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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잠언 27:12/ 만용과 지혜 [새벽]
  • 조회 수: 256, 2019.07.30 17:19:29
  • 오늘 말씀에 보면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합니다. 재앙을 볼 때 숨어 피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재앙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뜻합니다. 뜻하지 않은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것도 들어가겠지요. 재앙을 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망한 대표적인 사람은 애굽의 바로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내리신 10가지 재앙을 아주 가볍게 보고 대하다가 결국은 망했죠. 

    왜 재앙을 보고서도 숨어 피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다가 해를 입게 되나요? 그건 상황파악이 잘 안 되기 때문에 무식용감한 것입니다. 바로가 자기도 백성들로부터 태앙신이라 칭함을 받는데 아주 작은 집단의 히브리인들의 신 야웨에게 밀릴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자기는 인간인데 어떻게 신이 되겠습니까? 스스로 착각한 겁니다. 자기가 신이라고.... 그러고 백성들이나 신하들에게 채통도 있었겠죠.  어쨌든 겁 없이 하나님께 대들다가 온 몸으로 산화한 것입니다.

    제가 이 본문을 의지하여 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재앙이 있어요. 바로 죽음입니다. 나이 들어 요양병원에 오신 분들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이 분들이 한 번이라도 이런 상황을 생각이나 해 봤을까.... 아무도 생각해보지 못했을 겁니다. 그냥 늙다가 때가 되면 죽겠지... 이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을 보고도 예사로 생각하는 사람들 많아요. 제가 어르신들 관리하는 사람들 보고 이렇게 살지 않으려면 운동을 열심히 해야한다.... 그런데 안 해요. 바쁘다고.... 죽음은 또 어떻고요. 죽음은 형벌 아닙니까? 죽음이 어려운 현실의 삶을 모두 끝내줄 거라고 생각하고 자살도 해요... 죽으면 끝이라고..... 그러나 죽음이 재앙인 것은 죽음의 죄의 형벌이기 때문에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지만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그러나 이런 죽음이라도 사람들이 예사로 생각해요. 이 재앙을 하나님이 피해 숨으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요. 어리석은 사람은 재앙을 보고도 앞으로 가다가 해를 당한다..... 죽음 너머에 어떤 재앙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엄청난 재앙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여러분들은.... 후에 죽어서 생각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잘한 것이 무엇이냐... 이러면 예수 믿은 것이라고 대답하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왜? 죽음으로 말미암는 형벌.... 재앙.... 그거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예요.....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여러 해 동안 도망 다녔습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자기를 죽이려는 왕후 이세벨의 칼날을 피해 호렙산으로 도피하였죠.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재난을 피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때때로 핍박을 인해 도피했습니다. 그가 처음 다메섹에서 회심한 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자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기를 공모하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켰을 때, 제자들은 밤에 그를 광주리에 담아 성에서 달아 내렸습니다. 재앙을 만날 때 특별한 하나님의 뜻이 없으면 숨어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물론 신자가 진리를 위해, 의를 위해 싸워야 할 때가 있고 순교를 각오하며 나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때문에 전도의 일이나 기타 하나님의 일들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핍박을 두려워해 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비겁하고 불충성한 종들이 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8에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으며 디모데후서 4:5에는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요한계시록 2:10에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어리석은 자들은 재앙을 보고도 앞으로 나아가다가 해를 받는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재앙을 보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가오는 재앙을 가볍게 여깁니다. 둘째, 감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감정은 파국으로 치닫게 될 때 될때로 되라는 식으로 감정적으로 나갑니다. 여기는 개인의 자존심이 개입할 수도 있고, 집단적인 감정이 개입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일본이 우리나라를 향해 무역전쟁을 벌이는 이것도 어떻게 보면 재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일본이 우리나라 보다 더 대단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요즘은 세계가 분업으로 가고 있잖아요.... 후진국은 노동집약적인 것, 선진국은 기술적인 것.... 또한 선진국 안에서도 나라 처지나 환경에 맞게 일본은 소재산업으로 돈을 벌고 우리는 그 소재를 수입해서 반도체나 OLCD... 등의 첨단 완재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 나라가 철저하게 분업적으로 가는 것은 그게 편하고, 비용을 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일본이 불화수소나 포토레지스트, 불화 폴리이미드.... 같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핵심이 되는 소재들을 규재하겠다... 이러는 것은 지금까지 일본을 믿고 그것을 이용한 한국기업에 대해 반칙이며, 상도의에 어긋난 일입니다. 이건 마치 잔치 당일 떡을 주문한 방앗간에서 잔치를 망치기 위해 떡을 주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용과 예의를 그토록 강조하던 일본이 이런 짓을 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자해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결과야 어쨌든....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많이 어려워집니다. 이런 걸 일종의 재앙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일본이 한 짓은 괘씸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반일감정, 반한감정이 그대로 충돌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재앙을 보고도 나아가다가 해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전쟁도 일종의 재앙이라고 볼 때 이건 총만 쏘지 않는 것이지 이것도 일종의 무역전쟁입니다. 전쟁을 이야기 할 때 가장 좋은 것은 외교적인 노력을 펼치고 타협점을 잘 찾아 전쟁을 피하는 것이 가장 큰 승리라는 것은 전술의 기본이고 바로 오늘의 말씀의 뜻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무모하게 재앙을 맞딱뜨리기 보다 피하는 지혜로운 선택을 두 나라 정부가 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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