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욕심이 무척 많은 한 노인에게 임금이 말을 타고 해가 질 때까지 달려서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되돌아오면 그 달려온 땅을 모두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욕심이 생긴 노인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달렸습니다. 그리고 그 넓은 땅을 다 돌았으나 도착하자마자 지쳐서 말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임금은 이 노인의 묘비에 이런 글을 써서 나라 사람이 다 읽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은 이 나라의 반이나 되는 땅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소유는 한 평밖에 되지 않는다." 이 우화는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교훈을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람의 끝없는 욕심을 몇 가지 예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우선 '거머리의 두 딸'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이것은 거머리의 몸 양끝에 있는 빨판을 가리킵니다. 거머리는 그 두 개의 빨판으로 동물의 몸에 착 달라붙어서 계속 피를 빨아 먹습니다. 흡혈시 제 몸의 열배로 불어날 정도로 많이 먹을 수 있고.... 그렇게 먹고 나면 2년 동안을 아무 것도 먹지 않은채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거머리는 옛날부터 의료제로 많이 사용되고.... 요즘에는 버거시 병에 이 거머리 요법을 써서 85% 이상 완치율을 보였다고 합니다. 버거시 병은 흡연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병인데 모세혈관이 막히면서 발가락부터 썪어들어가면서 결국에는 다리를 절단하는 수 밖에 없는 병인데.... 이 거머리를 가져다가 환자의 다리에 붙여놓으니까 자기 몸의 10배 정도의 피를 빨아대면서 여러 가지 액을 분비한다고 합니다. 거머리의 타액 중에는 마취제와 항생제도 있어서 거머리가 물 때 그리 아프지도 않고 물린 자리를 부작용 없이 아물게 하는 신비로운 작용이 있는데 이런 액들이 염증을 치료하고, 거머리가 피를 빨아내면서 혈관이 뚫리고 하는 등의 치료작용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우리 병원에도 이전에 이봉래 어르신이라고 있었는데 그 분이 이 버거시 병으로 다리를 절단할 지경까지 갔습니다. 지금은 그 조카들이 데려갔지만..... 하여튼 거머리는 자기에게 피를 선물한 동물들을 해치는 것 같지만, 그 대상 동물들을 건강하게 치료해줌으로써 다시 피를 제공하도록 단골손님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자기 몸의 열배나 되는 피를 빨아대니까 아무리 빨아먹어도 족한 줄을 모르기 때문에 거머리를 끝없이 욕심을 부리는 탐욕자의 상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둘째로... 거머리와 똑같이 탐욕스러운 것으로 스올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무덤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하데스... 죽은 자가 들어가는 지옥이라고 해석됩니다. 예를 들면 지옥은 "만원사례" 라는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크고 넓은 건물이나 광장이라고 해도 사람들을 수용하기엔 제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만원사례라는 말이 생겼지요. 그런데 지옥은 만땅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제가 헬스장에 가 보면 어떤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헬스장 사물함을 사용하지 못하니깐 지하 사우나 룸의 사물한 열쇠를 줍니다. 그러면 운동 끝나고 목욕탕에 들어가 몸도 씻고.... 더 좋죠. 수준 낮은 가격대가 사람이 다 차고 비싼 데는 사람이 비어 있으니까 그리로 가라는 겁니다. 지옥과 천국도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지옥은 죄인들을 끊임없이 받아드립니다. 오늘 본문이 표현하기를... 결코 never...만족하지 못하고 충분하지 않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셋째로... 아이 배지 못한 태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라헬은 레아보다 야곱에게 더 사랑을 받았지만 아들을 낳지 못하자 남편의 사랑보다 더욱 더 레아를 질투했습니다. 한나는 엘가나에게 열 아들보다 더 낫다고 하는 사랑의 고백을 받았지만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고 불임은 남편의 사랑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전통적으로 결혼한 여자가 아기를 낳지 못하는 고통은 지옥의 그 고통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기를 낳아야 할 여자가 아기를 못낳는 것은 남편의 어떤 사랑으로도 채울수 없고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넷째로.... 물로 채울 수 없는 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뜨거운 햇빛이 내려쬐는 모래와 바위로 이루어진 사막 땅입니다. 이런 사막에는 갑자기 내리는 폭우에 잠시 풀들과 나무들이 싹을 내고 잎파리가 나오지만 뜨거운 햇볕에 언제 비가왔느냐 하는 것처럼 다 말라 비틀어져서 마른 나무가지와 햇빛에 타서 누렇게 짚으로 변해버리는 상황입니다. 아무리 비가 와도 물이 채워지지 않는 팔레스타인의 땅을 끝없이 물을 먹는 탐욕스러움에 비유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라고 했습니다. 불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한정 삼켜버립니다. 한 번 불이 붙으면 전체를 불사르고 잿더미를 만들때까지 불은 멈추지 않죠. 그래서 불을 화마, 즉 마귀에 비유합니다. 온 집을 태우며 악마처럼 뜨겁게 녹여버리는 것을 지켜본 사람은 바로 저것이 지옥이고 마귀라고 하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아굴은 이 네 가지를 ‘다고다고’라고 이름을 붙여 비유했습니다. 육체의 욕망으로 만족하려는 자, 세상의 즐거움으로 낙을 삼는 자는 결코 충분하다, 이제는 됐다고 말을 할 수 없음을 교훈해주는 것입니다.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욕심도 다함이 없습니다. 채우고 또 채워도 만족스럽기는커녕 오히려 결핍증을 느낍니다. 욕심과 행복은 반비례합니다. 욕심이 클수록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만족하지 못한채 욕구불만으로 세상의 것을 끊임없이 구하는 자의 마지막은 결코 족하지 않는 불 지옥의 화마에 떨어져서 영원한 목마름과 채우지 못하는 갈증으로 저주 받게 될 것을 아굴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으로 자족하며 감사함으로 풍성함으로 채워주시는 복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