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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_요한복음11:25-26/ 죽음을 이기는 사람들 [새벽]
  • 조회 수: 32, 2021.07.09 11:45:51
  • 요11:25-26/ 죽음을 이기는 사람들


     베뢰아 지방에서 전도하시다가, 베다니 마을에 사는 나사로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오셨을 때는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이 지난 후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장례는, 죽은 시체는 당일에 매장을 하지만 장례 기간은 일반적으로 7일간 계속되었으므로 나사로의 집에는 그 때까지도 많은 문상객이 오가고 있었으며, 식구들은 모두 깊은 비탄에 잠겨 있었습니다. 

    죽음이 인간의 삶에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는 주체하기 어려운 비애입니다. 죽음이 인간에게 깊은 비애가 되는 것은 한 인간의 귀중한 생명 활동이 정지되었다는 사실과 그러한 죽음 앞에서는 어떤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도 속수무책으로 무기력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죽음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유대를 갈라 놓는 이별을 가져오고, 그 이별의 슬픔은 단절의 고통을 안겨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이 인간에게 비애를 가져다 주는 것은 살아 남은 자들의 관심과 기억 속에서 영원히 망각되어 버린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나사로의 집에는 이런 죽음의 비애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나사로의 집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집에 오시기 전에 나사로의 죽음을 가리켜 '잠들었다'고 말씀하셨고, 그 잠든 나사로를 '깨우러' 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는 '죽음'을 '잠'으로 이해하고 계셨고, 그것은 얼마든지 깨어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죽음과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생사의 주관자이신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의 집에 오신 것은 비통해 하는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의 집에 생명의 주인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를 앞세우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사로의 무덤에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무덤을 막아 놓은 돌을 옮겨 놓으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이때 마르다는 주님의 헛수고를 염려하여 이미 죽은 지가 나흘이 되어 시체에서 냄새가 난다고 아뢰었습니다. 그녀는 생사의 주관자이시며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께서 무덤에 찾아오신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산다고 하면서도 자기 뜻대로 사는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무지와 불완전성 때문입니다. 

     무덤의 돌을 옮겨 놓게 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잠시 동안 하늘을 우러러 기도를 하신 후에 죽은 자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고 소리치셨습니다. 그러자 썩어 냄새나던 나사로가 온 몸에 베를 두른 채로 일어나 나왔습니다. 생명이신 주님이 이르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생명이 죽음을 이김을 믿습니다. 생명은 죽음을 살림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초월하며 죽음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순교자가 장작더미 위에 맨발로 올라섭니다. 이제 막 불을 질러 화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그는 자기의 화형집행 형리를 감독하던 치안판사를 가까이 오라고 합니다.

     "죄송하오나 판사님의 손을 내 가슴에 얹어 보십시오. 저는 이제 곧 화형을 당하는 몸이옵니다. 만약 저의 심장이 평상시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뛴다면 저의 종교를 믿지 마시고 저의 하나님을 부인하셔도 좋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순교자의 표정이 너무 담담하여 의아했던 그는 떨리는 손으로 순교자의 가슴에 손을 얹어보았는데 그 순교자의 가슴은 화형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침대에 잠자러 가는 사람처럼 고요하기만 함을 느꼈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이 비범한 힘이 어디서 왔을까요?

    죽음이 불신자들에게는 불안한 것이요. 두려운 것이며 고통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으나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주님을 만나는 순간이요. 주님이 예비하신 아름다운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니 어찌 불안하며 두려워하겠습니까? 무디 선생은 "세상이 점점 멀어지니 천국 문이 열린 것이 보이는구나."라고 하며 기쁘게 세상을 마쳤다고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천국 문이 보이지 않는다면 기쁘게 죽어갈 수 없을 것이요. 기쁘게 죽어가지 않을 자가 어찌 천국에 가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모습이 그의 행방을 말해 줄 것입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그 죽음을 맞을수 있을지 한 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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