 우리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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